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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왜 30년간 실패했나, 이번엔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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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발(發) 개헌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임기 중 개헌을 주장했으나 실패했다. 지난 30년간 대통령 5년단임제, 직선제를 골자로 한 1987년 헌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됐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헌 실패의 원인이었던 대통령의 의지 부족,  국민 동의 부족, 대선주자의 견제 등이 상당부분 해소됐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거론할 수록 오히려 개헌은 어려워졌다. 차기 대선주자와 야권의 반발, 국민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인 2007년 1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고 비판하며 제동을 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4년연임 정ㆍ부통령제 개헌’을 공약했고 집권 3년차인 2010년부터 개헌문제의 공론화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유력대선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제1야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2011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에 관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중앙포토

2011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에 관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중앙포토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 실패 이유에 대해 “삼선개헌, 유신개헌 등 대통령이 먼저 추진한 개헌은 예외없이 해당 대통령의 권력 유지에 연관돼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야당ㆍ차기 대선주자가 반발해 추진이 쉽지 않다”고 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힘이 강한 임기 초반이 아닌 국정 장악력이 초반보다 약화되는 임기 중·후반에 개헌 논의를 꺼내는 바람에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많다. 실제로 임기 중·후반에는 차기 대선주자들이 부상하는 시기라, 대통령 중심의 개헌 논의를 반대하거나 견제하면서 진로를 막는 일이 되풀이 돼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후반인 지난해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추진 의지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임기 초에는 논의 자체를 봉쇄하려 했다가 임기 1년여를 남기고 개헌을 제안했다. 하지만 뒤늦게 꺼내든 개헌 카드는 연설 당일 저녁에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며 국면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넘어가 힘을 잃었다. 국면전환용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 추진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 추진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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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통령 탄핵 및 조기 대선정국에선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등이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 관심은 유력 주자들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1년인 내년 지방선거때 개헌을 추진하기로 약속한데다 차기 대선주자 그룹이 부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장애 요인이 과거보다 적다. 중앙일보의 국민여론조사와 국회의원 전수조사에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각각 68.6%%, 94.2%에 이를 정도로 “이번에는 꼭 개헌을 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ㆍ국회ㆍ정부 3주체가 함께 만드는 헌법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과제는 남아있다.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국회 중심의 논의가 아닌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김선택 교수는 “지금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나 신뢰가 높기 때문에 개헌이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한 목적이 아닌 이상 국민들이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들은 국민소환제, 법안발의권 등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원하는데 의회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개헌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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