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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1) 30년 식당 일 했더니 '오다리'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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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작은 간판이 달린 아담한 병원이 있다. 간판이 너무 작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다. 이 병원의 진료는 오후 7시가 되면 모두 끝나지만, 닥터 유의 진료는 이때부터 새롭게 시작된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병원에 홀로 남아 첼로를 켜면서, 오늘 만났던 환자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린다. ‘내가 과연 그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한 것일까?’ ‘혹시 더 나은 치료법은 없었을까?’ 바둑을 복기하듯 환자에게 했던 진료를 하나하나 복기해 나간다. 셜록 홈스가 미제사건 해결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닥터 유의 심야병원은 첼로 연주와 함께 시작된다. <편집자>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오늘의 연주곡은 드보르작의 ‘고요한 숲(silent woods)’이다. 드보르작이 어릴 적 자랐던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의 숲에서 영감을 얻어 1884년 작곡한 곡이다.

순댓국집 운영하는 60대 퇴행성관절염 환자 #굽이 낮은 운동화 신으면 통증 완화에 도움

이 곡을 듣고 있자면 빽빽한 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 아래,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곡은 영국 출신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의 연주가 제격인데, 그의 담담하면서도 미끄러지는 듯한 연주는 듣는 모든 이에게 힐링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늘 기억나는 환자분은 아담한 몸에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60대 아주머니였다. 서울 성동구에서 30년째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분인데, 이 집은 순댓국을 전통방식으로 ‘토렴’해 내는 몇 안 되는 식당으로 전국구 맛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내가 매일 식당에서 온종일 일을 하니까, 앉았다가 일어날 때 무릎이 아파서 쭉 안 펴져. 그리고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이 시큰거려서 난간을 붙잡고 한발씩 내려가야 돼.”

무릎 퇴행성관절염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종일 서서일하고,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것을 수 십년간 했으니 무릎이 아플 만도 하다.

65세 정도가 되면 60~80%는 어느 정도 퇴행성관절염을 가지고 있다. [중앙포토]

65세 정도가 되면 60~80%는 어느 정도 퇴행성관절염을 가지고 있다. [중앙포토]

65세 여성 60~80% 퇴행성관절염 앓아 


“무릎에 퇴행성관절염 같아요.” “내가 벌써 퇴행성관절이 왔다고? 아직 젊은데 관절염이 웬말이야.?”

아주머니는 못내 못마땅 한 표정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폐경이 되면서부터 호르몬 변화로 인한 골다공증과 퇴행성질환 등이 급격히 진행해 65세 정도가 되면 60~80%는 어느 정도 퇴행성관절염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60대 여성에 있어서 무릎에 퇴행성관절염이 이르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니요 아주머니는 무릎관절염이 충분히 오고도 남을 나이거든요!” 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아주머니 뿐 만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퇴행성변화가 일어나요. 특히 무릎을 많이 사용한 사람들은 나이보다 좀더 빨리 퇴행이 진행되겠지요. 제가 퇴행성관절염인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법을 알려 드릴께요.”

무릎통증. [중앙포토]

무릎통증. [중앙포토]

아주머니를 거울 앞에 세웠다. “자아 거울 앞에서 똑바로 서서 무릎의 위치를 보세요. 정면에서 봤을 때 무릎이 젊었을 때 보다 휘어서 '오다리'가 되었다면 무릎의 안쪽에 퇴행성변화가 있는 것을 의심할 수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손으로 본인 무릎을 한번 만져보세요. 무릎관절을 만져 봤을 때 무릎관절의 크기가 젊었을 때 보다 커지고 주로 안쪽 무릎뼈가 튀어나와 있다면 역시 퇴행성관절염을 의심할 수 있어요.”

“아이고 네가 젊었을 때는 다리가 반듯하게 쭉쭉 뻗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오다리가 돼서 다리 사이가 벌어져있네. 내가 퇴행성관절염이 생긴 게 맞는가봐.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완치는 될 수 있지?”

“퇴행성관절염은 오랫동안 사용해서 연골이 닳아서 생기는 병이라 완치를 목표로 치료 한다기 보다는 앞으로 잘 관리를 하셔야 하는 병입니다. 무릎관절은 딱 한번만 쓸 수 있는 연필 같아서 한번 써서 짧아지면 다시 길어지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이제는 남아 있는 무릎연골을 가지고 어떻게 오랫동안 잘 관리하면서 쓰시느냐가 중요합니다.”

남아 있는 무릎연골을 가지고 오랫동안 잘 관리해 써야 한다. [중앙포토]

남아 있는 무릎연골을 가지고 오랫동안 잘 관리해 써야 한다. [중앙포토]

“그럼 뭘 하면 무릎이 좋아지는 거야? 그걸 알려달라구!”  아주머니는 뭘 하면 무릎이 좋아질 것을 찾고 있다. 아니 대부분의 환자는 무슨 운동을, 무슨 음식을 먹으면 좋아질까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퇴행성질환이 그렇듯이 뭔가 한다고 해서 좋아지기 보다는 뭔가를 안해야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가지고 있는 것에 뭔가 더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빼내야 좋아진다. 인간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퇴행성관절염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뭔가를 안 해야 낫는 병  

“일단 무릎을 쪼그리고 앉는 일을 무조건 피하셔야 되요. 쪼그리고 앉으면 무릎관절이 무리가 많이 가서 무릎관절의 수명이 줄게됩니다.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해도 안 되고, 식당일도 가능한 줄이시는 게 좋겠어요”

무릎을 쪼그리고 앉는 일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 [중앙포토]

무릎을 쪼그리고 앉는 일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 [중앙포토]

“안 돼 아직은 일을 쉴 수가 없어! 아직 딸내미도 시집을 보내야하고, 내가 쉬면 깍두기는 누가 담아. 30년 동안 해온 일인데 절대로 그만 둘 수는 없어." 아주머니가 단호하게 이야기하신다. 그 단호함에는 절박감도 묻어있다.

사실 그렇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주머니가 아니면 누가 그 집 순대국의 깊은 맛을 유지 할 것인가? 의학적으로는 옳은 것이 현실적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처방에는 환자의 형편에 대한 고려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증의 원인은 일을 많이 한 데서 오는 것이 자명한데, 일하는 것이 호구지책이다 보니 제 마음대로 일을 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생살이다. 이런 경우 최선의 선택이 여의치 않다면 차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환자의 형편이 고려되어 지면 처방을 내리기가 복잡해지고 고민스러워진다.

“아주머니는 원래 일을 줄이고 좀 쉬는 것이 좋은데, 현재 그럴 형편이 안되시네요. 그리고 식당일이 바빠서 자주 병원에 오실 수도 없으시네요. 그럼 이거하나만 지켜주세요.”

아주머니의 눈빛이 반짝였다. “집안에서 운동화를 신어보세요.”

닥터유의 한줄 처방 : ‘무릎이 아프면 집안에서 운동화를 신어라’

무릎이 아프면 집안에서 운동화를 신어라. [중앙포토]

무릎이 아프면 집안에서 운동화를 신어라. [중앙포토]

의외로 무릎통증의 근본원인이 발인 경우가 많다. 발은 땅바닥에서 오는 충격을 흡수하여 무릎으로 전해지지 않도록 완충작용을 한다. 발이 충격을 완화시키지 못하면 그 충격이 무릎으로 전해져서 무릎통증이 발생한다.

오늘 오신 아주머니의 발을 봐도 이미 평발이 진행되어 충격흡수 기능이 없는 발이다. 이런 발로 많이 걸으면 무릎은 금방 망가진다. 특히 집안에서는 맨발로 다니고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크다. 이때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발의 충격흡수기능을 배가 시킬 수 있다.

무릎 퇴행성 관절염 초기에는 집안에서 운동화를 신고 생활해보자. 한달 정도면 무릎통증이 개선되는 경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선요(禪要)의 구절 중에 한로축괴 사자교인(漢盧逐塊 獅子咬人)이라는 말이 있다. 개는 던져진 흙덩이를 쫓아 부지런히 뛰어가지만, 사자는 그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물어버리는 법이다. 어떤 병이든 근본을 치료해야 완치가 가능하다.

*토렴한 순댓국

순댓국. [중앙포토]

순댓국. [중앙포토]

토렴은 밥이나 국수 등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일을 말한다. 예전에는 토렴을 하는 집이 많았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뚝배기를 들고 여러번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손목, 엄지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가서 통증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토렴을 하면 한 그릇씩 끓여내는 것보다 덜 뜨거워서 국물의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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