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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처없이 중국서 철수할 프랜B를 짜라”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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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중국 파트너가 점심을 먹자더군요. 나에게 뭘 부탁할 게 있다면서 말입니다. 나갔지요. 얘기가 잘 됐습니다. 도와주마 했지요. 반주로 시작한 백주가 조금 오르는가 싶더니 사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친구 갑자기 얼굴이 변하더군요. 거친 말이 쏟아냈습니다. 한국, 한국인을 욕했습니다. 내 얘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상하이에서 디자인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의 얘기다.

사드 이야기가 나오자 중국인 파트너는 한국을 욕하기 시작했다.

사드 이야기가 나오자 중국인 파트너는 한국을 욕하기 시작했다.

취재차 상하이에 들렀던 필자는 지난 17일 저녁 현지 기업인(주재원) 8~9명과 식사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제는 사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지에서 느끼는 사드 분위기는 국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대체 우리 외교는 어디 있느냐'는 성토도 나왔다. '이제 믿을 건 경쟁력일 뿐 가일층 현지화에 나서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신선 농산물을 공급하는 사업가, 은행 대표로 나와 있는 지사장, 물류업계 대기업 주재원, 개인사업 사장... 모두 상하이에서 4,5년 많게는 10년 이상 주재했던 분들이다. 그들과의 약속대로, 익명으로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취재차 상하이에 들렀던 필자는 17일 저녁 현지 기업인(주재원) 8~9명과 식사를 했다.

취재차 상하이에 들렀던 필자는 17일 저녁 현지 기업인(주재원) 8~9명과 식사를 했다.

우리는 사드 보복에 나선 중국을 탓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인을 욕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중국인들은 한국이라는 국가뿐만 아니라 한국인 개인에게도 화풀이합니다. 당국이 그걸 조장하고 있고, 언론이 방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 상품은 점점 밀려나고 있는 거지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B 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민간이 스스로 알아서 한국 상품을 사지 않는 것일 뿐 정부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아서 긴다는 게 무서운 겁니다. 위(중앙)에서는 방향을 정합니다. 그러면 아래(지방, 기업)는 알아서 기는 겁니다. 우리 회사 파트너는 '위에서 저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중앙에서 '자 이제 한국 때리기 끝'이라는 사인이 나오기 전까지 보복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신선 농산물 공급업체 C사장)  

투자회사 주재원 D대표는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환영을 받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는 얘기다.

사드 이전에는 '한국 제품'이라면 한 단계 높은 상품으로 쳐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브랜드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됩니다. 한류 이미지가 먹히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중국 상품을 이길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자신이 없는 상품, 서비스라면 가급적 빨리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편승해 쉽게 장사하던 시절은 지났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주재원 E부장은 "중국 비즈니스에서 이제는 정치 리스크를 상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드는 양국 국민 사이에 깊은 내상을 안겼다.

사드는 양국 국민 사이에 깊은 내상을 안겼다.

우리는 그동안 중국 비즈니스에 정치적인 요소를 감안하지 않았습니다. 정치는 오히려 내 비즈니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였지요. 그건 옛말입니다. '정치로 인해 내 비즈니스를 접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신속하게, 상처받지 않고 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플랜B를 짜둬야 한다는 것이지요.

E부장은 "한-중 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설사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워낙 양국 간 내상이 심해 지금과 같은 '냉전'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새로운 균형, 즉 '뉴 노멀'이라고 했다.

물류업체 법인장 G사장은 그간 진행해온 현지화가 위기의 시기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삼성, 금호타이어 등 한국 회사 제품 물류 포션이 회사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가 타격을 받고 있지요. 그러나 나머지 70%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2~3년 꾸준히 진행한 현지 기업 인수합병(M&A) 덕입니다. 올 매출 1조원 돌파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얘기가 나왔다. 은행 지점장 H대표의 말이다.

현대차 중국 시장 판매대수 [자료제공=현대차]

현대차 중국 시장 판매대수 [자료제공=현대차]

현대는 그동안 중국에서 번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썼을까요? 현지 잘 나가는 부품업체나 완성차 업체의 지분을 사두거나, M&A를 했었더라면 충격은 덜했을 겁니다. 오로지 상품을 팔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우버는 중국에서 사업을 포기했지만, 사업을 디디(適適)에 넘기면서 지분 30%를 받았잖아요. 시장에서는 졌지만, 전체 게임에서는 우버가 이긴 겁니다. 그래야 한다는 거지요. 기업 그 자체를 한 상품으로 인식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불도저처럼 시장만 향해 달려가다가는 회사 망가지기 십상입니다.

백주가 서너잔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화제는 정부의 대응으로 몰렸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을 잘 못 처리해 이지경에 왔다는 거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도 뭐 하나 보여주는 게 없는 것같아요. 우리의 대중 외교 스탠스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화를 풀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그 사이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에게는 시퍼런 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두 시간여 계속된 만찬 대화, 질문만 나왔지 답은 없었다. 한 숨 소리만 더 깊어졌다.

상하이=차이나랩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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