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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본연의 맛 보여주려 연 100억원 적자에도 운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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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14면

개장 3년 맞은 BMW 드라이빙 센터

드라이빙 센터 방문객들이 BMW 차량을 타고 주행 트랙의 S자 코스를 통과하고 있다.

드라이빙 센터 방문객들이 BMW 차량을 타고 주행 트랙의 S자 코스를 통과하고 있다.

2014년 8월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BMW 드라이빙 센터’가 개장 3년 만에 방문객 50만 명을 넘었다. 770억원을 들여 만든 이곳은 단순히 차를 전시·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초보 운전자는 올바른 주행법, 숙련된 운전자는 고급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국내 어떤 완성차 메이커도 시도하지 않았던 비즈니스 모델이다. 주행 서킷에서 스티어링 휠을 잡은 방문객도 7만 명이 넘는다. 지난달 21일 BMW의 평소 철학인 ‘운전의 즐거움(Sheer Driving Pleasure)’을 체감하기 위해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를 찾았다. 마침 날씨가 맑고 청명해 운전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신차 전시장과 식당, 어린이 교육시설이 함께 있는 BMW 드라이빙 센터 외관. [사진 BMW코리아]

신차 전시장과 식당, 어린이 교육시설이 함께 있는 BMW 드라이빙 센터 외관. [사진 BMW코리아]

“폼 잡겠다고 스티어링 휠을 한 손으로 잡으면 사고 위험성이 커집니다. 꼭 3시와 9시 방향에 맞춰 양손으로 잡으세요.”

3년 동안 방문객 50만 명 넘어 #시속 160㎞ 질주에 급정거 체험도 #자동차 만지고 타고 놀 곳 있어야 #고성능 차 즐기는 덕후 문화 발달 #국내 업체도 트랙 운영 나설 필요

서킷 주행에 앞서 인스트럭터가 올바른 운전법에 대해 10분 정도 강의를 한다. 운전자 머리와 지붕 사이의 공간(헤드룸)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정해야 하고, 오른쪽 다리를 쭉 뻗지 말고 무릎 관절을 30도가량 구부린 상태로 운전해야 한다는 등의 설명이 이어진다. 인스트럭터 이형석(37)씨는 “무릎을 편 채로 운전을 할 경우 차량 앞쪽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고관절까지 충격을 받아 더 많이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무 고깔을 세워두고 좌우로 비켜가는 슬라럼 코스에서는 코너링 조작 기술을 익혔다. 고깔과의 거리가 많이 벌어지면 곧바로 인스트럭터 이씨의 무전이 전해진다. “코너를 너무 크게 돌았어요. 좀 더 차를 바짝 붙이세요.”

운전대 3시·9시 잡고 무릎은 30도 굽혀야

급정지 시 사용하는 ‘풀 브레이킹’ 역시 운전 교육에서 배울 수 있다. 오른발과 브레이킹 패드를 100% 접지한 상태에서 ‘쾅’하는 느낌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충돌 사고의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교육에선 풀 브레이킹 실습이 이어졌다. 출발선에서 40㎞로 가속해 약 20m 정도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으니 차에 강한 진동이 오면서 급정거했다. 첫 번째 실습 때만 하더라도 제동거리가 4m 가까이 됐지만 차츰 연습을 하니 1m 이하로 줄일 수 있었다. 이형석씨는 “한국인 운전자 10명 가운데 9명이 풀 브레이킹을 할 줄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며 “브레이크가 부서질 것처럼 밟아야 원래 설계된 자동차의 제동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30분 정도 기본기를 다지고 난 뒤 주행 서킷으로 이동했다. 마침 올 7월 완전변경(풀체인지)돼 출시된 4시리즈 모델 ‘428i’를 타게 됐다. 방문객들은 추첨을 통해 본인이 체험할 자동차를 고를 수 있다. 총 6대의 차량이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구간별로 가속과 감속을 반복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최적 주행경로(레이스 라인)를 그리며 달리는 인스트럭터의 차량을 최대한 따라갔다. 속도를 올리다 보면 서킷 주행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650m 직선 주로에서는 있는 힘껏 가속페달을 밟아봤다. 245마력, 4기통 직분사 엔진이 힘을 발휘하며 경쾌하게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60㎞.

이뿐만 아니라 눈앞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물줄기(장애물)를 피해 노면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까지 마쳐야 한다. 스티어링 휠을 조금이라도 늦게 꺾으면 차는 곧바로 물을 뒤집어쓴다. 140분간 이어지는 주행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피드백이다. 인스트럭터 이씨는 “코너를 돌 때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을 밟으면 차량이 오히려 헛돌거나 최적 주행경로 바깥쪽으로 이탈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바퀴 구동력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4륜구동 차량의 장점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3개의 바퀴가 빙판 위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한 개 바퀴에 전체 동력의 100%를 몰아 그 힘만으로 빙판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다.

독일식 기술인력 양성 코스도 운영

서킷에서 나와 전시장에 들어서니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GT) 등 BMW의 ‘스테디 셀러(꾸준히 인기를 끄는 차량)’가 자태를 뽐냈다. 그 가운데 노란색 올드카 한 대가 마치 손을 들고 있는 것마냥 눈길을 붙잡았다. 앙증맞게 생긴 1959년산 ‘이제타’다. 이탈리아 메이커 이소에서 만든 경차를 사들인 다음, BMW의 오토바이 엔진을 얹은 장난감같이 생긴 차다. 앞문을 열면 냉장고처럼 통째로 올라와 두 명이 탈 수 있는 특이한 형태로 1954년부터 61년까지 연간 13만 대가 넘게 팔리는 등 인기를 끌었다.

올드카 안팎을 이곳저곳 만져보자 장성택(55·상무) BMW 드라이빙 센터장이 손수 운전하는 실제 차량을 태워줬다. 전시용 차량인 줄만 알았던 이제타는 드라이빙 센터 실내를 휘젓고 다녔다. 장 센터장은 “독일에서 옛날 순정 부품을 조달하거나 아예 지구상에 없는 부품은 한국에서 손수 깎아 주행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실제 도로에 나가 영종도 주민을 상대로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8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지금은 단종된 스텔라·엑셀의 엔지니어링에 참여했고, 95년부터 BMW코리아에서 근무한 정통 기술인이다. 지난해 8월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기술인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라면 대규모 마케팅 투자가 들어간 드라이빙 센터 총책임자로 기술공 출신이 아니라 세일즈 전문가가 선임됐을 것”이라며 “‘덕후’(한 가지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를 존중하는 독일 특유의 기술 중심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BMW코리아는 지난 3월 독일식 기술인력 양성과정인 ‘아우스빌둥(Ausbildung)’ 프로그램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공동으로 도입했다. 이론과 실전을 결합한 차량 분야 인재를 키워내는 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올해 선발 인원은 총 90명이다.

영종 드라이빙 센터 2층에는 어린이 대상 자동차 교육을 할 수 있는 ‘주니어 캠퍼스’도 마련돼 있다. 모니터를 이용해 자동차에 색상을 입히는 일부터 시작해 엔진·기어 등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장소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하늘색과 흰색 BMW 로고를 입힌 미니카를 타고 좌회전·U턴 등 각종 신호등 교육도 받는다. 주니어캠퍼스에는 지난 3년간 소외계층 어린이 3663명을 포함해 약 3만 명의 초등학생이 참여했다.

“자동차로 으스대는 문화 진부하지 않나”

사실 영종 드라이빙 센터는 매년 100억원 가량의 적자가 난다. 수익성을 따진다면 굳이 24만㎡ 규모 부지, 축구장 약 33개 규모의 시설을 운영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BMW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비록 외국계 기업이지만 오히려 해외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들여와 한국 소비자에게 한 차원 높은 자동차 문화를 선보이겠다는 것이 BMW 코리아의 전략이다. 영종 드라이빙 센터만 하더라도 BMW그룹이 독일·미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주행 서킷을 갖춘 곳이다. 장 센터장은 “한국도 이제 자동차를 남에게 으스대는 수단으로만 삼는 건 진부하지 않냐”며 “차를 만지고 타고 놀 곳이 있어야 테크니션이 더 많이 생겨나고 엔지니어링·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한 걸음 앞선 기술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는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뉘르부르크링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서킷이 100개 이상 된다. 일본에서도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후지스피드웨이에 경주용 자동차 F1, 모터사이클 경기장 이외에도 도요타 안전교육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도요타는 이곳에서 빗길이나 눈길 등 위험천만한 실제 상황에서 차량 바퀴 회전을 제어하는 VSC 시스템을 체험하도록 한다.

반면 현대차가 올 4월 개관한 ‘모터스튜디오 고양’에는 대규모 전시관은 있지만 별도 서킷은 마련돼 있지 않다.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전남 영암, 강원도 인제는 물리적으로 너무 멀고, 용인 스피드웨이는 입장 제약이 너무 많이 따른다”며 “현대차가 고성능 브랜드를 내놓은 만큼 조금 더 고객한테 보답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고성능 프리미엄 세단 ‘G70’과 고성능 브랜드 ‘N’을 동시 출시했다. 최고 시속 270㎞의 제원을 가진 기아 ‘스팅어’를 사더라도 국내에선 속도계의 최고 시속 110㎞ 구간에 집중하며 ‘걸음마’에 만족해야 한다.

“외국인 임원들은 종종 한국인이 취미가 없고 다들 정치같이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고 지적한다.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면 보다 한국인의 사고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장 센터장의 말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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