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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머앟이 이런 글자 보면 뭐라 하실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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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전대 학생들이 2015년에 만든 현수막. '세종머앟'은 세종대왕의, '괴꺼솟'은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다)의 '야민정음'식 표기다. '머전팡역시'는 대전광역시를 의미한다. [사진 나무위키]

대전대 학생들이 2015년에 만든 현수막. '세종머앟'은 세종대왕의, '괴꺼솟'은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다)의 '야민정음'식 표기다. '머전팡역시'는 대전광역시를 의미한다. [사진 나무위키]

“댕댕이 커여워.”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지난 6일 게시한 이 글의 제목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멍멍이(강아지)’를 ‘댕댕이’로, ‘귀여워’를 ‘커여워’로 바꿔 썼기 때문이다.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멍’ 대신 ‘댕’을, ‘귀’ 대신 ‘커’를 썼다.

멍멍이 → 댕댕이, 귀여워 → 커여워 #비슷한 자모로 바꾼 ‘야민정음’확산 #구글 번역기에 ‘머통령’ 입력하면 #‘President’로 번역돼 나올 정도 #“한글 파괴” “다채로운 문화” 엇갈려

이른바 ‘야민정음’에 따른 표현이다. 야민정음은 야구갤러리의 ‘야’에 ‘훈민정음’을 합친 표현이다.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엔 소수의 은어로 사용되다가 이용자가 늘면서 다른 커뮤니티로 퍼졌다. 일부 표현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야민정음 이용자들은 단어의 본뜻에 구애받지 않고 모양만 비슷하면 자음이나 모음을 다양하게 바꿔 적는다. ‘대전광역시’는 ‘머전팡역시’가 되고 ‘21세기’는 ‘리세기’가 되는 식이다. 사람 이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ㄹ혜 전 머통령’으로, ‘유재석’은 ‘윾재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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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가 늘면서 야민정음의 일부 단어는 통·번역 서비스도 인식할 정도다. 구글 번역기에 ‘머통령’을 입력하면 바로 ‘대통령’을 뜻하는 ‘President’로 번역된다. 구글이나 네이버, 한글과컴퓨터 등 한글 통·번역을 지원하는 업체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대한 양의 단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민정음을 비롯한 한글 바꿔 쓰기에 대해 언어 파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단어를 자기들 맘대로 바꿔 쓰는 게 창조냐. 한글을 파괴하지 말라”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12월에는 대전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야민정음 사례를 모은 현수막을 걸었다가 한글 파괴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면서 새 세계를 담고 창출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단지 언어 유희를 위해서라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진호 서울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이런 일탈이 우리 문화를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며 “일부 우려스러운 점은 있지만 저속한 표현 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말들은 향후 표준어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멍멍이를 바꾼 ‘댕댕이’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이다”고 덧붙였다.

7년 전 한글 사랑 조례를 만든 서울 종로구청의 입구에 한자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강정현 기자]

7년 전 한글 사랑 조례를 만든 서울 종로구청의 입구에 한자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강정현 기자]

◆종로구청의 이율배반 간판=서울 종로구는 2010년부터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외국어나 한자로 된 간판을 한글로 바꾸자며 관내 점포 560여 곳의 교체비용을 지원했다. 세종대왕의 탄생지(종로구 통인동)란 명성에 걸맞게 한글을 보존·계승하자는 취지에서다. 종로구는 2010년 ‘한글 사랑 조례’도 만들었다. 이 조례에 따르면 본청·의회에서 작성한 공문, 시설 명칭, 표지판 등은 한글로 써야 한다.

그러나 정작 종로구청사에는 40년 넘게 ‘한자 간판’이 걸려 있다. 청사 본관 출입구와 제1별관 외벽에 걸린 간판 5개 중 3개가 한자로 돼 있다. 본관 출입구 기와 지붕엔 ‘鍾路區廳’(종로구청)이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있고 제1별관 정문 옆 벽면엔 ‘鍾路區廳’(종로구청), ‘鍾路區議會’(종로구의회)라고 쓰인 세로형 간판이 있다.

‘鍾路區廳’ 간판은 청사가 생긴 1970년대에, ‘鍾路區議會’ 간판은 지방의회가 출범한 91년에 걸린 이후 그대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미처 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글학회장인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불특정 다수가 찾는 구청은 누구나 읽기 쉬운 한글 간판을 내걸어야 한다. 시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이다”고 말했다.

임선영·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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