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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 유전자 교정이 죄 되는 나라, OECD국 중 한국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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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식물팀 연구원이 배양된 식물 세포를 살펴보고 있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콩·토마토 등 다양한 농작물에 적용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식물팀 연구원이 배양된 식물 세포를 살펴보고 있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콩·토마토 등 다양한 농작물에 적용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2013년 1월 당시 서울대 김진수 화학부 교수는 ‘3세대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을 교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의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실렸다. 김 교수는 이후 줄기세포·인간배아 연구 권위자인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에게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가 교정된 아기 원숭이를 낳게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연구는 여러 이유로 진행되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가 드리운 그늘 여전 #치료제 개발 허가 한 건도 없어 #“합법적 틀 있어야 합리적 규제 가능 #더 늦기 전에 불법 족쇄 풀어줘야”

3년 뒤 이번엔 미탈리포프 교수가 김 교수에게 역제안을 해 왔다. 원숭이 대신 인간배아를 교정하는 연구였다. 김 교수의 유전자가위 기술과 분석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연구였다.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인간배아 연구를 할 수 없었던 김 교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석학의 연구는 지난달 초 ‘세계 최초 돌연변이 인간배아 교정’이란 내용으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하지만 세계 주요 외신들은 연구 성과를 미탈리포프 교수의 공으로 보도했다. 미탈리포프가 연구 아이디어를 처음 냈고, 실험도 미국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우리 기술로 국내 환자들을 위한 연구를 할 필요가 절실한데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치료 연구와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김 교수와 같은 세계적 과학자를 보유하고도 규제로 손과 발이 꽁꽁 묶여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5992억원이었고, 2022년이면 26억3400만 달러(약 3조165억원)까지 급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국내 시장 규모는 지난해 42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정체돼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서주환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162개 기업에서 약 418개의 유전자 치료 제품이 개발 중일 정도로 봇물이 터지고 있지만 한국은 유전자 치료제 허가 사례가 전무한 빈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규제다. 한국이 과거 줄기세포 논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되면서 관련 연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이후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후 등장한 유전자가위 연구도 마찬가지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체내 유전자 치료를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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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진국에서도 관련 규제는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에서 유전자치료자문위원회를 운영, 유전자 치료에 관한 임상시험과 신약 허가에 관한 심의를 다른 의약품보다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대상 질환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일본도 2015년 ‘유전자치료 임상연구에 관한 지침’ 중 치료 대상 질환을 명시한 조항을 삭제했다. 또한 미국은 연방정부가 주 정부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줄기세포 연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줄기세포 연구인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 생명연구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유전자가위 기술의 오·남용을 반대의 이유로 든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는 “유전질환은 1만 가지가 넘는데 이를 완전히 정복하려면 엄청난 수의 인간 배아가 필요하다”며 “유전자 가위의 장기적 위험과 부작용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진수 교수는 “불법화해서는 오·남용을 규제할 수 없다”며 “합법화의 틀 속에서야 합리적 규제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유전자 치료 분야는 세계적으로 시간을 다투며 경쟁하는 분야라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순식간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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