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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금 꼭 필요한 톰 소여의 잔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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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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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길바닥에 버린 쓰레기를 주우라고 누가 시킨다면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마지못해 겨우 하지 않을까. 그런데 ‘깨끗한’ 쓰레기도 아니고 담배꽁초 같은 ‘더러운’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참가비까지 내고 지난 주말 서울 신촌에서 열린 ‘쓰레기 줍기 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다.

굳이 스포츠라 부르는 건 주어진 시간 안에 몸을 움직여 모은 쓰레기의 종류(담배꽁초엔 가산점이 있다)와 무게에 따라 점수를 매겨 등수를 정하는 경쟁이라서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원조 일본에선 벌써 수만 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인기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번외 종목으로 채택되고 해외 여러 나라에 진출도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그저 이타적인 봉사가 아니라 재미있는 스포츠로 풀어낸 게 이 대회의 성공 비결이다. 즐기면서 하면 일은 놀이처럼 재미있고 성과까지 좋다는 ‘톰 소여 효과’의 완벽한 현실 적용 사례인 셈이다.

『톰 소여의 모험』 도입부에 등장하는 울타리 페인트 칠하기 에피소드에서 따온 톰 소여 효과는 보상이나 처벌 때문에 하는 일은 지루해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자발적으로 하면 똑같은 일도 몰입해서 할 수 있다는 걸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한다. 벤 등 톰 소여의 친구들이 페인트 칠하기를 즐길 수 있었던 건 페인트칠이 정말 재밌는 놀이여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해보고 싶다는 자발적 동기에서 시작한 일이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투덜거리기는커녕 오히려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어릴 땐 혼자 벌 받기 힘들어 짜낸 톰 소여의 잔머리에 친구들이 당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톰 소여는 친구들의 자발적 참여를 끄집어내 재미있게 즐기도록 해주면서도 무려 27m에 달하는 울타리 칠하기까지 깔끔하게 해낸,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정말 필요한 인재였다.

꼭 필요한 일이라도 누군가 당위성을 설파하며 강제로 시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재미와 자발성이 결여된 일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성과 보상으로도 굴러가던 산업화 시대의 단순 작업은 점점 사라지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고차원적 직업이 필요한 지금이야말로 톰 소여의 잔머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