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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가을볕...임금님처럼, 조상님들처럼 즐겨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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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가을볕은 고맙다. 여름볕처럼 이악스럽지도, 겨울볕처럼 인색하지도 않다. 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는 가을볕을 전통의 운치, 현대의 감각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전시다. 우리네 선조들이 해를 가릴 때 썼던 건축적 시설을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집공방이 각종 사료에 바탕해 만든 작품, 해가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국내 건축가들 작품을 아름지기 사옥 실내외 곳곳에 설치해 선보인다.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전통 재현한 어막차, 차일, 그늘막 등 #현대 건축가들 신작과 더불어 선보여 #서울 통의동에서 11월 10일까지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에 선보인 어막차.사진=이후남 기자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에 선보인 어막차.사진=이후남 기자

 특히 1층 실내에 자리한 어막차는 첫눈에 봐도 단연 근사하다. 높은 분들이 타고 다니던 가마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본래 ‘막차’는 조선시대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궁중 의식 등에서 잠시 몸을 쉬던 가설형 시설이다. ‘어’가 붙었으니 그 중에도 임금님용인 셈이다. 문헌에는 어막차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정조 때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수원 현륭원에 행차할 때 모습, 그 중에도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해 베푼 진찬 모습을 담은 몇 몇 그림에 등장한다. 동국대박물관이 소장한 ‘봉수당진찬도’에는 3면의 병풍 등 실내 장식까지 묘사가 세밀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화성원행의궤도'의 봉수당진찬도에는 콕 짚어 '어막차'라고 한글까지 적혀있다.

화성원행의궤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원행의궤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원행의궤도' 가운데 어막차가 그려진 부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원행의궤도' 가운데 어막차가 그려진 부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를 연구해 온지음이 만든 어막차는 겉은 검박하되 안에는 앉는 자리 등 뒤에 책가도가 그려진 것을 비롯, 화려한 품격이 흐른다. 사방에 둘러치는 막도 안팎의 천과 색을 달리하고 안감은 무늬 섬세한 비단을 쓰는 등 외빈내화의 뜻을 담았다. 막을 내리면 밖이 가려지고 올리면 작은 정자처럼 시야가 트인다. 고급스런 휴식용 텐트나 캐노피인 셈이다. 조립과 운반이 쉽게 막차를 현대적으로 만든 실용형 텐트까지 곁에 선보여 의미를 한층 알기 쉽다. 어막차에는 관람객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 잠시 임금님 기분을 내볼 수 있다.
 야외에 설치된 작품에선 현대 건축 안에 한옥을 품은 아름지기 사옥의 매력이 한층 살아난다. 한옥 처마에 해를 가리는 차일을 흰색 천으로 만들어 달았다. 건축가 이승택·임미정이 이끄는 설계사무소 stpmj의 솜씨다. 방수처리한 노방을 섞어 가벼운 비도 막는다. 해의 높이에 따라 그늘의 깊이는 물론 차일의 질감 덕에 그늘의 밀도가 달라지는 효과를 더했다. 이처럼 기존 건축에 부착형 차일을 활용한 예는 대한제국 시대 궁중 잔치 그림에도 나온다.

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의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의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앞쪽에 온지음이 만든 '그늘길,차일'이 보인다. 사진=아름지기(이종근)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앞쪽에 온지음이 만든 '그늘길,차일'이 보인다. 사진=아름지기(이종근)

 한옥에서 마주 올려다 보이는 3층 야외공간에는 온지음이 만든 독립형 차일이 자리했다. 이 역시 해와 비를 고루 피할 수 있다. 전통적 방식의 차일이 때로는 기름 먹인 종이나 천으로 가벼운 방수기능을 갖추기도 했던 것을 참고해 만들었다. 이를 지탱하는 기둥은 검게 물들인 대나무 다발을 쓰는 등 전통을 살리려는 노력이 곳곳에 역력하다. 한옥 앞 한켠에는 1인용 해가리개도 있다. 조선시대 풍속화를 참고해 온지음이 만든 것으로 지지대와 받침목, 멍석과 무명천을 결합해 휴대용 그늘막의 기능을 갖췄다.

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사진=아름지기(이종근)

서울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사진=아름지기(이종근)

조선시대 풍속화(논에서 김 매는 농부들, 행려풍속도병,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한 부분.

조선시대 풍속화(논에서 김 매는 농부들, 행려풍속도병,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한 부분.

 전시장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강예린·이재원·이치훈으로 이뤄진 건축가 그룹 SoA의 작품, 서울대 건축과 교수 최춘웅의 작품도 자연스레 만난다. 각각 현대적 특징이 뚜렷한 재료와 구조임에도 햇볕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대신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 안팎의 소통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점이 두드러진다.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오른편에 건축가 그룹 SoA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아름지기(이종근)

2017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오른편에 건축가 그룹 SoA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아름지기(이종근)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에 선보인 건축가 그룹 SoA의 작품 '가지붕'. 사진=아름지기(이종근)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에 선보인 건축가 그룹 SoA의 작품 '가지붕'. 사진=아름지기(이종근)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오른편에 건축가 최춘웅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이후남 기자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 .오른편에 건축가 최춘웅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이후남 기자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름지기는 매년 의·식·주를 번갈아 주제로 삼아 전통문화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기획전시를 열어왔다. 이번 전시는 '주’에 해당하는데 야외와 실내를 엄밀히 구분짓는 대신 그 경계를 즐기곤 했던 전통 건축의 묘미를 해가림이라는 새로운 초점으로 포착한 점이 돋보인다. 전시장과 작품 자체가 휴식 기능을 갖춘 특징을 살려 모든 관람객에게 커피나 차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한다. 한복을 입었거나 볕 뜨거운 정오~오후 2시 사이에 입장하면 관람료도 무료다. 11월 10일까지. 관람료 5000원. 월요일 휴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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