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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영 매체들, ‘죽음의 백조’ B-1B 비행에 대해 침묵…알고도 참았나? 전혀 몰랐나?

중앙일보

입력

B-1B가 지난 23일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미 태평양사령부]

B-1B가 지난 23일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미 태평양사령부]

북한의 노동신문은 25일자 1면 톱기사로 ‘세계 여러 나라 정당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실었다.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이 편지에서 “트럼프와 같은 불망나니 때문에 주권 국가들의 자주권, 인민들의 생존권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다”며 “세계 여러 나라 정당들이 반미 공동행동, 반미 공동전선에 떨쳐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3일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와 F-15C 전투기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국제공역을 비행한 사실에 대한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조선중앙통신·조선중앙TV 등 다른 관영 매체들도 침묵을 지켰다.

23일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군 관계자는 “당시 북한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B-1B의 비행을 전혀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가만있었을까.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보유한 장거리 방공용 지대공 미사일 SA-5(S-200). [사진 위키피디어]

북한이 보유한 장거리 방공용 지대공 미사일 SA-5(S-200). [사진 위키피디어]

당시 호위용 F-15C 외에도 급유기·전자전기·헬기 등 다양한 항공기들이 B-1B의 뒤에서 엄호했다. 전체 규모가 수십 대였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김형철 전 공군사관학교장은 “이 정도면 실제 타격 임무를 수행하는 스트라이크 패키지(공격 편대군) 수준”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미 해병대 정보국에 따르면 북한은 옛 소련이 제작한 빅백(최대 탐지거리 600㎞)과 백트랩(400㎞) 등 장거리 탐지 레이더를 보유하고 있다.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권명국 전 공군 방공포병사령관은 “북한의 방공망이 촘촘하지만, 레이더가 워낙 오래돼 탐지능력은 예전보다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B-1B는 한국을 여러차례 드나들었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충분히 탐지할 수 있다. 지난 3월 1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은 “15일(전날) 미제는 핵전략폭격기 B-1B 편대를 남조선 상동사격장 상공에 은밀히 끌어들여 핵폭탄 투하연습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한 미의 공식 발표가 나가기 전에 북한이 먼저 밝힌 것이다.

미 국방정보국(DIA)이 분석한 북한의 SA-5 배치 지역. 사리원과 원산으로 나타나 있다. [사진 DIA]

미 국방정보국(DIA)이 분석한 북한의 SA-5 배치 지역. 사리원과 원산으로 나타나 있다. [사진 DIA]

북한이 B-1B의 비행을 알아챘더하더라도 이에 대한 요격은 별개의 문제다. 북한의 방공용 지대공미사일 가운데 가장 사거리가 긴 게 SA-5(S-200)이다. 최대 사거리가 250~300㎞다. 미 국방정보국(DIA)는 북한이 SA-5 1개 포대를 원산과 사리원에 각각 배치한 것으로 파악했다. 미국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B-1B를 SA-5 최대 사거리 밖에서 날아다니도록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전투기를 긴급 출격하지도 않았다. 또다른 군 관계자는 “전투기의 식별(미확인 항공기의 국적과 기종을 파악하는 절차)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이 미국을 자극할까봐 지켜만 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보유한 장거리 탐지 레이더 빅백. [출처=http://simhq.com/forum/ubbthreads.php/topics/3540113/Re:_SAM_Simulator]

북한이 보유한 장거리 탐지 레이더 빅백. [출처=http://simhq.com/forum/ubbthreads.php/topics/3540113/Re:_SAM_Simulator]

또 미국의 B-1B는 국제법상 문제가 없는 북한 쪽 공해상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북한은 한국과 같은 방공식별구역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에 접근하는 항공기를 미리 식별하기 위해 그은 가상의 선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으로선 나름대로 B-1B의 비행을 묵인한 명분이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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