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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미 스텔스기, 2000년대 김정일 별장 위 급강하 사실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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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전략정찰기 SR-71 블랙버드(왼쪽)는 1990년까지 북한 영공에서 정찰 활동을 벌였다. 속도가 빨라(마하 3.3, 시속 4043㎞) 북한의 격추 시도를 피할 수 있었다. [사진 NASA]

미국의 전략정찰기 SR-71 블랙버드(왼쪽)는 1990년까지 북한 영공에서 정찰 활동을 벌였다. 속도가 빨라(마하 3.3, 시속 4043㎞) 북한의 격추 시도를 피할 수 있었다. [사진 NASA]

지난 23일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와 F-15C 전투기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국제공역을 비행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21세기 들어 어떤 전투기·폭격기보다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가장 멀리 북쪽으로 비행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DMZ는 원래 육상의 군사분계선을 가리키나 이 대목에선 해상 군사 분계선인 NLL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 폭격기·전투기가 북한 동해 공해상까지 비행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F-117 전투기가 심야 북 영공 침투” #미·일 언론 보도했지만 미군선 부인 #80년대도 북 넘나든 SR-71 정찰기 #북, 수차례 격추 시도했지만 실패 #"B-1B, 21세기 가장 멀리 북쪽 비행” #미 국방부 주장 일부 맞고 일부 틀려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얘기다. 정찰기로 한정한다면 100% 틀렸다. 냉전 시대 미국은 북한 영공에 노골적으로 정찰기를 들여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전략정찰기로 분류하는 SR-71 블랙버드다. SR-71은 최고 속력이 마하 3.3으로 지금도 실전배치된 비행기 중 가장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기밀 해제된 미 중앙정보국(CIA) 문서에 따르면 SR-71은 1969년 북한을 동해에서 서해로 여러 번 횡단하는 비행경로로 정찰비행을 수행했다. 북한군은 SR-71 격추를 시도했지만 매번 허사였다. 1981년 8월 26일엔 요격에 실패했고 83년 3월엔 요격용 미사일이 민가로 떨어졌다는 첩보가 있다. 70~80년대 북한의 매체에서 SR-71의 정탐행위를 규탄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1969년 SR-71이 북한을 동해에서 서해로 여러 번 횡단한 비행 경로. 최근 기밀이 해제됐다. [자료=벨레페카 키비매키 트위터]

1969년 SR-71이 북한을 동해에서 서해로 여러 번 횡단한 비행 경로. 최근 기밀이 해제됐다. [자료=벨레페카 키비매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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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미국 전투기의 북한 침투의 경우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2004년 일본의 문예춘추와 2007년 미국의 에어포스타임스가 “F-117이 야간에 북한 영공으로 침투해 김정일의 특각(비밀별장) 상공에서 급강하하며 대응 태세를 알아봤다”고 보도했다. 걸프전에서 활약했던 1세대 스텔스기인 F-117은 2008년 퇴역했다. 미 공군은 이런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미국의 스텔스기가 한국에도 사전통보를 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적이 몇 번 있다”며 “그러면 좀 있다 북한에서 신경질적 보도가 나온다. 북한 영공을 침투해 방공망의 허점을 알아보거나 북한에 경고를 주는 은밀한 작전을 수행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건의 경우 미군 전투기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한 동해 공해상까지 비행한 게 처음이 아니라 비행한 사실을 발표한 게 처음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이번 비행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우리 군 관계자는“북한이 미국을 자극할까 봐 지켜만 본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B-1B도 북 미사일 요격권 벗어나 비행

F-117

F-117

북한이 이번 비행을 탐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15일(전날) 미제는 핵전략폭격기 B-1B 편대를 남조선 상동사격장 상공에 은밀히 끌어들여 핵폭탄 투하 연습을 감행했다”고 보도한 일도 있다. 한·미의 공식 발표가 나가기 전에 북한이 먼저 밝힌 것이다. 더욱이 이번엔 호위용 F-15C 외에도 급유기·전자전기·헬기 등 다양한 항공기들이 B-1B의 뒤에서 엄호했다. 김형철 전 공군사관학교장은 “이 정도면 실제 타격 임무를 수행하는 스트라이크 패키지(공격 편대군) 수준”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B-1B의 비행을 알아챘더라도 요격은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의 방공용 지대공미사일 가운데 가장 사거리가 긴 게 SA-5(S-200)인데 미국은 B-1B를 SA-5 최대 사거리(250~300㎞) 밖에서 날아다니도록 해서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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