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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영유의 직격 인터뷰

“유치원 파동 … 아이들 제쳐놓고 어른들끼리 싸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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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유아교육의 대모 이원영 명예교수가 본 유치원의 미래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창의적인 인재 양성의 출발점은 영유아 교육이라며 유아교육 시스템의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창의적인 인재 양성의 출발점은 영유아 교육이라며 유아교육 시스템의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아이들을 제쳐놓고 어른들끼리 충돌했다.” 이원영(75) 중앙대 유아교육학과 명예교수의 일침은 따끔했다. 유치원의 주인공은 아이들인데 원장들은 동심을 헤아리지 않고, 교육부는 국공립유치원 증설을 서둘렀고,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는 것이다. 휴업 강행→철회→강행→철회를 오락가락했던 ‘9·18 사립유치원 사태’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는 “저출산에 대비해 유아교육의 새 틀을 짜지 않으면 공·사립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모두 절벽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유아교육의 그랜드 플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유아교육의 대모로 불리는 이 명예교수를 만나 사립유치원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들어봤다.

유치원 파동 근본 원인은 저출산 #이대로 가면 10년 내 절반 문 닫아 #국공립 24 → 40% 확대 옳지만 #100년 뿌리내린 ‘사립’ 공도 봐야 #4차 산업혁명엔 유아교육 더 중요 #빅데이터로 시설·교원 재설계하고 #엄마들만 희생 ‘양육독박’ 깨야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이 해법

사립유치원 휴업 파동의 상처가 깊다.
“언제 불씨가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 유치원이 문을 닫으면 제일 힘들고 속상한 건 아이들이다. 그런데 사립유치원의 집단이기주의만 비난할 뿐 아무도 아이들 입장을 배려하지 않았다. 엄마들조차 그랬다. 교육부는 불끄기에만 급급했다. 퇴직했다고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나부터 반성한다.”
사립유치원들이 신뢰를 많이 잃었다.
“그들의 요구는 세 가지였다.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 반대, 재정지원 확대, 감사 규정 완화다. 문제의 핵심과 합리적 이유를 갖고 정부에 요구했어야 했는데 방법이 어설펐다. 국회 앞에서, 광화문 앞에서 데모하면 들어줄 거라고 잘못 생각한 거다. 전국 4291개 사립유치원 중 이번 사태를 주도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은 3500여 개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없어 우왕좌왕했다.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지난 100년 동안 국가가 나 몰라라 했을 때 열악한 환경에서 유아교육의 뿌리를 내린 집단이 사립유치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이들을 잘 가르칠 궁리를 함께해 보자는 거다.”
유치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현황부터 보자. 만 3~5세가 다니는 유치원은 전국에 9000여 개가 있다. 국공립이 4696개, 사립이 4291개로 원아 수는 70만 명이다. 국공립은 숫자는 많지만 농어촌 지역 소규모까지 합친 것으로 17만 명(24%)이 다닌다. 나머지 53만 명(76%)은 사립유치원 원아여서 사립의 영향력이 크다.”
국공립과 사립 비율이 24대 76인데 세계적으론 어떤 수준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69%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서 정부는 2022년까지 국공립 비율을 40%로 확대해 책무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세기(世紀)의 충돌이 발생했다.”
세기의 충돌이란 어떤 의미인가.
“유치원의 과거 100년, 미래 100년이 충돌했다는 뜻이다. 이해하려면 유치원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유치원은 1897년 일본의 부자 장사꾼들이 부산에 거주하며 자기 자식에게 신식 교육을 시키려 한 게 시초다. 한국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우리 유치원의 뿌리는 이화여전 선교사들이 기독교 선교 목적으로 유치원을 시작했던 1914년으로 봐야 한다. 미국 선교사 브라운리(Brownlee·한국명 부래운)가 양반집과 저소득층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눈이 파란 귀신이 와서 아이들 영혼을 빼앗아 간다’며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선교사들은 길거리 아이들 14명을 데려다 씻기고, 먹이고, 입히며 손짓 발짓으로 교육했다. 정동교회 뒤 젠센기념관에 있었던 정동유치원(현 이화여대부속 이화유치원)이 모태다.”
사립유치원의 역사가 흥미롭다. 공립은 언제 생겼나.
“사립은 지난 100년간 유아교육을 주도했다. 국가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76년 3월이다. 서울 동서남북 4개 교육구청 산하 초등학교에 유치원 학급을 시범운영했다. 당시 전국 유치원생이 3만7197명이었는데 4개 공립의 원아는 160명이었다. 유치원생 비율이 2%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82년 유아교육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유치원이 증가했다. 당시 새마을유아원도 취원율에 포함시켰다. 2004년에는 유치원은 ‘학교’라는 조항이 포함된 유아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초·중·고’가 아닌 ‘유·초·중·고’로 표기되고 공립이 확대된 것이다. 이번 사태를 사립유치원의 뿌리내리기 100년과 국가 주도 미래 유아교육 100년의 충돌로 보는 이유다.”
사립유치원도 저출산과 공공성 강화 흐름에 대비했어야 했다.
“유아교육진흥법과 유아교육법이 제정될 때까지가 과도기였다. 아이들이 넘쳐나던 시절에 저출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면이 있다. 2004년에 사립이 9500개일 때 공립은 몇 백 개 안 됐다. 사립이 반 토막 났는데 정부는 주먹구구식 행정을 했고, 사립은 손을 놓고 있었다.”
정부의 국공립 확대는 옳은 방향인가.
“OECD 국가로서 국가 책임 주도로 가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에 뿌리를 내린 사립유치원이 저출산 절벽에 내몰렸는데 옆에 공립을 만든다니 아우성치는 것이다. 뿌리도 살리고 나무도 크게 자라게 하는 미래지향적인 상생 정책이 필요하다.”
사립유치원은 정부에 돈을 더 달라고 하면서 회계·재무 감사 축소를 요구한다.
“갑자기 재무회계 등의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 정보 공시를 하라고 하니 놀란 건 분명하다. 게다가 예산 감사를 받게 됐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신경쇠약에 걸린 원장들이 많다. 구멍가게 식 운영을 했는데 큰 마트처럼 운영하라니 정신이 없는 거다. 자존심이 상해 교육부에 준비교육 좀 해 달라고, 천천히 시간 좀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울지만 말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이다. 사립은 잡초처럼 제멋대로 뿌리를 내렸다. 예산도 주먹구구 식이고 재무회계도 낯설다. 그걸 바꿔 공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된 거다. 공무원의 특성상 수시로 담당자가 바뀌어 행정의 지속성이 없어 사립유치원의 행정력과 재무회계, 예산집행 교육을 방치한 것도 원인이다. 아이들에게 한글 교육이 필요하듯 사립유치원도 경쟁력 교육을 해야 한다.”
올해 출산율이 1.03명, 신생아 수는 역대 최저인 35만 명대로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다.
“저출산을 해결 못하면 10년 내 지역에 따라 사립은 물론 국공립유치원, 그리고 어린이집도 절반이 문을 닫을 수 있다. 그런 추세가 계속되다 2050년에 바닥을 칠 것이다.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대폭 줄여야 할 것이고, 장학사·원장·교사 상당수가 실직 도미노에 빠질 수 있다. 10년, 20년 단위를 넘어 2050년 기점의 로드맵을 서둘러야 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별 공·사립 유치원과 어린이집 위치, 수용 능력, 교원 현황, 연도별 출생아 수를 파악해 새 설계를 해야 한다.”
바람직한 공·사립 비율을 얼마로 보나.
“미국에서 만 5세 무상교육이 100%가 됐을 때 부자와 중산층이 다양성이 없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부유층들이 자기 자식들만의 ‘사립리그’를 만들자 타임지가 보도하기도 했다. 국공립 확대는 어느 시점에서는 다양성 문제가 제기된다.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사립 비율은 최소 30%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살아남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미래학자와 후성유전학자 등 전문가들은 인간의 뇌세포는 0~3세에 폭발적으로 연결되며 사랑을 느낀다고 말한다. 영유아 교육은 2~3세가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다. 만 3세 미만에 정서와 애착, 사람 사귀는 능력, 사람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다 입력된다. 3~5세 교육효과를 극대화하려면 0~2세가 중요하다. 가정 어린이집에 있는 0~2세까지 교육의 우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단 한 명도 놓쳐선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교과목보다 놀이·인성·도덕성과 긍정적 사고, 창의력·문제 해결 능력 중심의 교육이 중요하다. 그런 노력이 절실하다.”
만 3~5세 유치원생이 70만 명, 어린이집이 62만 명이다. 합치면 130만 명인데 왜 유보통합이 안 되나.
“만 3세 91%, 4세 94%, 5세 95%가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닌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나눠 관리한다. 그게 모순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시스템이 이로운지 원칙을 세우고 부처 이기주의를 버리면 통합이 가능하다. 핀란드와 스웨덴도 100년 동안 복지 행정으로 해 오던 유아교육과 보육을 교육부로 옮겼다. 아이들의 창의성과 인성을 살찌우는 건 국가 책임이다. OECD 국가들도 그런 방향으로 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쳐 한국 유아교육의 새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
가정의 역할도 중요하다.
“요즘도 젊은 엄마들 사이에 ‘양육독박’ 얘기가 나온다. 말도 안 된다. 아빠들이 저녁에 2차, 3차 가지 말고 아이를 같이 키워야 한다. 맞벌이와 외벌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자는 부모다.”
자녀 교육법이 궁금하다.
“(웃으며) 딸만 셋인데 키우느라 뼈만 남았다. 모두 출가해 직장에 다니는데 ‘엄마가 너무 바빠서 야속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엄마가 없었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 하더라. 여름에는 오후 8시 반, 겨울에는 오후 5시까지 귀가하는 원칙이 유효했던 것 같다. 해가 지면 아이들이 캄캄한 밤중에 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악착스럽게 지켰다.” 

이원영 명예교수는 …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양평에서 평생 연구하며 산다. 유아교육진흥법(1982년)과 유아교육법(2004년) 제정을 이끈 한국 유아교육의 대모답게 서재엔 관련 책과 논문이 빼곡하다. 1942년생으로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를 나와 한국·미국·영국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75년부터 2008년까지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유아교육학회장, 세계유아교육기구(OMEP) 한국위원회 회장, 환태평양 유아교육연구학회(PECERA) 세계회장,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00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육아 지혜』 『부모교육』 『아이는 성공하기 위하여 태어난다』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