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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 잘된 스위스에는 국정교과서 싸움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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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광역지방정부는 세종시를 제외하고는 규모가 평균 300만을 넘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입법에 관한한 지방정부의 권한은 평균규모가 30만에 불과한 스위스에 비하여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즉, 한국의 지방정부는 헌법에 의하여 중앙정부가 법령으로 시키는 것만,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제한을 받고 있다"며 "지방정부가 지역발전을 위하여 정책을 실현하려고 해도 지역발전에 나설 수 없도록 헌법이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의 경우 지자체 단위인 칸톤은 연방헌법에서 연방권한으로 규정하지 않은 모든 권한을 가지며, 법률제정권과 집행권과 사법권을 행사한다. 칸톤의 입법권에 대해서 중앙정부인 연방정부는 간섭을 할 수 없으며 칸톤이 자율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 다만 칸톤의 법률이 연방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연방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지자체들이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지방세도 마찬가지다.

지방세에 대해서 연방정부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지방세에 관한 법률은 칸톤의회에서 직접 법률로 제정한다. 따라서 칸톤정부는 칸톤의 법인세를 직접 정할 수 있다. 예컨대, 칸톤 추크(Zug)에서는 지방법인세를 파격적으로 인하여 기업의 사업입지를 유리하게 조성하여 세계적인 기업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펴서 성공을 거두었다. 주민 12만명에 31,000개의 기업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10만 5천개를 만들었고, 일자리당 평균소득 17만 달러에 달하는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또 일부지역에서는 부자감세를 실시하여 부자들을 유치하는 전략을 세웠고, 일부지역에서는 반대로 부유세를 신설하여 사회적 형평성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독일에서도 지방세에 대해서는 주에서 법률로 결정하지만 주가 부과할 수 있는 세금의 종류와 세율 등이 연방헌법에 정해서 있어서 지방정부에서 지방세를 자유롭게 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이기우 교수는 “독일은 스위스에 비해서 재정책임성과 효율성이 덜어지고 세율이 스위스에 비하여 높은 편이고, 이는 국가경쟁력에서 스위스에 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지방분권은 국가적 갈등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최근 첨예한 사회갈등에 둘러싸인 우리 사회가 생각해볼 만 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015년 12월 중ㆍ고교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를 두고 나라가 두동강이 났다. 좌우와 여야로 나뉘어 달려들었고, 중앙 정치문제로 비화됐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없던 일이 됐지만, 그 이전부터 학계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다소 높았던 게 사실이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대한 반발 때문이다.

만약 교육을 각 지방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헌법이 지방분권에 힘을 실어준다면 어떨까.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연방정부는 교육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권한도 집행권한도 없다”며 “우리나라는 모든 교육제도가 서울 소재 대학으로 가려는 대입에 맞춰지다보니 다양한 인재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분권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한국의 도(都)에 해당하는 주(州)주마다 교과제도가 다른 경구가 허다하다. 독일을 예로 들면 수도인 베를린에서는 교육법에서 교과서제도 자체를 폐지했지만 지방에서는 검ㆍ인증 교과서제도를 채택한 곳도 있다. 주마다 다양한 교육실험이 가능해지고,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정책경쟁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교육청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교육감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국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하여 국회가 마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교육관계법을 연방에서는 결정할 수가 없고 칸톤(Canton·지방자치 단위)마다 달리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칸톤에서는 교육청을 지방정부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어떤 칸톤에서는 별도로 분리하여 교육관청을 설치할 수도 있고, 대부분 각 지방의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성운·안효성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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