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용운·이중섭·차중락 … 망우리엔 근현대사 스토리 넘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 중랑구 망우산에 자리 잡은 망우묘지공원은 격동기 근현대사의 보고(寶庫)다. 일제가 1933년 조성한 ‘망우리 공동묘지’에는 한때 2만8500기의 봉분이 있었으나 현재는 7500기 정도만 남아 있다. 독립운동가·시인·소설가·화가·가수 등 우리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은 분들이 ‘근심을 잊고(忘憂)’ 잠들어 있다. 지금은 산책로와 ‘인문학의 길’ 등이 잘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일제 때 조성 … 현재 7500기 남아 #박인환, 순조의 딸 부부, 조봉암 #조선총독부 근무 일본인 2명도 묻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가치 #묘소 버튼 누르면 시·노래 나오기도

 예술가와 독립유공자 등이 묻힌 망우리 공동묘지.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의 묘소. [정영재 기자]

예술가와 독립유공자 등이 묻힌 망우리 공동묘지.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의 묘소. [정영재 기자]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주옥같은 시편을 남긴 시인 박인환(1926∼1956) 묘소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가수 박인희의 낭랑한 목소리로 ‘세월이 가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법/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해질 무렵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흩날릴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처연한 상념에 잠기게 된다.

화가 이중섭의 묘소에 서 있는 추모비. [정영재 기자]

화가 이중섭의 묘소에 서 있는 추모비. [정영재 기자]

박인환 묘소에서 조금 더 가면 ‘백치 아다다’를 쓴 소설가 계용묵(1904∼1961)이 잠든 자리가 나온다. 현대문학사와 문우 일동이 세운 추모비가 있을 뿐 돌보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무성하다. 그 옆엔 화가 이중섭(1916∼1956)의 묘소가 있다. 제주 서귀포에 이중섭 미술관, 부산 범일동에 이중섭 거리가 조성될 정도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묘소는 조촐하다. 후배 차근호가 세운 추모비에는 이중섭의 그림에 나오는 두 아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방정환 연보비엔 어린이에 대한 당부 담겨

소파 방정환의 묘소에는 ‘어린이를 잘 키우자’는 내용의 비석이 서 있다. [정영재 기자]

소파 방정환의 묘소에는 ‘어린이를 잘 키우자’는 내용의 비석이 서 있다. [정영재 기자]

야구인 이영민(1905∼1954)의 묘터는 찾기가 어렵다. 가족들이 묘를 이장해 숲속에 직사각형 묘비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축구 선수로도 이름을 날렸던 이영민은 1923년 동대문야구장 1호 홈런을 날렸다. 대한야구협회는 그를 기려 매년 전국대회 타율이 가장 높은 고교야구 선수에게 ‘이영민 타격상’을 수여한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여심을 훔쳤던 가수 차중락(1942∼1968)의 묘소도 망우리에 있다. 차중락은 중·고 시절 육상선수였고, 대학에선 보디빌딩을 해 1961년 미스터코리아 2위에 올랐다. 67년 TBC(동양방송) 방송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으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차중락은 그 이듬해 뇌막염으로 2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조선 순조의 딸인 명온공주(1810∼1832)와 부마 김현근(1810∼1888)이 나란히 누운 묘소에는 현대사의 상흔이 새겨져 있다. 명온공주는 23세에 요절했고, 김현근은 78세까지 살았다.

 만해 한용운과 부인 유씨의 묘. [정영재 기자]

만해 한용운과 부인 유씨의 묘. [정영재 기자]

한강을 굽어보는 묘지공원 남쪽에는 독립유공자들이 다수 모셔져 있다. 도산 안창호(1878∼1938)의 묘는 1973년 서울 강남의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으나 지난해 3·1절에 묘비만 이곳으로 다시 옮겨 왔다. 애국지사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1879∼1944)과 부인 유씨가 합장돼 있는 묘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어린이날을 지정한 소파 방정환(1899∼1931)의 연보비에는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늘 책을 읽히십시오’ 등의 당부가 적혀 있다.

1959년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진보당 당수 조봉암(1898∼1959)의 비석 뒷면에는 아무런 글이 없이 ‘침묵의 소리’를 전하고 있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13명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주차장 좁고 대중교통 부족 아쉬워

망우묘지공원 현대사 별들

망우묘지공원 현대사 별들

일본인 묘소 2기도 눈길을 끈다. 조선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했던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는 임업 발전에 기여했고, 조선을 사랑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크고 화려한 그의 묘소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고 쓴 추모비가 있다.

반면 총독부 산림과장을 지냈던 사이토 오토사쿠(1866∼1936)는 식목일을 제정하고 미루나무를 들여오는 등 공적이 있는 반면 산림 수탈의 지휘자라는 비난도 받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비석의 이름 맨 앞 글자를 누군가 후벼파 훼손해 놨다.

이처럼 다양하고 뛰어난 근현대사 인물들이 한자리에 있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러나 대중교통과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미비한 게 아쉽다. 남경기 망우묘지공원 관리소장은 “주차장이 협소(승용차 47대 주차)한 탓에 공원으로 올라오는 도로 양쪽에 주차하는 차량이 많다. 그래서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민간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4년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의뢰로 ‘망우묘지공원 내 인문학적 길 조성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 연구의 책임연구원인 김영식 내셔널트러스트 망우분과위원장은 “망우묘지공원은 격동기의 스토리가 담긴 빼어난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묘지가 두 군데(스웨덴 우드랜드 묘지공원, 마카오 신교도 묘지) 있다. 망우묘지공원도 세계문화유산에 충분히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