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청와대와 각 세워야 … 자격 미달 인사, 계속 통과 힘들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치 존재감 커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안철수 대표는 “정부가 여전히 야당 같다. 매일 신문에 사진 하나씩 나는 것을 목표로 일하느냐”며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를 넘어 정책을 제시하고 주도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안철수 대표는 “정부가 여전히 야당 같다. 매일 신문에 사진 하나씩 나는 것을 목표로 일하느냐”며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를 넘어 정책을 제시하고 주도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국민의당이 오랜만에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에 잇따라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면서 청와대와 집권당이 자세를 낮추고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할 정도다. 국민의당의 위상이 달라진 배경엔 ‘선명야당’ 기치를 들고 돌아온 안철수 대표의 존재가 있다. 21일 김명수 후보자 인준 표결을 전후해 그를 인터뷰했다.

앞으로도 고위직 인사 줄줄이 대기 #자격 미달자는 이유 막론 통과 불가 #인사, 당론 없이 자유투표 고수할 것 #여당, 야당 모독 말고 협치 나서야 #김이수 반대하라는 지시 안 해 #의원들 물어오면 의견만 제시 #호남, 지지 철회 아닌 유보상태 #서울시장 출마? 인재 영입 우선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인준을 통과했다.
“우리 의원들이 여러 번 의총을 열고 토론해 집단지성을 모은 결과 사법부 독립에 적합한 인물로 판단한 것으로 본다. 우리 당의 결단으로 새 사법부 수장이 탄생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표결 직전 “김 후보자가 사법부 독립을 수호할 능력이 있는지 높은 기준으로 판단해 달라”고 했다. 반대를 암시한 것 아닌가.
“아니다. 사법부 독립이 워낙 중요하니 높은 기준으로 판단하라고 한 것뿐이다.”
김이수 후보자는 낙마하고 김명수 후보자는 통과됐다.
“김이수 후보자는 헌재소장이 돼도 임기가 1년뿐이다. 다른 재판관들이 다음 헌재소장이 되려고 권력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낙마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반면 김명수 후보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앞으로도 인사는 당론 없이 자유투표로 하나.
“앞으로도 헌재소장·감사원장 등 국회가 인준을 표결할 자리가 많이 남아 있다. 인사는 비밀투표니 당론을 정할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우리 당은 계속 자유투표가 원칙이다. 인사를 비밀투표로 한 이유는 의원 개개인의 결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부 여당은 이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앞으로도 인사 표결에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지명되면 이유 여하 막론하고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정부가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지명해 놓고 우리를 아무리 설득한다고 한들 어려울 것이다. 협치를 하겠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김이수 후보자 낙마 직후처럼 청와대가 야당을 비난하고 여당 대표가 막말하며 국회를 모욕하는 행태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
표결에 앞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안 대표를 만나려 했는데 안 만났다.
“양당 실무진이 협의 중인 상황에서 얘기가 흘러나왔다. 의아했다. 못 만난 거다. 미리 정해진 일정이 있었다.”
일정을 조정하면 되지 않는가.
“바꿀 수 있는 일정이 하나도 없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된다.”
문 대통령과의 통화는 어땠나.
“대통령이 미국에 출국하는 날 내게 전화를 했다. 김명수 후보자 인준 협조를 요청하더라. 그게 다다. 난 듣기만 하다가 ‘잘 다녀오시고 외교적 성과를 기대하겠다’는 한마디만 했다.”
대통령의 전화는 안 대표를 존중한다는 제스처로 보나.
“대통령이 전화했다는 사실은 나와 수행원, 단둘만 알고 있으려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돌연 보도됐다.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모르겠다.”
이번 통화를 계기로 문 대통령이 직접 정기적으로 야당과 소통할 것으로 보나.
“적어도 안보와 관련해선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과 꼭 만나 협의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내의 지지부터 확보해야 국제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것 아닌가. 원래는 지난주 청와대랑 야당 대표들이 만나기로 돼 있었는데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인준이 부결되자 갑자기 연기됐다. (청와대가) 왜 미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청와대가 부결사태를 연계시켜 회동을 거부한 것 아닌가.
“그렇다고 본다. 김이수 후보자 부결 직후 청와대가 국회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걸 보라. 그 자체가 옳지 않다. 그래 놓고 일주일 만에 사과했다. 이 정부 들어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것이다.”
국민의당 대선보고서에서 안 대표의 ‘반(反)정치’ 성향이 패인의 하나로 지적됐다. 요즘은 의원들과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보나.
“김동철 원내대표나 의원들과 아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대표가 된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서로 어긋난 게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김이수 후보자 인준 투표 전날 본인과 친한 의원들에게 전화해 ‘반대하라’는 얘기를 했다는 설이 돈다.
“명시적으로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내게 의견을 묻는 의원이 있으면 내가 생각하는 판단 기준을 얘기해 줬다. 헌재의 독립을 지킬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명시적으로 무조건 부결하라고 말한 건 아니다.”
의원들이 당신에게 의견을 많이 물어오나.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래서 소통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표결에) 내 영향력이 크게 미쳤다고는 보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의견을 표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대표가 된 뒤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있다.
“책임이 막중하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정치권으로 들어오면 다 망가진다. 구조의 문제다. 기득권 양당제가 주범이다. 그래서 내 정치의 목표는 다당제였고 지난 5년 동안 노력한 끝에 제3당 실현에 성공했다.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에 생기를 불어넣어 다당제를 잘 작동케 하는 게 목표다. 김이수 후보자 (낙마) 건도 그 일환이다.”
김 후보자 낙마로 호남에선 역풍도 불지 않았나.
“헌재소장은 워낙 중요한 자리라 능력만을 기준으로 표결했다. 지역주의가 기준이 됐다고 보지 않으며 돼서도 안 된다.”
하지만 국민의당 의원 상당수가 호남에 있지 않는가? ‘호남당’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나.
“우리 당은 전국 정당을 지향한다. 그러나 호남을 빼고 전국 정당이 되겠나. 호남이 당의 든든한 기반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전국 정당이 되는 게 목표다. 그 시기가 바로 내년 지방선거다. 지난해 총선에서 636만 명(득표율 26.74%), 올 대선에선 700만 명(21.41%)이 우리 당을 찍어 줬다. 두 선거 다 지역마다 15~30% 선으로 큰 편차 없이 고르게 득표했다. 호남과 영남 간에도, 청년과 장·노년층 사이에도 차이가 없다. 이렇게 제3당 후보가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 고르게 득표한 건 처음 보는 현상이다. 전문가들도 큰 혁신으로 평가하더라. 이것이 우리 당의 저력이다.”
문재인 정부가 호남 출신 고위 공직자 후보를 지명할 때마다 국민의당은 대부분 밀어주지 않았나.
“원칙 없이 지지하진 않았다. 이낙연 총리부터 호남이라서 통과시켜 준 게 아니라 새 정부의 첫 인사이고, 총리가 인준돼야 국정이 체계를 갖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 해 준 것이다. 다만 이런 메시지들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걸로 보였다.”
호남 가서는 호남 홀대론을 주장했다.
“홀대론이 아니다. 호남에서 문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해 놓고도 지키지 않은 것들을 지적한 것뿐이다. 영남 가서도, 충청 가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그걸 갖고 호남 홀대론이라고 주장한 거다. 그 자체가 상당히 고약하다. 야당의 역할이 뭔가. 정부를 비판하고 공약을 지키도록 하는 것 아니겠나. 이를 교묘하게 호남 홀대론으로 몰아간 건 지역감정 조장이다.”
호남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호남 주민들을 직접 만나 보니 실망도 했지만 여전히 기대가 있다고 하더라. 특히 대선에서 3번(안철수)을 찍으신 분들은 당시 판단이 옳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분들은 지지를 철회한 것이 아니라 ‘유보’한 상태다.”
호남에서 지지율을 반등시킬 대책은 있나.
“우선 정당 혁신이다. 이어 정기국회에서 이념 정당이 아니라 ‘문제해결 정당’임을 보여 줄 것이다. 중도 정당이란 말을 쓰면 사람들이 자꾸 좌우 이념의 중간에 있는 당쯤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중도 대신 문제해결 정당을 우리 당의 정체성으로 삼기로 했다.”
비상한 안보 위기지만 국민의당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 입장은 두 가지다. 튼튼한 한·미 공조로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국제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만약을 대비해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자유한국당과 다를 바 없는 내용 아닌가.
“상황이 워낙 북·미 간에 ‘강 대 강’이지 않나. 쓸 수 있는 카드에 한계가 있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에 대한 입장은.
“이제는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 거기까지다. 야당이 전술핵 재배치 같은 구체적 방안을 요구하는 건 적절치 않다.”
지방선거에서 바른정당과의 연대계획은.
“당에 체계가 없다. 중앙당과 17개 시·도당 간에 소통체계가 없다. 지역위원장이 공석인 지역구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해 당을 살리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
의원들이 여전히 안 대표와 따로 간다는 지적도 많다. 김경진 의원은 청와대와 너무 각을 세우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게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 옳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각을 세우는 것인지, 나라의 미래를 위해 각을 세우는 것인지는 살펴봐야 한다. 의원들마다 생각에 개인 차가 있다고 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표로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서울시장에 출마할 생각은.
“내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 ‘셀프 공천’이다. 그러면 서울시장을 노리는 인재들이 당에 올 리 없다. 지금은 인재 영입에 전력할 때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기득권 정당이라 인재가 들어갈 틈이 없다. 지지율이 낮아도 우리가 인재를 모실 가능성이 훨씬 크다.”
대선 패배 넉 달도 안 돼 대표직에 도전한 이유가 뭔가.
“(내가 안 나가면) 나라의 미래를 위한 다당제가 없어질 위기로 봤다. 지방선거 뒤 당이 없어져 다당제도 소멸할지 모르니 모든 것을 던져 막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안철수는 …

의사 출신 벤처기업인으로 성공신화를 써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킨 뒤 2012년 18대 대선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5년간 ‘새정치’를 추구한 끝에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자신이 창당한 국민의당을 의석 40석의 제3당에 안착시켰다. 이어 5·9 조기 대선에 출마해 3위를 기록했다. 대선 패배 뒤 당이 민주당과의 관계와 이념적 좌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자 8·27 전당대회에 ‘선명야당’과 극중주의를 내걸고 출마해 당선됐다.

강찬호 논설위원
정리=이유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