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지난 28일 자국 내외에서 북한과 합작한 중국 기업에 사업장 폐쇄를 명령했다. 자국 내에 세워진 북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120일 이내에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폐쇄 명령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나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75호에 따른 이행 조치다.
전문가가 본 ‘세컨더리 보이콧의 힘’ #세계 1위 무역국 중국, 금융이 약점 #미국의 제3국 금융제재 큰 위력 #“북한 해외 수입의 절반 차단 효과 #중, 북·미 협상 등 국면 반전 기다려”
이면에는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개인·기업·금융기관 제재) 적용을 피하기 위한 중국 당국의 긴급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북한의 돈줄을 끊기 위해 중국을 압박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제재망을 촘촘히 짜고 구멍을 찾아 막아 가기 시작하면 북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조련사가 채찍을 드니까 꾀를 부리던 판다가 뛰기 시작했다”며 “중국이 유엔 결의를 지키면 제재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크든 작든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낸 결정적 계기는 결제통화인 달러를 지렛대로 한 미국의 금융제재다. 중국이 세계 1위의 무역대국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기업·은행과 거래하다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으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은행을 비롯해 전 세계 은행들은 미국 달러를 주요 결제수단으로 쓰고 있다. 북한과 거래한 사실이 발각돼 미 재무부로부터 금융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면 달러 결제를 차단당한다.
무역왕국 중국의 약한 고리가 금융인 측면도 있다. 국유 은행에 국가 자산의 90%가 집중돼 금융이 치명타를 입으면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은행들도 선제적으로 북한 기업·은행과의 거래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압박에 직면했다.
중국의 은행들이 북한과 거래를 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골드만삭스 출신 김문수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은 “이번 금융제재는 저수지와 특정 전답 간의 관개로를 막아버리는 것”이라며 “물동이로 길어 일일이 논에 물을 댈 수는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 같은 전문가들은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면 북한이 연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100억 달러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차단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서울대 김병연(경제학) 교수는 “골목시장 등 소규모 장마당까지 포함해 800여 개 시장이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경제와 금융 제재가 본격화되면 외부에서 물자뿐 아니라 구매력 자체가 유입되지 않아 장마당이 주저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관건은 중국이 얼마나 제대로 북한과의 거래를 차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신성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이라는 한계선을 넘은 이상 중국도 상황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며 “미국과 충돌할 수 있는 빌미를 주지 않도록 단속 강도를 높이면서 북·미 협상 등 국면의 반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