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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버려진 강아지 꽃님이 만나서 생명의 소중함 알게 됐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학생들이 두 귀가 없는 유기견 ‘꽃님이’가 놀랄까봐 눈을 맞추며 조용히 맞이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학생들이 두 귀가 없는 유기견 ‘꽃님이’가 놀랄까봐 눈을 맞추며 조용히 맞이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애완동물과 반려동물 중 무엇이 맞는 말일까요?”

울산 동물매개교육 현장 가 보니 #유기견에 편지 쓰고 심장소리 듣기 #동물 교감 통해 책임감·인성 길러 #학교폭력·장애 학생 교육 활용도 #“아이들 정서 안정되고 이해심 커져”

성소영(29) 동물매개치료사(꿈빛소금·울산학성동물매개치료센터장)가 질문하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성 센터장이 “정답은 반려동물이야. ‘애완’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난감 같은 존재를 뜻하지만 ‘반려’는 나와 함께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친구 같은 존재를 말해”라고 설명했다. 그제야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40분 울산시 남구 야음동 도산초등학교 3학년 3반에서 이뤄진 동물매개교육 수업 현장 모습이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유기동물에 대해 알고 책임의식을 배우자’였다.

성 센터장이 유기동물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틀었다.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강아지가 버려지거나 로드킬(동물이 도로에서 죽는 일) 당하는 장면에서 “가여워”, “아아…” 라며 안타까워했다.

유기견에게 쓴 편지 "너에게 힘을 주고 싶어”

울산 도산초등학교 3학년 2반 김채연(왼쪽)·서다은양이 포메라니안 ‘하니’의 심장 박동수를 재보고 있다.이 교육으로 장난감이 아닌 심장이 뛰는 생물인 강아지를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최은경 기자]

울산 도산초등학교 3학년 2반 김채연(왼쪽)·서다은양이 포메라니안 ‘하니’의 심장 박동수를 재보고 있다.이 교육으로 장난감이 아닌 심장이 뛰는 생물인 강아지를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최은경 기자]

성 센터장이 “강아지 키우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자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는 “여러분이 학교·학원에 가면 정작 강아지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럼 강아지가 행복할까요? 행복하지 않은 강아지와 함께 하는 여러분은 행복할까”라고 물었다. 순간 교실이 또 한 번 조용해졌다. 이날 학생들은 강아지가 아무리 귀여워도 직접 키우려면 책임감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수업은 두 귀가 없는 유기견 ‘꽃님이’에게 엽서를 쓰는 순서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성 센터장이 이동용 개집을 가져오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강아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꽃님이가 조심스레 책상에 발을 디디자 학생들은 기쁨을 속으로 삼키고 조용히 강아지와 눈을 맞췄다. 지난주 수업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함부로 만지면 강아지가 놀란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꽃님이와 말은 안 통하지만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말에 학생들은 열심히 편지를 썼다. 발표할 사람을 묻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성 센터장이 “선생님이 아닌 꽃님이에게만 들려주는 얘기라고 생각하라”고 주문하자 대여섯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박진원(9)양은 꽃님이를 쓰다듬으며 “네가 올 때마다 우린 웃고 있을게. 너에게 힘을 주고 싶어. 다시 버려지는 일은 없을거야”라고 직접 쓴 편지를 읽었다. 박양은 수업이 끝난 뒤 “상처 받은 강아지를 위로하면서 친구들에게도 나쁜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도산초교는 창의적 체험활동, 인성교육의 하나로 지난 6월부터 3,4학년생에게 매주 1회씩 한 달 동안 동물매개교육을 하고 있다. 동물매개치료 사단법인 꿈빛소금이 재능기부로 수업을 담당한다.

앞선 9시 50분에 시작한 1교시에 이 학교 3학년 2반에서 강아지 심장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수업이 있었다. 강아지도 감정이 있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동물매개교육 차원이었다.

손보경(48) 동물매개치료사는 학생들에게 11개월 된 포메라니안 ‘하니’를 소개하며 인간과 동물의 심장 박동 수에 대해 설명했다. 학생들은 치료사의 지도에 따라 두 명씩 짝을 지어 청진기로 직접 하니의 심장 소리를 들어봤다. 매번 ‘20초에 36회’로 심장 박동 수가 일정하게 나오자 학생들은 “놀랍다”며 탄성을 질렀다. 김성준(9)군은 “사람과 강아지의 심장 박동 수와 소리가 달라 신기했고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동물매개교육 통해 표현력·자존감도 키워

유기견 ‘꽃님이’.

유기견 ‘꽃님이’.

“강아지나 고양이·병아리 같은 동물은 인형이 아니라 심장이 뛰는 생물이에요. 돌을 던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죽게 돼요. 나보다 약한 동물을 소중히 대하고 그 마음으로 친구·가족도 사랑합시다.”

손 치료사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이 “네~” 하고 우렁차게 화답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자 한 명 한 명 하니와 작별 인사를 했지만 아쉬움 때문인지 우르르 달려나가 복도 끝까지 하니를 배웅했다.

성 센터장은 “수업에 데려오는 강아지들은 모두 사연이 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강아지 생김새만 보고 귀엽다, 징그럽다, 불쌍하다 등의 감정을 얘기하다 강아지가 겪은 상처를 알게 되면 아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매개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직접 동물과 교감하며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의식을 배운다. 이런 활동으로 표현력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어 올바른 인성 형성에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물매개교육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 장애 학생, 저소득층 학생 등을 위한 특수 교육에도 활용된다.

도산초교 3학년 2반 담임 김화덕(42) 교사는 “아이들이 동물매개교육을 받고 나서 정서가 안정되고 이해심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이번 4주 간의 수업이 끝나면 학생·학부모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동물 관련 단체와 협약해 외부인사 초청 강연, 봉사활동 등으로 동물 관련 교육을 계속할 방침이다.

2015년부터 동물매개교육을 진행해온 울산 월봉초교(남구 신정동) 역시 “1·2학년 때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배워 고학년이 됐을 때 학교 폭력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울산에서 6개 초등학교가 동물매개교육을 하고 있다.

가정에서 ‘동물 교육’ 한다면 이렇게

- 동물 키우기 전에 누가 원해서인지 분명히 할 것
- 목욕 , 배변치우기 등 가족간 역할 분담 확실하게
-동물을 장난감이 아닌 가족으로 대해야
-사나운 개를 만나면 움직이지 말고 기다릴 것
- 버려진 동물을 발견하면 어른이나 경찰에 알릴것
[자료:동물매개치료센터 꿈빛]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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