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는 인간형 로봇 '페퍼'... 국산은 갈 길 멀어

중앙일보

입력 2017.09.28 18:00

업데이트 2017.09.28 19:28

사람 감정을 인식하는 세계 최초의 로봇 '페퍼'가 한국에 온다. 페퍼는 사람과 생김새가 비슷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다. 28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롯데백화점·이마트·우리은행·교보문고·길병원 등 6개 기업은 다음 달부터 주요 매장에서 1년간 페퍼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CJ도 다음 달부터 2개월간 CGV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페퍼를 시범 도입한다.

세계 최초 사람 감정 인식하는 휴머노이드
LG유플러스 등 7곳 다음 달부터 시범 운영
중요성 커진 서비스 로봇, 한국도 투자 늘려야

페퍼는 일본 소프크뱅크 산하 로봇 제조사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SBRH)’가 개발했다. 사실상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작품이다. 앞서 손 회장은 2012년 ‘알데바란 로보틱스’라는 프랑스의 휴머노이드 개발사를 인수, 그룹 내에 편입하고 SBRH를 설립하면서 로봇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2014년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페퍼를 공개한 것도 손 회장이었다.

일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페퍼는 세계 최초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이다. [사진 LG유플러스]

일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페퍼는 세계 최초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이다. [사진 LG유플러스]

공개 이후 페퍼는 지금껏 일본에서만 1만대가 넘게 팔렸고,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인 차세대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페퍼는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걷는 일본 혼다의 ‘아시모’ 등에 비해 기술적으로 뛰어난 로봇은 아니다. 그런데도 인기인 이유는 일반 산업용(제조용) 로봇과 다른 ‘서비스 로봇’으로서 ‘상용화’가 돼서다. 이족 보행처럼 소비자 접근성이 높지 않은 고급 성능보다는 서비스 측면에만 집중한 게 주효했다.

사람의 표정 등으로 감정을 읽어내서 맞춤형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원리는 클라우드 방식의 인공지능(AI). 기존 로봇들처럼 내부에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대신, 외부 인터넷 서버와 통신하면서 AI를 통해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유통·의료·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독 들일 만큼 범용성이 좋은 것도 페퍼의 감정 인식 기능 때문이다.

이번 국내 도입은 소프트뱅크가 한국에서 페퍼를 써보면서 성능 업그레이드 기회를 제공할 시범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성사됐다. 국내 기업들은 페퍼를 시범 운영하면서 앞으로 추가로 도입할 지 여부를 정하게 된다. 과거 로봇 시장은 제조용 로봇이 주도했지만, ICT 발달로 이젠 그 주인공이 페퍼처럼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에서 유용한 서비스 로봇이 될 전망이다. 국제로봇연맹은 2015년 90억 달러 규모였던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이 연평균 30% 이상 성장해 2025년 1000억 달러(약 11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페퍼는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이지만 이족보행 성능은 갖추지 않았다. [사진 소프트뱅크]

페퍼는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이지만 이족보행 성능은 갖추지 않았다. [사진 소프트뱅크]

로봇 강국이라는 한국의 기업들이 국산 대신 일본산(페퍼)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이 휴머노이드에 강한 탓도 있지만, 한국이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뒤처져서다. 2015년 기준 세계 로봇 시장에서 서비스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38%. 한국은 15%에 불과했다. 그해 한국은 중국에 이어 규모 면에서 세계 2위의 로봇 출하(3만8285대) 국가였다. 그런데도 국내 생산량보다 수입량이 1.7배로 더 많았다. 주로 일본산을 수입했다. 제조용 로봇만 보고 내달리다가 서비스 로봇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점을 간과한 결과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급변한 산업 환경에서 문제는 단순 기술이 아니다”라며 “그보다 ICT에 얼마나 소비자 중심적인 서비스 요소를 접목하느냐가 훨씬 중요해진 시대”라고 지적했다. 서비스 로봇이 하나의 사례라는 것이다.

단기 성과에만 급급한 것도 국내 로봇 생태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앞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개발사업단은 2010년 영어교사 로봇 ‘잉키’를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국 타임지가 ‘올해를 빛낸 발명품’으로 꼽을 정도였다. 잉키는 사용자 얼굴을 인식하는 로봇 ‘실벗’과 ‘메로’로까지 진화했다. 하지만 2013년 연구 프로젝트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정부가 손을 놓자 진화도 발걸음을 멈췄다. 담당 부처가 당시 과학기술부에서 지식경제부로 넘어가면서 사업단에 손에 잡히는 성과만을 요구하다가 흐지부지됐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최장 20여 년간 로봇 기술을 축적해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교감하고 있는 페퍼. [사진 소프트뱅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교감하고 있는 페퍼. [사진 소프트뱅크]

즉, 정부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는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 정책의 초점을 ‘로봇 산업 육성’이라는 추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서비스 로봇 강화’처럼 핵심을 찌르는 방향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는 페퍼에 안주하지 않고 올 들어 세계 1위 로봇 업체인 미국의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구글 모기업 알파벳으로부터 인수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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