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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치머"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 있는지 되새기는 일 중요"

중앙일보

입력

[사진 프라이빗 커브]

[사진 프라이빗 커브]

“안녕하세요, 좋은 밤입니다. 여러분!”
7일 오후 8시 30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독일 출신 음악감독 한스 치머(60)가 서툴지만 정성 어린 한국어로 또박또박 인사말을 전하자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을 찾은 1만5000명은 일제히 환호했다.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여유롭게 영화를 보며 OST를 라이브로 즐기던 1부 ‘라라랜드 인 콘서트’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유로운 삶의 발견’이라는 테마처럼 여느 페스티벌처럼 방방 뛰며 뿜어내는 열기는 없지만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는 남다른 집중력이 장내를 휘감았다.

'슬로우 라이프' 통해 아시아 첫 내한 #19인조 밴드와 함께 다채로운 음악 선보여 #이병헌 깜짝 등장해 히스 레저 추모하기도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의 테마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무대를 연 치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그대로 옮긴 듯한 18곡으로 150분을 꽉 채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뮤지션 레보 엠은 딸 레피와 함께 무대에 올라 아프리카 줄루어로 우렁차게 ‘라이온 킹’(1994)의 주제곡을 부르고, 인도계 캐나디안 드러머 샤트남 싱 람고트라는 흰 머리를 나부끼며 세차게 드럼을 쳐댔다. 지난 4월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북미ㆍ오세아니아ㆍ유럽 투어 중 유일하게 잡힌 아시아 일정이었지만 다국적 밴드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덕분인지 그는 전혀 어색함 없이 소통에 힘을 기울였다.

[사진 프라이빗 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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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머는 음악이 바뀔 때마다 피아노와 기타 앞을 오가면서도 19인조 밴드 멤버들을 한명씩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30년간 120편이 넘는 영화음악으로 우뚝 선 치머 감독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는 것은 제게 언제나 중요한 일”이라며 자신의 영웅 한 사람 한 사람에 얽힌 일화와 배경을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티나 구오(32)였다. 치머는 “3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5살에 첼로를 시작해 하루 8시간씩 연습한 결과 놀라운 첼리스트가 되었다”며 “이들의 연주를 가슴으로 들어달라”고 당부했다.

7년 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치머와 인연을 맺게 된 구오는 영화 속 여전사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현란한 일렉트릭 첼로 연주에 따라 관객들은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었다. 공연 전 만난 구오는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인데 무대에 올라가면 모든 걸 잊고 집중하는 탓에 더 거친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며 “이러한 성격 탓에 치머가 ‘원더우먼’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치머와 작업하는 것은 음악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그는 각 연주자의 개성을 파악해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하는 사운드 디자인을 구현해낸다”고 덧붙였다.

[사진 프라이빗 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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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장 치머를 따라 아프리카 대초원으로, 고대 로마로 떠돌던 음악 여정은 ‘인터스텔라’(2014)에 이르러 우주에 안착했다. 배우 이병헌이 내레이터로 깜짝 등장해 치머 감독의 메시지를 전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함께 ‘배트맨 비긴즈’(2005)를 시작해 ‘다크 나이트’(2008)를 통해 히스 레저를 만났지만 이내 이별을 고하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상영 도중 발생한 미국 콜로라도 영화관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설명이었다. 치머는 “그때 우리가 느꼈던 절망을 토대로 만든 곡”이라며 “가사 없이도 유가족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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