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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박근혜 구속, 편법 연장까지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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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검사는 판사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그 뻔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검사가 수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죄를 판단하고 형벌을 주는 판사 역할까지 할 때가 있다. 일반 시민은 더하다. 구속을 징역형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구속하지 않으면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비난한다.

형사소송법상 구속 기간 다 돼 #별건 영장으로 기간 연장은 편법 #검사 재량의 기소편의주의에서 #재판 중 보충 수사는 권력의 횡포 #엄중한 법의 심판 필요하지만 #모욕주기식 인민재판은 곤란

그러니 검사나 판사마저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사실에 눈감을 때가 많다. ‘나쁜 놈’의 인권이야 어떻게 되든 우선 구속해서 여론재판으로 두드려 패야 속이 후련하다. 재판 결과는 상관없다. 이미 내 마음속에 결론이 나 있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거대한 국가권력과 개인의 대결이다. 거대한 국가권력에 맞서는 개인에게도 방어할 권리와 수단을 허용해야 한다. 그래서 헌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제27조 제4항)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구속이 유죄를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나중에 무죄로 판결 나도 회복할 길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재판 구속 기한이 16일로 끝난다. 3월 31일 구속된 이후 꼭 200일이다. 그때까지 1심 재판이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 연장을 법원 측에 요청했다. “국정 농단의 정점인 사안이라 중요하고, 피고인이 공소 사실을 부인하는 데다 추가 증거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형사소송에서 공소 제기를 하면 두 달간 구속한 상태로 재판할 수 있다. 필요성이 인정되면 심급마다 두 번씩 연장할 수 있다. 그러니 1심에서 최장 6개월, 2·3심에서는 최장 4개월을 구속할 수 있다.

김진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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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이미 두 번 연장했다. 형사소송법에 정한 기일을 다 쓴 것이다. 그러자 검찰이 편법을 쓰려 한다. 처음 구속영장을 받을 때 포함하지 않은 내용으로 별도의 영장을 받겠다는 것이다. 형법 교수들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온 방법이다.

수사가 끝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나. 한 고법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은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기소 편의주의다. 따라서 기소한 뒤에는 법원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기소부터 해놓고 재판을 하는 중에 애프터서비스 하듯이 추가 수사하고, 보충하는 것은 권력의 횡포라는 것이다. 기소 이후는 수사를 위한 구속이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심을 마칠 때까지 24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265일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6일, 전 전 대통령은 95년 12월 3일 구속됐다. 두 사람은 97년 4월 17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그해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각각 수형 기간이 768일(노태우), 751일(전두환)이었던 셈이다.

무기징역(전두환)과 징역 17년(노태우)을 선고받은 사람치고 너무 일찍 나왔다. 이 바람에 정치적 야합이라는 불만도 많았다. 그렇다고 구속 기간을 억지로 늘려 해결될 일은 아니다.

불구속 수사는 누구를 봐주는 게 아니라 기본 원칙이다. 구속해야 할 경우는 세 가지(형사소송법 제70조)다. 주거 부정, 증거 인멸, 도주 우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주거 부정과 도주 우려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증거 인멸이다.

소송 중 구속은 새로운 수사를 위한 게 아니다. 이미 검찰과 특검이 각종 증거 자료를 다 확보했다. 검찰은 다른 공범들과 입을 맞출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진술이 다 확보된 상태에서 그 역시 억지다.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증거인멸은 기소 단계에서 특정되지 않은 증거를 없앨 가능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국 마피아 수사에서처럼 증인을 살해한다든지 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사실은 재판과 관계없이 피고인에게 계속 고통을 주겠다는 일종의 징벌이다. 여론에 영합하는 것일 수도 있고, 권력자의 심기를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최순실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편법까지 동원해 고통을 주는 것은 일종의 보복이다.

살인자도 수갑을 가려준다. 피고의 인권도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시해도 좋은 인권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엉킨 머리에 화장도 못한 얼굴로 연일 TV 화면에 등장한다. 다른 수감인도 같은 형편이긴 하다. 하지만 연일 TV로 공개되는 사람이 느끼는 모욕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법원이 엄중하게 처벌하더라도 모욕 주는 분풀이는 충분하다. 나라의 품격도 생각해야 한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의 대사가 생각난다. “고마해라. 마이무우따 아이가.”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