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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CEO] 루쉰도 즐겨 찾은 그 월병집, 매출이 하이디라오와 맞먹어?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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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추석 중추절에는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하고 가족과 나눠먹는 음식이 있다. 월병이다.

중국에는 월병을 파는 수만 개의 브랜드가 있지만(심지어 에르메스,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도 월병을 판다), 청나라 때부터 100년 넘게 서민, 부자, 고위급 정치인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중국인들의 '최애' 월병집으로 꼽히는 유서 깊은 제과점이 있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鲁迅)도 즐겨 찾았다던 그 집, 바로 베이징다오샹춘(北京稻香村, 도향촌)이다.

월병을 포함해 다양한 전통 간식거리를 파는 베이징다오샹춘. [사진 베이징다오샹춘]

월병을 포함해 다양한 전통 간식거리를 파는 베이징다오샹춘. [사진 베이징다오샹춘]

베이징다오샹춘은 중국 전역에 270개가 넘는 단독 매장과 600개가 넘는 판매처를 보유하고 있다. 연매출은 50억위안(약 8632억원)을 웃돈다. 우리나라 명동과 강남에도 진출한 중국의 유명 훠궈(샤브샤브) 체인점 하이디라오(海底捞)와 맞먹는 매출 규모다.

오늘은 이 거대한 제과업체를 이끄는 수장, 비궈차이(毕国才)를 소개해볼까 한다.

유복한 집에서 자라 각양각색 간식 섭렵
때타지 않은 순수한 '군것질 덕후'

비궈차이 제6대 베이징다오샹춘 회장. [사진 중국경제망(中????)]

비궈차이 제6대 베이징다오샹춘 회장. [사진 중국경제망(中????)]

비궈차이는 30여년 전인 1984년, 베이징다오샹춘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전국 각지의 맛있는 간식을 섭렵할 수 있었고, 이는 그를 오늘날의 '과자·빵 마스터'로 만들었다.

비궈차이가 뜬금없이 베이징다오샹춘이라는 전통 제과점에 입사한 것도 맛있는 간식에 얽힌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는 순수하게 '착한 간식'을 좋아한다.

속이 꽉 찬(!) 베이징다오샹춘의 월병. [사진 베이징다오샹춘]

속이 꽉 찬(!) 베이징다오샹춘의 월병. [사진 베이징다오샹춘]

한 번은 전대 회장인 류전잉(刘振英)이 당시 카운터를 보던 부하 직원 비궈차이에게 성냥 한 갑을 달라며 1자오(角)를 건넨 적이 있었다. 비궈차이는 "1자오 받았습니다. 여기 거스름돈 8펀(分)입니다"라며 다른 고객들과 똑같이 류전잉을 응대했다.

몇 년이 지난 뒤 류전잉은 이 일을 회고하며 "비궈차이는 내가 회장인 걸 알고 있었다. 보통 이 사실을 알면 아부하거나 혹은 과분한 친절을 베풀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며 비궈차이를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돈을 벌되, 양심을 속이는 돈은 벌지 않는다.상품을 팔되, 나쁜 상품은 팔지 않는다.이는 가장 근본적인 상도덕이다. - 비궈차이가 임직원에게 자주 하는 말.

비궈차이는 착한 간식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영업사원부터 시작해 회장까지 올랐다. 오랜 기간 그는 차근차근 관련 식품 기술을 배우고 다오샹춘이 100여년간 고수해오던 경영 철학을 몸에 새겼다.

트렌드에 맞춰 알리바바 티몰(天猫)이나 징둥(京东)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비궈차이가 더 중시하는 건 소비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오프라인 판매다.

베이징다오샹춘은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중국 고유의 식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비궈차이.

비궈차이는 연매출 100억위안(1조 7284억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소비자를 상대로 비겁한 수는 쓰지 않는다.

착한 경영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베이징다오샹춘이 생산한 제과의 식품 위생 기준치 통과율은 99.85%, 육류 제품은 99.73%에 달한다. 식품업체로서 매우 높은 수치다.

경쟁자는 없다.파트너만 있을 뿐이다.

서양식 디저트가 중국을 잠식하면서 전통 제과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궈차이가 한 말이다.

그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모든 기업에는 다른 기업이 배울만한 구석이 있다고 설명하며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고 강조한다. 베이징다오샹춘은 다른 기업의 선진 모델을 배워 끊임없이 진화해나갈 것이란 포부를 담고 있다.

여담: '다오샹춘'을 둘러싼 상표권 분쟁

바이두에서 '다오샹춘(稻香村)'을 검색하면 맨 위에는 베이징다오샹춘 홈페이지, 그 밑에 다오샹춘을 소개하는 바이두 백과사전, 그리고 세 번째로 그냥 다오샹춘 홈페이지가 뜬다. 이 마지막 다오샹춘은 '쑤저우다오샹춘'이다. 다오샹춘 명칭을 쓰는 유명 제과업체가 2곳인 셈이다.

베이징다오샹춘(좌)과 쑤저우다오샹춘(우) 로고. 쑤저우다오샹춘 로고엔 늘 Since 1773이 붙는다. [사진 zcool.com.cn]

베이징다오샹춘(좌)과 쑤저우다오샹춘(우) 로고. 쑤저우다오샹춘 로고엔 늘 Since 1773이 붙는다. [사진 zcool.com.cn]

쑤저우다오샹춘(일명 '쑤다오')에 따르면 이곳의 역사는 1773년 쑤저우 관첸가(观前街)에서 시작됐다. 244년의 역사를 지닌 셈이다.

베이징다오샹춘(일명 '베이다오')의 경우 개업 연도가 쑤다오보다 늦다. 1895년이다. 게다가 군벌 혼전으로 1926년 영업을 중지했다가 1984년에서야 관련 식품 계열 5대 계승자인 류전잉(刘振英)에 의해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아무래도 쑤다오보다 역사가 짧다 보니 베이다오는 2008년 다오샹춘 상표를 쓰는 대신 매출의 3%를 쑤다오에 주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좀 복잡한 것이, 베이다오가 '다오샹춘'이 들어가는 상표를 정식 등록한 시기(1997년)는 쑤다오(2006년)보다 10년 정도 이르다. 이 때문에 두 업체는 상표권을 둘러싸고 10년 넘게 분쟁 중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다오샹춘'만 알았지, 베이징과 쑤저우 다오샹춘이 각기 다른 업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차이나랩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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