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쓸신세] 무섭고도 슬픈 노인의 죽음, 노노개호(老老介護)의 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에서 시작된 ‘노노개호(老老介護)’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개호(介護)는 간호, 병수발이라는 뜻의 일본어입니다. 즉, ‘노노개호’ 란 노인이 노인을 수발하고 돌본다는 뜻인데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 오늘은 노노개호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일본 노인들의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화장장에서 발견된 80대 노부부

2005년 11월 후쿠이현(福井県)오오노시(大野市)에 있는 화장장 소각로에서 2명의 유해가 발견됩니다. 이 화장장은 30년 넘게 사용하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유해에서 어렵게 찾아낸 치아의 치과기록 등을 살펴본 결과 이 유해의 주인은 80세 남성과 82세의 그의 아내로 확인됐습니다.

후쿠이현 화장장 동반자살 사건

후쿠이현 화장장 동반자살 사건

30년 넘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이곳에서 이들은 어떻게 유해로 발견됐을까요. 화장장 부근엔 승용차 한 대가 시동이 걸린 채 놓여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클래식 음악이 큰 소리로 흘러나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갔는데요. 차 안에는 주유소 영수증 뒷면에, 이들 부부가 집을 나온 뒤 취했던 행동이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오후 4시 30분, 차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8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왔다’
‘차로 형제의 집과 추억의 장소를 돌아본 뒤 화장장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무런 말 없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
‘숯, 땔감으로 화장을 준비 한다’
‘오전 0시 45분에 점화한다. 안녕’

후쿠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화 '기쁨의 노래' [사진=후쿠이신문]

후쿠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화 '기쁨의 노래' [사진=후쿠이신문]

경찰은 노부부가 화장터에서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또 이들이 로프를 이용해 문을 닫았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부부가 소각로에 나란히 누워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유산은 모두 기부하겠다”

다음날 시청엔 남편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에는 집과 논, 밭 등 부동산 내역과 함께 “유산은 모두 시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이 적혀있었습니다. 서류는 약 1년전 작성된 것으로 미루어, 부부는 꽤 오래전부터 죽음을 용의주도하게 준비해왔던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끔찍한 죽음을 택했던 걸까요.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당뇨병 환자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몇 년전부터는 치매증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차로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건 물론이고, 청소와 세탁 등 아내의 병수발을 도맡아해왔습니다.
부부는 사이도 좋았다고 합니다. “아저씨가 아내를 너무 좋아해서 두 사람은 항상 손을 잡고 함께다녔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병수발에 지친 남편은 함께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말았던 겁니다.

집에서 간호하는 세대의 절반이 ‘노노개호’

일본에선 '노노개호' 를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돌보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고령의 아내가 고령의 남편을 돌보거나, 65세 이상의 자식이 고령의 부모를 돌보는 케이스가 이에 해당합니다.

2016년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국민생활기초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는 세대 가운데 54.7%가 ‘노노개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양측 모두 75세를 넘는 세대가 30.2%로 처음 30%대를 넘었습니다.닛케이 신문은 “고령화가 진행되는데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가족이 줄어든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노노개호'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그래픽=닛케이신문]\

'노노개호'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그래픽=닛케이신문]\

집에서 이뤄지는 ‘노노개호’는 아무리 가족이지만 괴롭고 힘듭니다. 대개는 일도 그만두고 개호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구나 병수발을 드는 사람도 고령자라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특히 치매환자의 경우 간호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 방임이나 폭력 등 학대로 이어질 확률도 높습니다.
고령자에 의한 살인사건 가운데 ‘병간호에 지쳐서’가 저지른 경우가 전체의 14.6%를 차지한다는 경찰청(2012년) 통계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나는 가족을 죽였다"

NHK '나는 가족을 죽였다'

NHK '나는 가족을 죽였다'

2016년 NHK가 방송한 ‘나는 가족을 죽였다-‘개호살인’ 당사자들의 고백’편은 ‘개호살인’ 당사자 11명을 직접 취재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노모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제 인생은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어머니를 병간호 해야 한다는 제 사정을 봐주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간호를 위해 적금을 깨서 썼지만 금새 바닥이 났고, 직장을 그만두고 새벽과 심야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습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로가 쌓였고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80대 어머니를 살해한 50대 남성)

아내의 간호를 내가 해야 한다는 부담에 강한 책임감이 몰려왔습니다. 제 몸도 성치 않았습니다. 아내를 일으킬 때마다 허리가 아팠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몸이 아팠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떠나면 아내는 얼마나 불쌍할까...’ 걱정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간병 생활의 출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87세 아내를 살해한 85세 남편)

혼자서 어머니 병간호를 7년간 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치매가 온 뒤로는 불행이 시작됐습니다. 치매는 점점 악화됐고, 어느 순간 눈을 떼면 자신의 배설물과 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사건 당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후 4시 어머니를 씻기고, 오후 5시쯤 저녁을 먹었습니다. 특별히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어머니의 목을 조른 순간의 기억은 없습니다 (88세 어머니를 살해한 59세 남성)

'개호살인’ 가해자 70%가 남성

일본 후쿠시대학 유하라 에츠코(湯原悦子)  교수가 1998년부터 2015년까지 18년간 신문기사를 토대로 일본에서 발생한 ‘개호살인’, ‘개호자살’ 716건을 분석했습니다

가해자가 남성이 경우가 512건(72%), 여성인 경우가 194건(27%)로 나타났습니다. 남편이 가해자인 경우 240건(72%), 아내가 가해자인 경우 93건(28%)로 부부간에도 남편이 가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한 사건을 보더라도, 가해자가 아들이 경우가 235건(71%)으로 나타난 반면, 가해자가 딸인 경우는 76건(23%)으로 훨씬 적었습니다.

병수발을 하는 사람은 7대3의 비율로 여성이 훨씬 많은데(일본 후생노동성의 2013년 조사) 어째서 ‘개호살인’은 남자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걸까요. 유하라 교수는 “남자들은 병간호를 일과 동일시해,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일 중심으로 살아왔던 남성은 고민을 주변에 밝히는 일이 적고 고립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개호의 부담을 껴안고, 우울병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보입니다”

“개호 경험이 있는사람과 가볍게 이야기할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등 상담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혼자 끌어안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합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문제

치매 전문 온라인매체 닌치쇼 온라인’은 ‘노노개호’의 배경으로 ‘생활 양식의 변화’를 꼽았습니다. 전에는 ‘장남이 부모님을 모신다’는 개념이 있어지만 지금은 자식이 있어도 따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고 삶의 방식도 달라진 겁니다.

병 든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 [사진=유튜브 캡쳐]

병 든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 [사진=유튜브 캡쳐]

남편이나 아내 외에는 병간호를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가치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0년에 도입된 ‘개호보험 제도’에 따라, 40세이상 국민은 모두 개호보험료를 납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자기부담금 10~20% 정도만 부담하면 돌봄서비스, 재활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양시설보다는 집이 편해서”,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것같아서” 등의 이유로 집에서 병간호를 받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고 합니다.

사진은 특정 내용과 관련없습니다 [사진=산케이 온라인]

사진은 특정 내용과 관련없습니다 [사진=산케이 온라인]

전문가들은 ‘개호’는 절대 혼자서 고민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조언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가족을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리츠메이칸대 산업사회학부 카라카마 나오요시(唐鎌直義) 교수는 “노부부간의 개호에는 한계가 있다. 둘만 남지 않도록 가족과 행정이 개입할 기회를 확대하지 않으면 이같은 사건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노노개호' 행복한 결말도 있다.

오오바 남편 (노노개호)

오오바 남편 (노노개호)

마지막 밀월 (책) 노노개호

마지막 밀월 (책) 노노개호

 일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등을 역임한 작가 오오바 미나코(大庭みな子)는 1996년 여름 쓰러져 뇌출혈, 뇌수막염, 뇌경색 등 합병증으로 반신 불수가 됐습니다. 남편 오오바 토시오(大庭利雄)는 그런 아내를 11년간 돌보며 매일 쓴 일지를 두 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마지막 밀월-오오바 미나코의 개호일지『終わりの蜜月 大庭みな子の介護日誌』新潮社(2002)와 ‘마지막 벚꽃-오오바 미나코의 날들’『最後の桜 妻・大庭みな子との日々』河出書房新社 (2013) 입니다.

그는 “병간호 기간은 두번째 허니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매일 아내를 돌보며, 단순한 부부, 남녀관계가 아니라 한 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일체감은 서로 건강했다면 맛볼 수 없는 감각일 것이다” (마지막 밀월)

개호복지사이자 개호 저널리스트인 고야마 아사코(小山朝子)는 산케이신문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1더하기 1이 2가 되지 않고 0.5더하기 0.5가 되는 걸로 충분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났다’며 안도하는 '노노개호'의 일상, 거기에는 두 사람만의 느린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평온한 노노개호가 있다는 점을 꼭 밝히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