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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그만두고 밑바닥부터 달려 새 틀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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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면

외식·IT·광고판 흔드는 20대 창업가

칠전팔기(七顚八起). 일곱 번 실패해도 여덟 번 일어나는 20대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실패를 값진 경험이라고 부른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요즘 과감히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창업에 나서고 있다. 국내외 손꼽는 유명 대학도 제쳐 두고 밑바닥부터 창업 경험을 쌓더니 이제는 외식·정보기술(IT)·광고 업계를 흔들고 있다. 중앙SUNDAY가 최근 주목받는 20대 창업가 3인을 만나 창업 성공 비결을 들어 봤다.

김대영 매니멀 대표 #가슴 뛰는 일 찾아 글리옹 자퇴 #알바·다단계 시행착오가 자양분 #김주윤 닷 대표 #시각장애인 눈 밝히는 시계 내놔 #공공 정보도 실시간 점자로 전달 #임형철 게임베리 대표 #서울대 휴학하고 창업에 도전 #모바일 앱 홍보 플랫폼 만들어

김대영 매니멀 대표
4일 근무, 자기계발 지원
직원을 춤추게 하라

지난 19일 서울 이태원동 피자집 모터시티에서 20대 청년들이 팝업 레스토랑 ‘파라티’를 준비 중이다. 김대영(왼쪽 둘째) 매니멀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했다. 신인섭 기자

지난 19일 서울 이태원동 피자집 모터시티에서 20대 청년들이 팝업 레스토랑 ‘파라티’를 준비 중이다. 김대영(왼쪽 둘째) 매니멀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했다. 신인섭 기자

지난 19일 저녁 6시 무렵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피자집 모터시티로 들어서자 경쾌한 힙합 음악이 식당 안에 울려퍼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셰프는 물론 음식 서빙을 하는 청년들은 대학생마냥 앳돼 보였다. 레스토랑 창업을 꿈꾸는 20대 청년 4명이 선보인 팝업 레스토랑 ‘파라티’였다. 이날 하루만 열리지만 청년들은 메뉴 구성, 가격 책정, 마케팅 등을 하면서 레스토랑 경영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명기(24)씨는 “고객이 한꺼번에 몰린다든가 예상하지 않은 일이 터져 당황했지만 다음번에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밀어 준 이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20대 외식 사업가로 주목받는 김대영(28) 매니멀 스모크하우스 대표다. 그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올해 선정한 ‘아시아가 주목하는 30세 이하 젊은 리더’에도 뽑혔다. 그가 2015년 4월 문 연 매니멀에서는 미국식 정통 바비큐를 맛 볼 수 있다. 10시간 넘게 참나무 장작을 태운 열기와 연기로 조리해 고기는 촉촉하고 나무향이 가득하다. 영업 초반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몰리면서 입소문이 났다. 6개월 뒤 서울 중구 광화문 D타워에 2호점을 냈고 지난해엔 모터시티를 선보이면서 피자집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난 1년간 매출은 34억원. 이번 프로젝트는 레스토랑 창업에 관심이 많은 매니멀 직원들이 김 대표에게 제안했다. 그는 얘기를 듣자마다 모터시티 매장까지 빌려주면서 적극 후원했다. 시행착오로 쌓은 경험이 창업의 가장 좋은 양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3대 호텔학교로 손꼽는 스위스 글리옹 호텔경영학교를 2년 다니다 그만뒀다. 공부를 할수록 호텔 경영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막연하게 가슴 뛰는 일을 해 보고 싶었던 그는 귀국을 선택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급격히 기울어져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커피숍, 치킨집,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돌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엔 네트워크 마케팅(다단계) 회사에서 40·50대 중장년들과 영업을 했다. 싹싹하고 성실했던 그는 1년 가까이 됐을 땐 한 달에 300만원가량을 벌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기보다 생활은 나아졌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동안 모은 1200만원을 들고 23살에 창업을 모색했다.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성장 가능성이 큰 외식 브랜드를 들여오려고 했지만 자금이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다 지쳐갈 때쯤 멘토를 만났다. 바로 외식업계 성공 신화로 손꼽는 멕시칸 레스토랑 바토스의 대표들이다. 김주원 공동대표 등 재미교포 1.5세인 창업가 3인은 2011년 창업했다. 이태원 뒷골목의 작은 타코 집으로 시작한 바토스는 전통 멕시칸 음식에 김치 등 한국 맛을 더한 독창적인 메뉴로 빠르게 성장했다. 신사동 가로수길로 지점을 넓히더니 갤러리아·롯데 백화점까지 파고들었다. 2012년 바토스에 합류한 김 대표에겐 제대로 레스토랑 경영을 배울 수 있는 현장이었다. 창업 초기 5명에 불과했던 레스토랑 직원이 4~5년 내 170명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조그만 가게가 점차 커져 가며 기업화되는 것을 본 게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문화가 창업 성공의 비결임을 깨달았다. 김 대표 역시 창업 후 가장 신경 쓴 게 직원 복지였다. 매니멀과 모터시티 레스토랑의 전체 직원은 50명이다. 이중 절반이 정규직이다. 직원 모두 주 4일, 46시간 근무가 원칙이다. 이뿐이 아니다. 직원들이 영어·요리·운동 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한다. 김 대표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주길 강요하기보다 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게 더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윤 닷 대표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변화를 만들고 싶다 

두 손 끝 촉감으로 읽는 점자 시계 ‘닷 워치’를 선보인 김주윤 닷 대표. [중앙포토]

두 손 끝 촉감으로 읽는 점자 시계 ‘닷 워치’를 선보인 김주윤 닷 대표. [중앙포토]

미국의 21살 청년 루크는 심각한 교통사고로 양쪽 시력을 잃었다. 그는 몇 달간 캄캄한 세상 속에 갇힌 듯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들을 걱정하던 엄마 캐리는 수소문하다 한국에서 개발한 점자 시계 ‘닷 워치’를 주문했다. 세련된 디자인의 시계는 무게가 27g에 불과했다. 시계 전면에 24개 점자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주고 스마트폰에 오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를 알려준다. 닷 워치의 효과는 컸다. 스마트폰 문자가 궁금했던 루크가 시계를 만지작 거리며 점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치약 짜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집 찾는 방법 등 재활교육에 참여했다. 캐리는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는 아들의 모습을 사진기로 찍어 e메일로 보냈다.
수십 통의 감사 편지를 받는 이는 닷 워치를 개발한 김주윤(27) 닷 대표다.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를 만들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받은 편지함엔 감사 인사부터 러시아·태국·인도 등 각국에서 자신의 나라 언어로도 닷 워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현재까지는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독일어만 점자로 전환된다. 현재 북미권을 중심으로 닷 워치 출하 예정 물량은 약 8400대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신청한 세계적인 팝스타 스티비 원더에게도 배송했다.

김 대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보면서 창업가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시애틀 워싱턴대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지만 제대로 수업 들은 건 한 학기 정도다. 곧바로 창업에 나섰다. 대학생들의 일자리를 도와주는 사업, 유학생을 도와주는 멘토링 사업 등 실현 가능성이 큰 사업을 구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우버처럼 트럭을 불러서 이사짐 등 화물을 운송해주는 트럭 공유경제 서비스 웨건을 선보였다. 여기에선 돈을 벌었지만 흥이 나지 않았다.

2014년 휴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머릿속에 떠나지 않은 장면이 있었다. 미국 유학시절 봉사활동을 하다 24권 분량의 두꺼운 점자책 성경을 보게 됐다. 요즘처럼 정보기술(IT)이 빠르게 발전한 사회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 전 세계 시각장애인은 약 2억8500만 명인데 이중 86%가 교통사고 등 후천적인 요인으로 시력 문제를 겪고 있었다. 더욱이 상당수는 정보를 얻는 수단 중 하나인 점자 정보단말기를 이용하지 못한다. 무게가 2~3kg인데다 가격대가 최고 500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김 대표는 미국에서 만난 유타대 학생 성기광(최고기술책임자)과 친구 주재성(최고디자인책임자)을 끌어들였다. 자금이 부족했던 동갑내기는 한 대학교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제품을 개발했다.

2년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핵심 기술인 액추에이터를 개발했다. 이는 점자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구동장치로 깨지기 쉬운 세라믹에서 전자석으로 바꿨다. 크기까지 확 줄이면서 스마트워치에 적용할 수 있었다. 기술개발로 가격은 점자 정보단말기 가격의 10분1 수준인 30만원으로 떨어졌다. 내년 6월께 출시 예정인 닷 미니는 전자책 단말기 형태로 점자 교육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가격도 300달러가 목표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세상을 흔들 의미있는 변화를 찾고 있다. 액추에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두 가지 미래 먹거리를 준비 중이다. 첫째, 지하철·관광지의 고정된 점자판 대신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닷 공공점자’다. 예를 들어 일본 철도회사 JR과 손잡고 지하철이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실시간 정보를 점자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안내판 설치를 준비 중이다. 둘째, 미래 유망기술로 손꼽는 햅틱(촉감 반응)에 주목한다. 가상현실(VR) 기술이 발전할수록 촉감을 느껴 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닷의 점자 구동장치가 워낙 정밀하게 움직여 다양한 촉감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형철 게임베리 대표
지갑 열 만한 곳에 미리 광고판을 깔아라

임형철 게임베리 대표가 최근 선보인 광고플랫폼 정글엑스에 국내외 광고주들의 관심이 크다. 염지현 기자

임형철 게임베리 대표가 최근 선보인 광고플랫폼 정글엑스에 국내외 광고주들의 관심이 크다. 염지현 기자

“남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살기보다 내가 만든 새로운 것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다.”

2011년 스무살에 게임베리를 창업한 임형철(26) 대표의 얘기다. 올 3월 그가 선보인 광고플랫폼 정글엑스는 투자 대비 광고수익률(ROAS)이 눈에 띄게 증가해 국내외 광고업계에서 주목한다. 미국 포브스도 임 대표를 올해 마케팅분야에서 아시아가 주목하는 30세 이하 젊은 리더로 뽑았다.

임 대표는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들어갔지만 곧바로 휴학했다. 그는 “바이오 분야로 창업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관련 지식이 창업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신 몸으로 부딪치는 경험을 쌓았다.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전자상거래가 인기를 끌었다. ‘오늘 하루만 반값’ 같은 다양한 이벤트로 소비자들이 몰렸다. 임 대표는 쿠팡에 입사해 3개월 동안 소셜커머스의 수익 구조를 파악했다. 그 뒤 게임베리를 설립해 모바일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놀라운 점은 모바일 게임에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 없이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게임 개발을 외주업체에 맡기다 보니 개발 속도는 더뎠다. 첫 창업은 실패했다.

임 대표는 여기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뽑아 냈다. 수많은 게임 개발업체가 신제품을 내놔도 마땅한 광고 대행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계적으로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을 홍보하는 곳이 수천 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광고 대행사를 찾았다고 해도 포털사이트, 모바일 앱, 배너 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민이었다. 임 대표는 복잡한 과정을 단축해 곧바로 개발자와 마케터를 이어 주는 서비스 정글을 2015년 출시했다. 특히 국내 광고주가 원하는 해외 광고 매체를 찾기 쉽고 마케팅 목표에 따른 제안도 받을 수 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수익구조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순히 개발사와 마케터를 연결해 주는 장이 마련됐다.

지난해 임 대표는 창업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번 더 그들만의 광고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나마 돈이 됐던 IT기업들의 마케팅 대행 업무도 제품 개발에 몰두하기 위해 줄였다. 이 와중에 내부 인력은 줄어들고 자금 압박은 커졌다. 두세 달 지나면 과연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렵게 세상에 나온 플랫폼이 정글엑스다. 이전 서비스인 정글에 축적해 온 광고 매체, 1억 명이 넘는 광고앱 사용자들의 정보 등을 활용했다. 특히 위치기반, 결제이력 등을 분석해 타깃 광고를 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구매력이 있는 사용자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광고한다. 예를 들어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에겐 그가 스마트폰에 깔아 놓은 게임·날씨·다이어리 등 다양한 앱의 배너 광고에 지속적으로 롤플레잉 관련 광고를 보내는 방식이다.

성과는 놀라웠다. 최근 게임베리는 7000만원을 투자해 4주간 A업체의 신규 광고를 진행했다. 같은 기간 실제로 사용자들이 몰리고 다양한 게임 아이템으로 쓴 돈이 9000만원으로 ROAS는 129%에 달했다. 세계적인 광고네트워크 업체는 A업체를 홍보하는 데 4주간 2억원을 썼지만 돌아온 수익은 1000만원에 불과했다. 정글엑스가 광고비 투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자 연초 10여 개에 불과했던 광고주가 100개 이상으로 늘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일본·동남아에서도 문의가 늘고 있다. 임 대표는 연말께는 평소 돈을 많이 쓰는 사용자만 별도로 뽑아 광고해 주는 VIP광고도 준비 중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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