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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코카인 배송에 잠수함 동원…중남미 마약 카르텔의 실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얼마 전 멕시코에서 범죄 드라마 ‘나르코스’(넷플릭스 제작) 촬영장소를 물색하던 스태프가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죠. 여전히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지난번 [알쓸신세]에서는 범죄 천국으로 악명 높은 멕시코의 상황을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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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는 마약 카르텔(독일어 kartell)이 있습니다. 카르텔은 원래 동일 업종 기업들의 담합을 뜻하는데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 이번 이야기에선 수십 년째 중남미를 뒤흔들고 있는 이 카르텔의 정체를 영화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⑮영화로 본 중남미 마약 카르텔

[아메리칸 메이드] CIA 요원이 마약 배달?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실존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가 마침 개봉중이네요. 1978년, 잘나가던 미국 파일럿 배리 씰(톰 크루즈)은 우연한 기회에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일을 하게 됩니다. 소련과 냉전 중이던 미국은 중남미 곳곳에서 활동중이던 공산 반군들을 제압하려 했는데, 이들을 찍은 항공 사진이 필요했죠. 천재적인 비행 실력을 가진 배리가 투입된 이유였습니다. 그는 두각을 나타내고, 중남미에도 소문이 쫙 퍼지게 되죠.

이때 콜롬비아의 마약상, 오초아 형제와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접근해옵니다. ‘나르코스’ 애청자라면 익숙한 그 ‘파블로’가 맞습니다. 이들은 "콜롬비아의 새로운 부의 원천"이라며 코카인 재배 농장에 배리를 데려가 이렇게 말하죠.

“네 비행기로 이걸 마이애미까지 운반해줄래? 돈 많이 줄게!”

활주로까지 있었을 정도니 이들이 얼마나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지 짐작이 가시죠. 단순한 마약 거래상이었던 파블로는 이후 여러 조직을 규합해 그 유명한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이 됩니다.

[킬 더 메신저] 미국이 키워준 마약 산업 

영화 '킬 더 메신저'

영화 '킬 더 메신저'

이때가 코카인 주생산국 콜롬비아에서 마약 카르텔이 몸집을 불리고 있었던 1980년대 초중반입니다. 이들 조직은 미국에 마약을 밀수출해 떼돈을 벌며 단순한 범죄 조직 이상으로 성장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중남미의 혼란한 정치 상황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남미에는 친미 정권과 그에 대항하는 공산 반군들이 싸우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친미 정권은 당연히 미국이 뒤를 봐주었고, 공산 반군은 소련에서 무기를 대줬죠.

이때 니카과라에서 공산 혁명군 ‘산디니스타’가 친미 독재 정권을 뒤엎고 혁명에 성공하는 대사건이 일어납니다. 세상에! 화들짝 놀란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친미 반군 ‘콘트라’를 지원하기 시작했죠. 무기를 대주는 것은 물론 반군을 미국 땅에 데려와 훈련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두둥~ 주머니 가벼운 반군이 마약을 밀매해 돈 버는 것도 묵인해줍니다. 이게 바로 마약 산업의 덩치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계기가 되죠.

이런 사실은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하던 기자 개리 웹이 ‘검은 동맹: 마약 폭증의 배경’이란 제목의 기사로 폭로하며 드러났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당시 CIA가 콘트라의 대규모 마약 밀매 사업을 묵인해준 사실을 밝힌 것으로, 80년대 미국이 마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된 배후에 CIA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충격적 사건이었죠. 개리 웹의 삶은 제레미 레너 주연의 영화 ‘킬 더 메신저’로 나왔을 정도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영화 '킬 더 메신저'

영화 '킬 더 메신저'

어쨌든 당시 메데인 카르텔을 비롯한 많은 마약 조직들은 제대로 물을 만났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업을 키워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죠. 어느 정도였느냐고요? 1988년 콜롬비아의 코카인 밀수출액은 25억 달러로, 당시 콜롬비아 총수출액의 51%에 달했습니다. 중남미 대부분 국가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콜롬비아 홀로 경제성장을 쑥쑥 이룬 것은 ‘마약 산업’ 덕이 컸죠. 드라마 '나르코스'에는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묘사돼있습니다.

자, 그러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납니다. 미국의 해상 경계가 바늘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해지자, 육로를 통한 밀수가 급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미국과 중남미를 잇는 육로는 단 한 곳, 바로 멕시코뿐이죠.

마침 90년대 미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마약과의 전쟁’으로 콜롬비아 카르텔이 주춤할 때라, 이때부터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국가를 잠식할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시날로아, 걸프, 로스 세타스 등 7대 카르텔은 멕시코 전역을 쥐락펴락 할 정도로 큰 세력이 됐죠. 이들은 미국과 멕시코 정부와 싸울 뿐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영역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어, 이곳 범죄율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습니다.

단순한 ‘조폭’의 일일 뿐, 일반 국민의 삶과는 관계없지 않느냐고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상상이 잘 안 된다는 분들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란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살인은 일상이다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미국 FBIㆍCIA 요원들이 멕시코 정부와 힘을 합쳐 마약 카르텔 소탕에 나서는 이야기인데요, 실제 사건을 콕 짚어 다룬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아주 꼼꼼히 그린 작품입니다. 배경이 되는 도시는 범죄율로 악명 높은 시우다드 후아레스.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 도시의 풍경은 암울하다 못해 살벌합니다. 목에 줄이 칭칭 감긴 시체가 도시 곳곳에 걸려있고, 살인은 일상입니다. 한낮 도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하죠. 카르텔 조직원들끼리 서로 복수하거나,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는 경찰 등을 살해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과 언론인에 대한 보복도 흔합니다. 카르텔과의 거래를 거절한 여시장이 취임 하루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는 식이죠. 최근에는 이런 폭력 사태가 칸쿤 등 휴양지로까지 번져 관광객도 사망했습니다.

현재 중남미 마약 카르텔들은 정부에서 손을 쓰지 못할 정도입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마약 밀매를 위한 잠수함이 지난해에만 수차례 적발됐을 정도로 이들의 ‘클라스’가 상상 이상이거든요. 그뿐 아닙니다. 이들은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로 군 헬기까지 공격합니다.

물론 정부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센테 폭스 전 대통령이 2000년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멕시코 정부는 지긋지긋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조직이 와해하고 잘게 나뉘는 과정에서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폭스뉴스는 “시날로아 카르텔의 수장,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이 구속되는 등 두목들이 잡히며 조직 내 권력다툼이 치열해져 폭력 사태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죠.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멕시코에서 카르텔이 성장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심각한 빈부 격차가 원인입니다. 일할 곳이 없는 가난한 청년들이 마약 카르텔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거죠.

코카인 주생산국인 콜롬비아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세계분쟁과 평화운동』(2004)의 저자는 “미국이 콜롬비아의 마약 퇴치에 엄청난 원조를 했지만, 부패한 정부는 묵인하고 마약 생산 고리 가운데서도 가장 취약한 농민만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비판하며, “그럼에도 농민들이 코카인을 재배하는 이유는 미국의 (자국 농업을 위한) 보조금으로,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농업이 붕괴한 탓”이라고 지적합니다.

볼리비아, 브라질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국가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먹고 살 길’ 없이 막막한 이들이, 마약 산업의 수렁에 발을 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마약 수요 자체를 줄이려는 범국가적인 노력과 빈부 격차의 완화, 청년들이 마약 조직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일 등이 동시에 진행돼야 하지만 모두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일까요. 미국과 중남미 각국 정부는 카르텔을 완전히 없애는 일을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랩니다. 다만 폭력 사태를 줄이는 일에 힘쓸 뿐이죠. 중남미 몇몇 국가에서는 아예 일부 마약의 합법화를 진행하고 있고요.

몇 년 전, 멕시코에서 '마약과의 전쟁'에 나섰던 한 고위인사는 이렇게 빗대기도 했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은 쥐잡기와 비슷하다. 쥐는 항상 하수구에 있지만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구도 내 집 앞에 쥐가 있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쥐잡기'와 같은 지난한 싸움,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하겠죠.

알쓸피디아-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

 '나르코스'의 주인공,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1949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전세계에 악명을 떨친 전설적인 ‘마약왕’입니다.

1980년대 메데인 카르텔을 창설한 그는 미국에 코카인을 밀매해 백만장자가 된 인물이죠. 얼마나 돈이 많았는지, 현금다발을 묶는 고무줄 구매에만 매달 수천 달러를 지출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그의 저택에는 비행장은 물론 사설 군대와 동물원, 식물원까지 있었죠.

마약 카르텔을 이끌며 그는 자신의 일을 반대하는 사람을 수없이 살해했습니다. 희생자만 수천 명에 달했죠. 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선심을 베풀어 인기가 높았는데요, 빈민층을 위해 학교와 병원 등을 짓기도 했죠. 그 덕에 국회의원이 됐지만 범죄 행위가 폭로돼 쫓겨나고 맙니다.

재미있는 것은, 쫓기는 신세가 된 그가 교도소에 수감되기로 정부와 합의를 본 후 그 교도소를 자신의 돈으로 직접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카지노와 헬기장, 축구장까지 들어선 최고급 리조트와도 같은 곳이었죠. 하지만 미국이 그의 인도를 집요하게 요청하자 탈옥했는데요, 이후 미국 정부의 추적에 쫓겨다니던 그는 결국 1993년 사살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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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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