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시장 유전자치료, 한국은 손발 묶였다

중앙일보

입력 2017.09.30 02:06

업데이트 2017.09.3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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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 (생명과학 연구)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조용하다. 이러다 큰물 다 지나가고 말 것 같은 위기감을 많이 느낀다.”(김병동 서울대 명예교수)

획기적 치료법인 유전자가위 등
생명윤리법에 막혀 연구 못해
규제 피해 외국과 공동 연구도

“인간지놈처럼 우리만 뒤처질 것”
참다 못한 과학자들 공동 성명

“법은 제정된 뒤 시간이 흐르다 보면 과학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박인숙 바른정당 국회의원)

국내 최고 과학자·전문가들이 생명공학·의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현행 생명윤리법을 개정할 것을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29일 ‘유전자 교정 기술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향’을 담은 ‘제67호 한림원의 목소리’ 성명을 공표했다. 한림원은 성명에서 ▶현재의 기술 수준에 맞춰 생명윤리법 제47조의 개정 ▶질환별 맞춤 중개연구 활성화 ▶민간 심의위원회를 통한 유전자 교정 임상시험의 허가 ▶대국민 공론화를 통한 가이드라인과 법률 제정 등을 요구했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우리나라의 유전자 치료 연구는 극히 제한적인 연구만을 허용해 사실상 유전자 치료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생명과학연구와 윤리적 기준 사이의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함으로써 관련 연구의 활성화를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47조 1항은 ▶국내 유전자 치료 연구를 유전질환·암·에이즈,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이면서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보다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

하지만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배아세포나 생식세포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치료를 금지하고 있을 뿐 대상 질환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 한국이 명시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itive)’ 법 체계라면 외국은 금지하는 것을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체계다.

세계적 권위자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지난달 초 자신이 만든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의 돌연변이 유전자 교정에 성공하고도 연구 성과가 미 오리건대 공동 연구팀에 돌아갔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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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만 해도 사실상 전무했던 세계 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2023년이면 3조원을 넘어서면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자가위는 이런 21세기 유전자 치료의 최첨단에 서 있는 기술이다. DNA의 특정 부위를 마치 가위처럼 잘라내고 붙일 수 있는 교정기법이다.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질병을 원천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김병동 명예교수는 “우리가 조금 늦어지면 인간지놈 프로젝트처럼 세계 주요국이 참여하는데 한국은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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