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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뭐길래] 달걀 25일, 라면 8개월 지나도 무관

중앙일보

입력

‘언제까지’보다 ‘어떤 상태인지’가 더 중요 … 식약처, 소비기한 도입 검토

#1.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이지은씨는 대형마트에 갔다가 빵 한 봉지를 사면 한 봉지를 끼워주는 1+1 이벤트에 참여했다. 유통기한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지만 빵 한 봉지를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집었다. 다음날까지 다 먹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 남편과 함께 빵을 먹었지만 절반이 남았다. 이씨는 “제품 보관만 잘하면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지나도 먹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아무래도 먹기가 찜찜하다”며 “이럴 때에는 버려야 할지, 먹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고 말했다.

#2. 서울 신도림에 사는 직장인 김은정씨는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초콜릿케이크를 구입했다. 집에 와서 먹으려 보니 유통기한이 당일까지였다. 먹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해당 편의점에 가서 제품을 환불했다.

가공된 커피·꿀·설탕은 소비기한 없어 

대부분 사람은 유통기한 마감을 앞둔 제품을 두고 이런 갈등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식품은 우리의 몸속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칫 유통기한이 지나면 인체에 유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통기한은 뭘까.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말한다. 만약 대형마트 진열대에 우유의 유통기한이 9월 21일로 찍혀있으면 소비자에게 판매가능한 날짜가 그날인 셈이다.

예전에는 식품별 권장 유통기한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지만, 지난 1995년부터 단계적으로 자율화를 추진했다. 2000년 9월 1일부터 모든 식품의 유통기한 설정이 자율화됐고, 현재는 식품 제조·판매 업체에서 식품별 특성에 맞춰 자율적으로 유통기한을 설정해 표시하고 있다. 유통기간의 산출은 포장 완료(포장 후 제조 공정을 거치는 제품은 최종 공정을 마친 시점)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장기간 유통해도 부패나 변질 우려가 적은 통조림·잼·커피·장류 등과 같은 품목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품질유지 기한의 개념을 도입했다. 품질유지기한은 식품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보존방법이나 기준에 따라 보관할 경우 해당 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그렇다면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먹어도 될까. 답은 ‘먹어도 된다’다. 식약처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도 반드시 제품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통기한은 소비기한과 다르기 때문이다. 소비기한은 섭취시 부패·변질에 따라 안전에 이상이 없는 최종 일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유통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김밥·초밥·샌드위치 등 부패·변질의 우려가 큰 제품은 맛과 냄새, 색, 겉보기 모양의 변화와 같은 제품의 이상 징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섭취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는 얼마나 날까.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냉동식품이나 통조림, 병에 들어있는 식품은 미생물 번식이나 부패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유제품 등보다는 소비기한이 길다. 업계에 따르면 미개봉시 기준으로 냉동만두는 유통기한이 지나도 1년 이상 냉동 보관만 잘하면 섭취가 가능하다. 참기름의 소비기한은 2년, 식용류는 5년이다. 참치캔은 10년 이상이다.

냉장 기준으로 보통 유통기한이 10일인 우유도 미개봉시에는 40~50일까지 보관할 수 있다. 달걀도 유통기한이 14일이지만, 소비기한은 25일이다. 라면은 8개월이 지나도 먹을 수 있다. 유통기한이 3일인 식빵은 지퍼백에 밀봉해 냉동보관할 경우 20일은 더 먹을 수 있다. 쌀·설탕·소금·꿀·주류 등은 소비기한이 따로 없다. 그러나 김밥이나 햄버거, 도시락 등과 같은 즉석식품은 보관 여부에 따라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지키는 게 좋다. 식품은 ‘언제까지’라는 숫자보다 ‘어떤 상태인가’가 더 중요하다. 식품의 신선도는 눈으로, 코로 확인할 수없다면 소비자가 직접 살피는 게 좋다. 달걀 상태가 의심 될 때는 달걀을 물에 넣어보고 달걀이 가라앉는다면 먹어도 괜찮다. 또 유통기한이 남아도 통조림통이 부풀어오르면 폐기해야 한다.

한편 업계에서는 식품 소비기한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심성보 선임연구원은 “대부분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상한 식품으로 오인해 섭취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버리고 있다”며 “품목별로 유통기한의 표시 방법을 다양하게 적용하는 식품의 기한 표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식약처는 식품의 기한 표시제를 제조일자, 유통기한, 품질유지기한으로 나눈다.

미국·일본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구분

소비기한 도입으로 경제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양은 대략 410만t이다. 1일 발생량만 총 1만1397t에 달한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은 약 8000억원으로 약 20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국민이 음식물쓰레기를 20%만 줄여도 연간 1600억원의 쓰레기 처리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반품 손실률 절감도 가능하다. 한국식품공업협회에 따르면 유통기한 경과 등의 이유로 폐기해 발생한 손실비용은 연간 6500억원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유통기한보다 소비기한을 더욱 일반적으로 쓰고 있다. 미국은 식품에 판매기한(Sell by Date, 판매를 위해 진열되는 기한), 최상품질기한(Best If Used Date, 최상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한), 사용기한(Use by Date, 제품 보존의 최종기한), 포장일자(Closed Date Coded Date, 식품이 포장된 날짜)로 나눠 식품 기한을 표시하고 있다. 일본도 상미기한(賞味期限, 유통기한 경과시에도 품질이 유지되는 식품), 소비기한(消費期限, 유통기한 경과시 판매·섭취 모두 불가능)을 제품에 표기한다. 식약처도 소비기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기한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만 도입의 활용도나 식품·유통산업 발전 등을 두루 살펴봐야 하는 만큼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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