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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안타까운 역사 장면 … 항모 민스크를 발로 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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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한반도는 긴박하다. 공포의 절대 핵무기, 첨단 전략폭격기들이 무대를 채운다. 한국의 무장력은 조연이다. 그 곤혹스러운 처지는 과거 사연을 떠올린다. 22년 전 한국은 항공모함의 임시 보유국이었다. 러시아제 ‘고철 항모’ 두 척을 소유했다.

22년 전 탱크보다 싸게 산 #최강 러시아 군함의 비운 #우리 안보의 상상력 결핍 탓 #항모로 부활시킬 꿈도 안 꿔 #중국이 구입한 옛 소련 항모는 #랴오닝으로 화려한 재탄생

항모 민스크(Минск)-. 고철 용도로 한국에 팔려왔다. 심하게 녹슬고 무장 기능은 파괴돼 있었다. 하지만 외관과 뼈대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새롭게 태어날 잠재력은 상당했다. 그 시절에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항모(바랴크)를 샀다. 그 배를 10여 년 뒤 재탄생시켰다.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遼寧)이다. 민스크는 랴오닝과 대비된다. 두 항모의 원적은 소련. 민스크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91년 12월 소련이 붕괴했다. 나라가 엉망이면 군사력 유지가 힘들다. 94년 러시아의 결정은 항모 포기와 퇴역. 해외 입찰에 부쳤다. 매물로 나온 태평양 함대의 항모는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Новороссийск)함이다. 두 항모는 위력적인 전략자산이었다. 세계 33개 업체가 달려들었다. 한국의 중견 무역회사(영유통)가 낙찰받았다. 조덕영 영유통 회장은 산업화 시대의 도전과 투지를 가졌다.

민스크 가격은 460만 달러(당시 환율 37억원)였다. 노보로시스크는 430만 달러(34억원). 깜짝 놀랄 헐값이다. 흑표 탱크 한 대 값도 안 됐다. 요즘 거론되는 핵추진 잠수함의 건조비용(추정)은 2조5000억원. 두 항모는 젊은 시절 퇴장했다. 활약 햇수는 15년(민스크), 11년이었다.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의 운용 기간은 50년이었다. 민스크는 키예프(Киев·항공순양함)급 항모다. 거대하고 매력적이다. 배수량 3만8000t(만재 4만5500t), 길이 273m. 비행갑판 195m. 크기는 미 항모보다 작다. 하지만 순양함의 강점을 넣었다. 공격의 근육질에서 앞섰다. 두 함정은 소련 시절 미 해군 7함대와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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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항모가 그 가격에 처분됐다. 고철 덩어리 무게로 계약돼서다. 그때 일본 방송 NHK가 한국을 견제했다. “주요 장비가 그대로 장착돼 있다.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 그 보도는 자극적이다. 러시아 해군은 지휘·방공·표적 탐지의 주요 장비를 부쉈다. 그런 상태로 95년 10월 두 항모는 태평양 함대의 항구(소베츠카야가반)를 떠났다. 예인선에 끌려 5일 후 포항 근해로 왔다. 예상 못한 시련이 기다렸다.

항모 입항 반대의 거센 시위가 있었다. 환경단체가 앞장섰다. 그들은 항모 해체 때 기름 유출, 방사능 오염 문제를 제기했다. 두 배는 핵 항모가 아니다. 디젤 추진이다. 하지만 괴담은 퍼졌다. 노보로시스크는 포스코에서 해체됐다. 그 과정에서 고철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튀어나왔다. 활주로용 특수강이 발견됐다. 역(逆)설계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의 주도적 작품이다. 학습 결과는 독도함의 건조 과정에 투입됐다.

민스크는 그런 운명도 거부당했다. 어느 항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진해의 해군 부두에 들어갔다.(사진) 그 시절 해군의 스케일은 연안작전에 머물렀다. 항모는 대양해군의 상징이다. 해군은 민스크를 거추장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다. “항모 해체가 불가능, 그렇다면 재구성·개조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항모 부활 조건이 역설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갈고 닦으면 가능했다. 한국의 조선과 IT 기술은 세계 최고다. 그런 역량이 민스크에 적용되지 못했다. 그것은 국가 의지의 부족 탓이다. 국방의 상상력은 빈약했다. 안보의 주인의식 결핍은 오래됐다. 환경단체와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그걸 뚫는 게 리더십의 결단이다.

그 무렵 국제 정세는 지금과 달랐다. 중국이 사자의 발톱을 드러내기 전이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다. 미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물의 진가는 덮여버렸다. 그걸 발로 찬 것이다. 러시아 주재 무관 출신 윤종구 제독(예비역)은 가슴 아파한다. 그는 “우리 국방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들”이라고 했다.

중국의 구입 항모는 미완성 상태였다. 공정률 70%. 구매(2000만 달러) 조건의 용도는 해상 카지노. 하지만 조건은 의미 없다. 국가지도부의 결심이 중요하다. 랴오닝은 중국 해군력의 위용이다. 무역인 조덕영의 쾌거는 비극으로 마감했다. 98년 외환위기 무렵 민스크는 중국에 팔렸다. 민스크는 ‘明思克(민스크) 항모 세계’의 간판을 달았다. 광둥성 선전의 해상 테마파크에서다. 지난해 민스크는 장쑤성 난퉁 해상공원으로 옮겨졌다.

송영무 국방장관의 야망은 핵추진 잠수함이다. 그는 영관 시절 청주함 함장이었다. 그의 기억 속 민스크는 어떤 존재일까. 민스크의 비운은 한국의 역량 부족을 드러낸다. 그것은 살아 있는 교훈이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