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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역의 중심지 갈릴리, 이토록 매력 넘치는 곳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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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는 이스라엘 최대 호수 이름이다. 동시에 시리아·레바논·요르단과 국경을 맞댄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가 성장하고 열두 제자와 함께 활동한 곳이어서 기독교인 사이에선 성지 순례지로 유명하다. 그런데 사실 갈릴리는 꼭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흥미로운 곳이다. 이번에 가보니 거대한 호수는 각종 수상 레포츠를 즐기고 자전거를 타기에 제격이었다. 아랍과 유대인이 공존하는 근사한 예술인마을을 유유히 산책하고, 염소 목장에서 신선한 치즈와 자연주의 식사를 체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64회째 맞은 수영대회, 요단강 카누 즐기고 #호수 주변 예술인마을, 염소치즈 목장 방문도 #

 갈릴리 북쪽에 있는 소도시 사페드.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갤러리가 많다.

갈릴리 북쪽에 있는 소도시 사페드.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갤러리가 많다.

갈릴리 호수에서 노는 법

갈릴리호수 남쪽, 키네렛에서 진행된 수영대회 '갈릴리 크로싱'에는 약 1만 명이 참가했다. 출발 지점 이후 약 100m를 걸어야 사람 머리 높이 정도로 수심이 깊어진다.

갈릴리호수 남쪽, 키네렛에서 진행된 수영대회 '갈릴리 크로싱'에는 약 1만 명이 참가했다. 출발 지점 이후 약 100m를 걸어야 사람 머리 높이 정도로 수심이 깊어진다.

9월16일 이른 아침부터 갈릴리 호수 남쪽 도시 키네렛 교통이 꽉 막혔다. 올해 64회째를 맞은 수영대회 ‘갈릴리 크로싱’이 있어서였다. 사실 한 달 전쯤인 8월에 이 대회 참가를 위해 온라인 등록을 할 때부터 기겁했다. 코스는 1.5㎞와 3.5㎞ 단 두 개뿐. 모든 영법을 할 줄 알지만 맨몸으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건 엄두가 안 났다. 그래도 유서 깊은 대회이니 안전은 책임지겠지, 하며 1.5㎞를 선택했다.
갈릴리 크로싱은 아마추어를 위한 행사다. 출발 신호도 따로 없이 오전 중 자유롭게 출발해 도착점에 닿기만 하면 된다. 출발지인 마아간 키부츠(유대인 집단농장으로 호텔·레저 시설을 운영하기도 한다)에 1만여 명이 모였다.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리에 튜브를 두른 꼬마부터 노인도 많아보였다. 인파를 따라 호수를 저벅저벅 걸었다. 이미 수천 명이 앞서 나갔다. 100m를 걸으니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이제 시작이다. 홀로 카운트다운을 하고 몸을 띄웠다.

수영대회 코스 곳곳에는 쉼터가 있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곳으로 이게 없었다면 완주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수영대회 코스 곳곳에는 쉼터가 있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곳으로 이게 없었다면 완주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200m마다 쉼터가 있었다. 수십 명이 대롱대롱 메달려 쉬고 있는 첫번째 쉼터까지는 괜찮았다. 잠깐 숨을 고른 뒤 다시 팔을 저었다. 평영과 자유형을 번갈아가며 두번째 쉼터에 도착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파도가 있는데다 물이 뿌얘서 더 지쳤다. 쉼터에 걸터앉아 5분을 쉬었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렇게 계속 쉬면서라도 끝까지 가야 할까? 일단 다음 쉼터까지 더 가보기로 했다. 다시 물에 뛰어들었다. 50m 즈음 갔을 무렵 갑자기 팔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구조보트가 접근했다. “괜찮은가? 보트에 타겠나?”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함께 간 일행 중 한 사람은 실제로 실려갔다. 나는 그 대신 코스를 벗어나 옆으로 조용히 빠졌다. 도저히 1㎞를 더 갈 자신이 없었다. 예수처럼 호수 위를 걷진 못했지만 호숫물은 충분히 많이 마셨다. 남은 취재 일정을 고려해 아쉽지만 포기했다.

코스를 완주한 사람들. 올해 64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는 약 1만 명이 참가했다.

코스를 완주한 사람들. 올해 64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는 약 1만 명이 참가했다.

자원봉사자 차를 타고 도착지점인 체마크 비치로 이동했다. 라이브 공연이 진행 중인 호숫가는 축제장을 방불케 했다. 다행히 중도 포기자에게도 간식과 메달은 줬다. 여러 사람에게 소감을 물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팔레스타인인 루피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수영강사인 그는 이번이 36번째 참가란다. 세 딸, 제자 10명과 함께한 그는 “우리 팔레스타인인은 수영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데 아이들과 제자들이 마음껏 수영을 즐기길 바라서 데리고 왔다”며 “수영은 행복 그 자체”라고 말했다.

올해로 36회째 대회에 참가했다는 수영강사 루피(사진 가운데)와 딸, 제자들.

올해로 36회째 대회에 참가했다는 수영강사 루피(사진 가운데)와 딸, 제자들.

동남아 온 듯한 요단강 휴양지

이스라엘 갈릴리 성서에서 바다로 묘사된 갈릴리 호수. 춘천 소양호와 비슷한 크기이지만 물이 귀한 중동에서 이처럼 큰 호수는 보기 어렵다. 갈릴리는 예수가 성장하고 제자들과 함께 사역한 신약성서의 주무대이지만 훌륭한 레저 여행지이기도 하다. 수영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이스라엘 갈릴리 성서에서 바다로 묘사된 갈릴리 호수. 춘천 소양호와 비슷한 크기이지만 물이 귀한 중동에서 이처럼 큰 호수는 보기 어렵다. 갈릴리는 예수가 성장하고 제자들과 함께 사역한 신약성서의 주무대이지만 훌륭한 레저 여행지이기도 하다. 수영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갈릴리 크로싱은 1954년부터 시작된 행사다. 이스라엘 건국 6년째부터 대회를 시작한 셈이다. 사실 당시만 해도 갈릴리는 온전히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었다. 호수 북동부 골란고원은 시리아 땅이었는데 67년 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호수 주변 영토를 전부 점령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가 아닌 ‘강제점령지’로 보고 있다. 실제로 시리아가 내다보이는 마롬 골란 전망대에 가보니 이스라엘군이 아닌 유엔군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판문점에 온듯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스라엘은 면적 166㎢, 수량 4조L에 달하는 거대 담수호를 활용해 농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관광용으로도 호수를 활용하고 있다. 갈릴리 크로싱 대회 하루 전인 9월15일에는 골란 고원에서 산악 자전거 대회를 열었다. 호수에는 사철 요트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기독교 성지순례자를 태운 목조선이 다니기도 한다. 호수 곳곳에는 어김없이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낀다. ‘갈릴리는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땅’이라는 메시지를 관광객과 국제사회에 넌지시 전하는 셈이다.
이스라엘은 어디를 가도 역사와 종교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가 흘러드는 요단강 북쪽 나루에는 어지러운 세상사를 잊고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인디언 카누를 탈 수 있는 롭 로이(Rob boy)라는 관광지다. 입구에 들자마자 여느 이스라엘 관광지와는 다른 분위기에 당혹스러웠다. 배낭여행자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쉬고 있었고, 닭과 병아리가 뛰노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남아시아 휴양지 분위기였다. 히피 차림의 직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환영해주며 커피를 권했다.

요단강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야자수와 유칼립투스가 우거져 있고 물이 맑아 현지인들이 휴양지로 즐겨 찾는다.

요단강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야자수와 유칼립투스가 우거져 있고 물이 맑아 현지인들이 휴양지로 즐겨 찾는다.

동행한 스페인 기자와 카누를 탔다. 폭 20m 정도인 요단강은 라오스 방비엥 블루라군처럼 에메랄드색으로 영롱했다. 강 양옆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졌고 그늘 덕분에 선선했다. 강변에는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타잔처럼 밧줄을 타고 강으로 뛰어드는 아이들도 많았다. 약 1시간 카누를 즐긴 뒤 주인장인 마얀을 만나 요단강에서 인디언 카누의 유래를 들었다. 그는 “롭 로이는 1848년 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 등을 여행한 탐험가 존 멕그리거의 보트 이름”이라며 “그는 스포츠 카약의 창시자”라고 설명했다.

 롭 로이에서는 카누를 빌려 타고 요단강을 누빌 수 있다.

롭 로이에서는 카누를 빌려 타고 요단강을 누빌 수 있다.

히피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롭 로이 직원. 다른 직원들의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히피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롭 로이 직원. 다른 직원들의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랍과 유대가 공존하는 예술마을

 사페드는 195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정착하면서 예술도시로 유명해졌다.

사페드는 195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정착하면서 예술도시로 유명해졌다.

갈릴리 호수에서 다양한 레저를 즐긴 다음 찾아간 곳은 사페드(Safed·히브리어는 Zefat). 현지 가이드인 오퍼 드로리가 “갈릴리에서도 분위기가 아주 독특한 곳”이라고 안내한 도시다. 갈릴리 최대도시 티베리아스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달려 도착한 사페드는 해발 900m 산자락에 들어앉은 도시다. 대홍수 뒤 노아의 후손이 터를 잡은 뒤 납달리족이 살던 땅이자 예수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고 비유한 바로 그 고을이다.

 사페드 구도심에서도 아랍인 주거지가 한적하다. 북아프리카 아랍 도시의 느낌이다.

사페드 구도심에서도 아랍인 주거지가 한적하다. 북아프리카 아랍 도시의 느낌이다.

사페드의 첫 인상은 썩 인상적이지 않았다. 누런 석회석으로 지은 집들은 이스라엘의 여느 지역과 비슷해 보였는데 구도심 골목으로 들어서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석회석 건물을 파란색·보라색으로 장식한 건물이 많았는데 대부분 소규모 갤러리였다. 구도심은 아랍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기념품점과 식당으로 북적한 유대인 구역보다 아랍 구역이 훨씬 차분하고 매력적이었다. 튀니지나 모로코 같은 북아프리카 아랍 국가의 어느 골목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오퍼 드로리는 “이스라엘 정부가 50~60년대 예술가들의 입주를 지원하면서 예술도시로 명성을 얻었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쇠락했지만 전망 좋은 부티크호텔에 머물면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한 미술가의 작업실 공방에서 바라본 정원.

한 미술가의 작업실 공방에서 바라본 정원.

사페드 만큼 매력적인 곳이 또 있었다. 이번엔 맛집이다. 티베리아스에서 서쪽으로 40㎞. 요드파 지역의 염소 치즈 목장 고트 위드 더 윈드(Goats with the wind)였다. 자페드보다 훨씬 험준한 산악지역을 한참이나 달렸는데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이렇게 험한 돌산에서 어떻게 염소를 키우나 싶었는데 바위 틈에서 마른 풀을 뜯는 염소가 한두 마리 보였다.

염소농장 '고트 윗더 윈드'에는 염소 약 200마리가 산다. '고트 윗 더 윈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본딴 이름이다.

염소농장 '고트 윗더 윈드'에는 염소 약 200마리가 산다. '고트 윗 더 윈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본딴 이름이다.

먼지 풀풀 날리고 가축 냄새 진동하는 헛간을 지나니 허름한 농가가 있었다. 목장주인 달리아가 반갑게 맞아줬다. 우리네 시골 평상처럼 아늑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동양식으로 방석을 깔고 앉는 방식이 흥미로웠고 나무가 우거져 시원했다. 리코타·레바네 등 온갖 치즈가 나왔다. 치즈도 맛있었지만 통밀빵과 토마토·가지볶음, 샐러드 등은 레시피를 배워가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맛이었다. 마늘과 고수, 매콤한 고추를 적절히 섞어서 아주 익숙한 맛이었다. 하우스와인과 치즈의 궁합도 훌륭했다.
멀리서 염소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테이블 옆에서 고양이가 조속조속 졸고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무엇보다 좋았다. 달리아는 “단순한 삶을 모토로 자연주의 식단을 내세우고 있다”며 “많은 손님을 감당할 수 없어 이렇게 외딴 곳에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식당에는 테이블이 8개 있다. 하루 방문객은 평균 15명이란다.

이스라엘 갈릴리 리코타 치즈와 올리브.

이스라엘 갈릴리 리코타 치즈와 올리브.

수년간 숙성한 치즈는 맛이 깊고 진하다.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의 치즈 공법을 적용해 만든 14종 치즈를 맛볼 수 있다.

수년간 숙성한 치즈는 맛이 깊고 진하다.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의 치즈 공법을 적용해 만든 14종 치즈를 맛볼 수 있다.

직원이 밝은 얼굴로 빵과 치즈를 내주고 있다. 갓 구운 빵과 크림처럼 새콤달콤한 레바네 치즈는 궁합이 훌륭하다.

직원이 밝은 얼굴로 빵과 치즈를 내주고 있다. 갓 구운 빵과 크림처럼 새콤달콤한 레바네 치즈는 궁합이 훌륭하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달리아.

1993년부터 지금까지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달리아.

 ◇여행정보=외교부 여행경보제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경보 2단계인 ‘여행자제’ 국가다. 프랑스 파리, 터키 이스탄불,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도 여행자제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철수권고’ 지역인 가자지구, ‘특별여행경보’ 지역인 서안(West bank) 방문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한항공이 인천~텔아비브 직항편을 주 3회(화·목·토) 운항한다. 텔아비브에서 티베리아스까지는 147㎞, 자동차로 약 2시간 걸린다. 갈릴리 크로싱 대회는 9월 혹은 10월에 열린다. 참가비는 1인 90세켈(약 2만8000원)이었다. 롭 로이 요단강 카누 1대 150세켈. 염소 치즈 목장 식사는 1인 90세켈, 예약해야만 갈 수 있다. 홈페이지(goatswiththewind.com) 참조.

갈릴리(이스라엘)=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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