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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 워크아웃·법정관리 장점 섞은 구조조정 제도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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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기업 구조조정 성공하려면

기업은 언제 구조조정을 해야 할까. 기업이 거시 경제적 충격이나 생산성의 하락 등 대내외적 문제로 인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주주 및 채권자뿐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제대로 된 소득을 나누어 주지 못하게 될 때다. 이때 기업의 이해당사자인 경영진, 일반주주, 채권자, 노동자는 기업의 경영개선을 위해 기업 구조조정에 동참하게 된다.

채권단·기업 자율 워크아웃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실패율 34%나 #‘채권단 주도형 법정관리’ 도입 땐 #자율적·선제적 구조조정 가능하고 #회생 법원 중재로 채무조정 빨라져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의 이해 관계자들이 사적 혹은 법적으로 협의해 기업가치의 회복(혹은 극대화)을 위해 사업, 재무, 조직, 인력, 지배구조 등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때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관련 법규, 세제 등을 개선하고 국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을 통해 원활한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기업 구조조정 제도로는 사적 구조조정인 워크아웃과 법적 구조조정인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있다. 워크아웃은 채권단과 채무자의 협의에 따라 기업의 구조조정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으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에 규정돼 있다. 법정관리는 회생 법원의 관리·감독하에 기업의 회생이나 청산이 진행되는 제도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도산법)에 규정돼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채권자, 채무자, 정부 간에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한다. 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보다 워크아웃을 더 선호할 수 있다.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채권자는 해당 채권에 대해 100% 손실로 인식해야 해서다.

반대로 기업의 경영진 및 대주주인 채무자는 기업을 신속히 정상화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첫 번째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주식을 감자하면서까지 재무개선을 하는 것을 선호할 리 없다. 가능한 한 채권단으로부터의 추가 자금지원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시키려고 한다. 이는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워크아웃에 대한 협의를 지연시켜 이해상충을 야기하고 신속한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구조조정에 있어서 중요한 이해당사자는 정부인 금융당국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부실문제와 같이 대기업의 파산은 지역경제 및 실업문제 등 대규모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진행으로 인한 대규모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고, 이에 따라 지역경제 및 실업문제, 산업구조조정 등을 고려해 구조 조정제도를 설계한다. 금융당국 역시 대규모 실업 및 협력업체의 연쇄도산 등을 우려해 법정관리보다는 채권단 중심의 워크아웃을 더 선호할 유인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제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제도는 기업의 경영정상화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을까. 최근 수년간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기업의 재무자료를 분석한 결과, 워크아웃 제도가 법정관리 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업 구조조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워크아웃 제도의 입법취지와는 상반된 결과다.

특히 2008년 이후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보다 구조조정 및 경영정상화 측면에서 부진했다. 워크아웃 실패율도 34.1%로 외환위기 당시 5년 동안의 19.3%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워크아웃에 실패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은 처음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보다 경영개선 속도가 더뎠다. 이미 부실이 심화한 상태에서 법정관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워크아웃의 부진은 부실기업의 경영개선 지연으로 이어져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확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워크아웃 제도의 부진 원인으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총부채에서 장기부채 등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부실기업이 워크아웃에 쉽게 실패했다. 부실채권이 대부분 장기이면 구조조정 와중에 채권단이 추가적으로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채권단의 구조조정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애초에 자본잠식이 심했던 기업, 즉 워크아웃보다는 법정관리에 들어갔어야 했던 기업이 워크아웃을 진행했을 경우 실패 확률이 높았다. 마지막으로 최근 워크아웃 제도의 부진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산업의 부실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의 부실이 심화한 경우에는 단순 자금지원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산업정책을 통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워크아웃 제도의 입법 취지는 기업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져 부실기업이 신속히 정상화하거나, 비효율적인 자원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신속히 재배분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워크아웃이 이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면, 분명 일정 부분의 생산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산업전체의 성장에 대한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기업구조조정제도 전반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촉법은 채권단과 채무자, 금융시장을 통한 자율적·선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 집단과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위한 재무개선약정(MOU)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대기업 집단이 부실화하기 이전에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져 생산자원의 비효율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또 채권단이 선제적으로 대출관리를 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조건부 대출약정’을 의무화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통합해 ‘채권단 주도의 법정관리’ 제도를 새롭게 마련할 필요도 있다. 통합된 법정관리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받은 부실징후 기업에 대해서는 채권단 주도의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하고, 상대적으로 부실위험이 높고 청산가치가 계속가치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는 부실기업은 처음부터 법원 주도의 법정관리를 진행하도록 개선하는 것이다.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조정실장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조정실장

채권단 주도의 기업회생절차는 기본적으로 회생 법원의 관리·감독하에서 진행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채권단의 금융지원과 채무조정의 신속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회생절차의 중립성 훼손을 방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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