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 칼럼] 아마존이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아마존이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지금처럼 모든 것을 팔 수가 없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the everything store’(모든 것을 다루는 점포)를 표방하지만 한국에서 의약품, 시력교정용 안경은 전자상거래 대상이 아니다.

판촉 활동도 제한된다. 미국에선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정보를 통합 수집, 활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별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예상해 주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개인에게 일일이 정보수집과 활용에 대한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야심작인 드론 배송도 안된다. ‘드론을 띄우려면 가시거리 안에서만 배송해야 한다’는 한국 항공법 때문이다.

어느새 미래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 제2 기계혁명, 혁신주도형 경제 등 나라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를 선점하려는 ‘미래 먹거리 전쟁’이 국가 간, 기업 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경제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측정한 기사를 내놨다. 스타트업 천국이라는 핀란드가 1위(10점 만점에 6.6점), 정보기술(IT) 대국 미국은 2위(6.5점), 로봇공학 고향이라는 일본도 6.2점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우리는 5.6점으로 OECD 평균(5.9점)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우선 파격적인 규제혁신이다. ‘신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의 여러 자원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정의다. 새로운 일을 자유롭게 벌일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 아래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새로운 산업에 대해 ‘정해놓은 것 빼고는 모두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고 사전규제보다는 사후처벌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후발주자라 생각했던 중국이 세계 민간드론 시장의 80%를 차지한 비결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일단 사업을 벌이고, 제도는 빠르게 보완하겠다는 속도 전략이 ‘중국=드론강국’을 만든 것이다.

규제혁신과 함께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미래산업의 핵심이 될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은 소프트웨어 기반이다. 다양한 정보수집이 성장의 원동력이다. 이를테면, 자율주행차가 한국의 도로를 달리려면, 도로교통법이 새로 정비돼야 하고 정밀지도와 지능형 통신망이 구축돼야 한다. 개별 기업이 나서 구축하기 어려운 유무형의 인프라, 법과 제도 등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줘야 한다.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과거보다 더 촘촘하게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있다. 옳은 방향이다. 벌어진 양극화를 좁혀 성장의 원동력을 만드는데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다만, 복지재원 조달을 위해서라도 기업의 경제적 가치 창출 채널은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규제혁신이 시급한 이유다. 곧 출범할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 기대해 본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