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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박해일 "내가 그 때 그 곳의 인조였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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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박해일 인터뷰 #그는 과연 무력한 왕이었을까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박해일. / 사진=전소윤(STUDIO 706)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박해일. / 사진=전소윤(STUDIO 706)

상처뿐인 전쟁. ‘최종병기 활’(2011, 김한민 감독)에 이어 박해일(40)은 또 한번 17세기 병자호란 당시로 돌아간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 세종, 정조 같은 성군과는 거리가 먼, 그동안 부정적 평가가 많았던 왕이다. 박해일이 ‘남한산성’의 인조를 연기해야 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가 실패한 임금의 인간적 고뇌를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쉽지 않은 임무의 적임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덕혜옹주’(2016, 허진호 감독)에 이어 다시 사극에 출연했다.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는.
“‘최종병기 활’을 준비하며 병자호란이 배경인 책을 찾던 중 김훈 작가의 원작 소설을 읽었다. 당시 인물들이 실제 썼을 법한 대사와 절제된 문체가 참 매력적이었다. 인조 역할을 제안 받고 난 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원작과 큰 차이점을 못 느낄 정도로 각색이 잘 됐더라. 당시 인물이 느꼈을 정서가 절실히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조선 16대 임금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1637년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하며 인조가 청태종을 향해 엎드려 절했던 치욕적 사건) 등으로 꽤 비판받는 왕이다.
“완전히 새로운 역할은 아니다. 이미 이덕화 선배님이 TV 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2013, JTBC)에서 인조를 열연했으니까. 다만 역사적 평가가 분명한 인물인 만큼, 배우로서 어떻게 그를 차지게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단순히 나쁜 선택을 한 실패한 임금이 아닌, 당시 그가 겪은 심리적 갈등과 속내를 드러내려 고민했다.
그 ‘실체’를 느끼고 싶어서 무작정 파주에 있는 인조의 왕릉을 찾았다. 무덤 앞에 서니 씁쓸한 마음에 혼잣말로 그랬지. 아니, 어쩌다 이렇게 욕을 많이 먹으십니까, 하고(웃음). 결과적으론 큰 도움이 됐다.”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실제 장소를 방문하는 편인가.
“사실 ‘덕혜옹주’를 준비할 때도 남양주에 있는 덕혜옹주묘를 찾은 적이 있다. 실제로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어쨌든 이번에도 도움과 자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왕릉 뿐 아니라 김포에 있는 인조 아버지의 무덤에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웃음).”

━당연히 남한산성에도 다녀왔을 것 같다.
“맞다(웃음). 내 스타일이 원래 그런가 보다.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일단 가보는, 무식한 방법을 선호한달까(웃음). 촬영 전 개인적으로 남한산성을 방문해 성벽을 한 바퀴 돌았다. 네 시간쯤 걸린 것 같다. 성을 돌아보면서 인조와 백성들이 그 추운 곳에 고립돼 겪은 일을 상상해보니, 더 이상 그곳이 관광지가 아닌, 그 시대 그 공간에 존재했던 ‘실체’로 다가오더라. 당시 내게 각인된 그 느낌을 계속 되새기며 촬영했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기라성 같은 남성 배우들이 치열한 연기 공방을 벌이는 영화다. 배우로서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겠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걸 예상했기에, 그만큼 미리 준비했던 것 같다. 이처럼 여러 선배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 적은 없었기에 호기심도 컸지. 배우 각자의 색깔과 성분이 무척 달라 참 흥미로웠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들을 표출하는 걸 직접 보니, 동료 배우 입장에서 참 멋있더라.”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 인조와 조정이 청나라 군대에 항복하면서 그 유명한 삼전도의 굴욕이 재현된다. 남한산성 안에서 죄인처럼 갇혀있던 인조가 비로소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대목이라 무척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그렇다면, 만약 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내려야 할 선택은 얼마나 많을까. 나라를 대표해 백성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게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겠지. ‘임금은 하늘이 내려준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됐다.”

━만약 당시 인조의 입장이었다면, 박해일은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나도 똑같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두 충신의 입장 그리고 인조의 입장에 각각 이입해, ‘나라면 어떤 결단을 내릴지’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선뜻 답을 못 내리겠더라. 그게 쉬웠다면 한겨울 추운 산성에서 47일씩이나 틀어박힐 이유가 없었겠지.
막말로, 당시 인조의 심정은 ‘여야가 잘 합의해서 최종 결정을 알려 줘. 그럼 내가 나가서 머리를 조아리든, 총 들고 싸우든지 할게’가 아니었을까(웃음). 명분과 실리를 다 잡으려 했기에, 결국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버린 거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이 영화가 오늘날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
“사극은 참 신기한 장르다. 오랜 시간 TV와 영화를 막론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그 중엔 나라를 구한 영웅들의 위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남한산성’처럼 가슴 아픈 비극도 계속해서 나온다.
아마 그 이유는 과거의 잘못과 아픔을 마음에 새긴 채 ‘잊지 말자’는 의미가 아닐까. 비극을 기억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끔 말이다. 나 역시 배우 이전에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좋은 자양분을 얻은 것 같다.”

━‘덕혜옹주’ ‘남한산성’ 등 최근 메인 주인공을 보조하는 서브 주인공을 주로 맡았는데.
“캐릭터의 비중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출연작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하다. 그 작품 그리고 내가 연기할 캐릭터가 내게 얼마나 도전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달렸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임순례 감독)로 영화 데뷔한 지 어느덧 17년이다. 배우로서 변치 않는 원칙이 있다면.
“아니, 오히려 나는 원칙을 계속 깨고 싶은 사람이다. 원칙은 으레 사람을 어느 한 가지 틀에 고정시키기 마련이니까. 지나 온 경험들도 소중하지만, 그 노하우가 언젠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심을 계속하고 싶다.”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이병헌·박해일·고수·박희순. 사진=전소윤(STUDIO 706)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이병헌·박해일·고수·박희순. 사진=전소윤(STUDIO 706)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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