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라이프 트렌드] "낡은 항만 주변까지 함께 개발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9면

국내 항만재개발 사업 전문가 좌담회

부산 북항, 인천항, 광양항 #민자 유치해 2022년까지 #5만4000명 일자리 생길 것

영국 런던의 템스강 동쪽에 자리 잡은 ‘도클랜즈(Docklands)’는 1970년대만 해도 쇠퇴한 항구도시였다. 영국 정부는 낙후한 항만 지역을 주거·업무·상업 기능이 균형을 이루는 신도시로 재개발했다. 지금은 초고층 마천루에 글로벌 기업이 둥지를 튼 세계적인 금융의 중심지가 됐다. 국내에서도 항만재개발 사업이 닻을 올렸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주도 아래 부산·인천 등지에서 도클랜즈를 뛰어넘을 항만재개발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중앙일보 라이프 트렌드는 국내 항만재개발 사업의 현안을 짚어보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3일 좌담회를 열었다. 정성기 해수부 항만지역발전과장, 정상철 인천시 도시재생과장, 김근섭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정책연구실장, 심정섭 거제빅아일랜드PFV 대표가 참석했다.

심정섭 거제빅아일랜드PFV 대표, 정성기 해수부 항만지역발전과장, 정상철 인천시 도시재생과장, 김근섭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정책연구실장(왼쪽부터)이 항만재개발 사업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심정섭 거제빅아일랜드PFV 대표, 정성기 해수부 항만지역발전과장, 정상철 인천시 도시재생과장, 김근섭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정책연구실장(왼쪽부터)이 항만재개발 사업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항만재개발 사업은 노후·유휴화된 항만 구역과 주변 지역에 항만시설 및 주거·상업·관광·휴양 등과 관련된 시설을 설치하거나 정비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균형발전과 원도심 상생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에 따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해수부는 부산 북항, 인천항, 광양항 등 3곳의 항만 재개발을 통해 2022년까지 기반시설비 총 3조7000억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치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5만4000여 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상부 건축비까지 포함하면 수십조에서 수백조원의 경제유발 효과를 거둬 국가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 13개 항만재개발 진행

항만재개발 사업이 가시화되면서 지역 주민은 물론 지방자치단체·기업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지역별 개발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수립한 ‘제2차 항만재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전국 13개 항만 19개 사업지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여수 엑스포가 열렸던 여수신항은 이미 사업이 완료된 상태다. 현재 착공에 들어간 곳은 부산 북항, 고현항, 동해 묵호항, 광양 묘도 투기장 4곳이다. 인천 영종도, 인천 내항 1·8부두에서도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올해 들어 광양항 3투기장, 목포 남항 투기장, 포항 구룡포항 세 곳에서 신규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해수부는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못한 재개발사업도 지역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정과제로 선정된 사업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관리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성기 해수부 항만지역발전과장은 “항만재개발 사업의 방향은 지역별 특성화 개발”이라며 “예를 들어 도시와 근접한 부산 북항은 문현·동삼·센텀시티 등 부산 지역 혁신도시와 연계해 신해양산업 중심지로 개발하고, 산업단지 용지가 부족한 여수·광양·대천 등지는 산업클러스터로 조성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항만 재개발은 항만의 기능만을 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그동안 항만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던 주변 배후 지역까지 촘촘히 챙기는 개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상철 인천시 도시재생과장은 “인천 내항 재개발은 지역의 핵심 숙원 사업”이라며 “항만을 끼고 원도심을 재생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 일대는 항만 물류시설과 주거·상업지가 인접해 주민들이 수십 년간 소음과 먼지에 시달려왔던 곳이다. 도심과의 생활권 단절도 문제였다. 정 과장은 이어 “신도시와 구도심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신도시에 적용한 스마트 도시,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전략을 원도심에도 적용해 지역 원주민이 재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최근 인천 내항 1·8부두 45만3000㎡에 대한 항만재개발 사업화 방안 수립 용역에 착수했다. 민간사업 시행자를 찾지 못해 표류하던 사업이 지난해 말 인천시·한국토지주택공사(LH)·인천항만공사가 공공개발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협약을 맺으면서 속도가 붙었다. 인천 내항 1·8부두는 개항 초기 역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가·관광 기능을 강화한 개항 창조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낙후 항만으로 인해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돼 온 주민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배후 지역까지 아우르는 항만 재개발을 위해 사업 초기부터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수라는 것이다. 정성기 과장은 “사업계획 수립부터 공사 완료 단계까지 시민단체·전문가·언론 등이 참여하는 지역추진협의회를 구성해 이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항만 배후 지역까지 함께 개발하려면 정부의 통합적인 개발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항만을 중심으로 주거 밀집지, 철도부지, 군사부지, 개별 사유지 등이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해수부·국방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합적으로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근섭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정책연구실장은 “항만지역을 재개발하면서 배후 도심과의 접점 부분을 그대로 두면 도심과의 접근성과 연계성이 떨어진다”며 “항만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 50% 범위까지 개발하되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중복된 사업들을 통합해 난개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항만재개발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해수부에 따르면 13개 항 19개 사업지 개발에 들어가는 총 사업비는 상부 시설을 제외하더라도 7조33억원으로 추정된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정부 재정만으로는 이를 뒷받침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천억부터

1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되므로 민간의 투자 유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정부는 부지 조성 단계부터 실수요자 참여를 통한 상부 시설의 원활한 개발 등을 위해 사업계획서 평가 시 가점을 부여하고, 사업준공 시점 토지가액이 과도하게 상승한 경우 잔여부지 우선 매수 시 예정 가격의 100분의 75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해 도입할 계획이다.

심정섭 거제빅아일랜드PFV 대표는 “고현항의 경우 부지 조성에만 7000억원, 건축물 조성에 3조원 이상이 투입된다”며 “실제 자본을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행정적인 절차를 간소화해 사업기간을 단축할수록 사업성과 회수 안전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민간자본이 들어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성공적인 항만재개발을 위해 행정절차 간소화, 관련 법률 재정비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심 대표는 “민자 1호 사업인 고현항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인허가까지 2년 정도가 걸려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진 사례로 꼽힌다”며 “항만법과 달라 실효성이 떨어지는 법률이 있는데 이러한 유관 법률을 같이 정비하면 민간투자가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항만재개발 사업은 인허가 절차가 평균 3년 정도 걸린다. 다른 개발사업과 비교하면 사업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한다. 해수부는 그동안의 문제점, 여건 변화, 민간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항만법을 개정한다는 구상이다.

지역 특성별 마스터플랜 필요

해외에서도 항만재개발 과정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영국 런던의 도클랜즈를 비롯해 호주의 시드니,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21’ 등은 항만은 물론 주변 지역과의 조화로운 개발을 이룬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사업 규모가 크다고 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 규모와 인구, 배후 경제권에 맞는 개발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해외 사례에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했다. 성공한 개발사업을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 도시가 갖고 있는 역사와 가치를 담은 다양한 콘셉트와 스토리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로 작용했다.

일본의 마에스터제도도 벤치마킹할 사례로 주목 받았다.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항만재개발과 관련된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지역을 순회하며 지자체·주민과 협의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근섭 실장은 “일본은 작은 항구가 많은데 그 지역 색깔에 맞는 먹거리, 놀 거리를 조금씩 정비해 항만 인근에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며 “우리나라도 지역의 색깔에 맞는 소규모 사업부터 진행하면서 대규모 사업이 조화를 이루는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성기 과장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같은 랜드마크를 만들어 국민과 전 세계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항만도시를 조성하겠다”며 “앞으로 글로벌 투자 유치를 비롯해 종합·효율적인 항만재개발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리=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