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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소년원에 갇힌 소녀들 … “새 삶의 기회 놓치고 싶지 않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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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의 Fact&Fiction

지난 12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96번길. 안양예술공원 인근 삼성산 자락 숲에 청기와를 얹은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났다. 정문 돌기둥에는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라고 새겨져 있었다. 학교 주위를 둘러싼 2m 남짓 연두색 철책이 눈에 띄었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안양소년원’.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계기로 ‘소년범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응징보다는 교화(敎化)가 먼저’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년원의 실체와 그 속에서 생활하는 10대들이 해답의 실마리를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나선 길이다.

여자 120명 수용 안양소년원 #14~19세 외부와 격리된 생활 #잔혹범죄로 처벌 강화론 커져 #낙인찍기 앞서 교화에 힘써야

안양소년원에는 폭력·절도 등 비행과 범죄를 저지른 여자 청소년들이 ‘보호처분’을 받고 수용돼 있다. 중학생 또래의 만 14세 이상부터 만 19세 미만의 ‘10호 처분’ 소녀 120여 명이 외부 세계와 격리된 채 지낸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1~10호까지 비행 정도에 따라 사회봉사명령·보호관찰·소년원 등 10단계로 나뉜다. 안양소년원은 최장 2년간 수용되는 10호 처분을 받은 소녀들이 오는 시설이다.

70여 년 전 문을 연 안양소년원은 2000년 ‘정심(貞心)’이란 학교명을 붙이고 비행 여성 청소년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교육관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게시판에는 중졸·고졸 검정고시와 제과·미용 등 기능사 합격자 명단이 빼곡했다. 교실에서는 10여 명의 앳된 소녀가 중학교 과정을 밟고 있었고, 나머지 원생들은 제과제빵·헤어디자인·피부미용·서비스마케팅 등 4개 직군별로 직업훈련에 열심이었다. 팔뚝에 천연색 문신(타투)을 한 소녀들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전반적인 풍경은 여느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녀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A양(17)의 고향은 대구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들어왔다. ‘준감금과 폭행’ 혐의라는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1m55㎝ 정도의 키에 유난히 하얀 얼굴, 수줍은 표정은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부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혼했고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쉬고 있다. B양(16)은 경기도 화성에서 고교 1년을 다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왔다. 뿔테 안경을 낀 까무잡잡한 소녀는 성매매를 알선하다 현장에서 체포됐다. 구속돼 수원구치소에서 5개월을 지내다 법원의 선처 덕에 소년원으로 왔다.

경기도 안양소년원 소녀들이 12일 오후 교육관 실습용으로 설치된 카페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소년원 내부에는 카페를 비롯한 제과제빵?헤어디자인 등의 실습실도 갖췄다. [사진 안양소년원]

경기도 안양소년원 소녀들이 12일 오후 교육관 실습용으로 설치된 카페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소년원 내부에는 카페를 비롯한 제과제빵?헤어디자인 등의 실습실도 갖췄다. [사진 안양소년원]

어떻게 오게 됐나.
“‘엄마 없는 애’라고 놀려댄 같은 학교 학생을 친구 자취방에 나흘간 가둬 놓고 때렸어요.”(A양)

“고교 1학년 때 좋아했던 오빠가 저보다 어린 친구들을 성매매 알선하자고 해 어울리게 됐어요.”(B양)

가정형편이 어려웠나.
“금수저 출신의 부유한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이젠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A양)

“지하철역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했어요. 하루에 100만원을 넘게 벌 때도 있었어요. 노래방 가고 술 마시는 데 다 써 버렸지요.”(B양)

감옥에 가서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평생을 보낼 수 있었는데.
“형사재판 때 징역 3년형을 받고는 다 포기하려 했어요. 다행히 보호처분에 넘겨져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잘해야겠다고 다짐해요.”(A양)
소년원을 나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교도소 대신 소년원에 보내 줘 새 삶을 찾도록 해 준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요.”(B양)

두 소녀의 만기는 24개월이 되는 내년 11월이다. 모범적으로 생활하면 15개월 만에 나갈 수도 있다. “퇴소하면 뭘 제일 먼저 해 보고 싶나”란 질문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한 번도 못했는데 그걸 해 보고 싶다”(A양), “단 한 장도 없는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B양)고 했다.

잇따른 10대 집단폭행과 살인사건을 통해 그 잔혹성이 알려지면서 비행·범죄 청소년에 대한 관리와 처벌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청와대에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대표적이다. 소년법 적용 대상은 ‘촉법(觸法)소년’(만 10세 이상∼14세 미만)과 ‘범죄소년’(만 14세 이상∼19세 미만)으로 나눈다. 촉법소년은 형사미성년자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만 받는다. 범죄소년들도 교도소 대신 소년원 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년법상 소년의 연령을 조정하고 무겁게 죗값을 묻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소년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선 촉법소년의 하한 연령을 만 12세 미만으로 두 살 낮추고, 범죄소년의 상한 연령인 만 19세를 만 18세로 떨어뜨리며, 살인 등 강력범죄에서 형벌을 높이는 내용의 소년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됐다. 사람을 죽였을 경우 13세라면 감옥은커녕 2년간 소년원에 다녀오면 그만이고, 17세라면 최대 20년형을 살고 37세에 사회로 돌아오는 현행 법을 고쳐 엄벌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게 능사이며, 단 한 번의 충동적인 실수라도 살인을 저지른 13세 중학교 1년생을 무기징역에 처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게 옳은가. 더 많은 청소년을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가두고, 그것도 소년원보다는 교도소로 더 많이 보내는 것이 범죄 예방과 억지에 효과적인가.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의 일탈에 책임이 없는가.

현재 전국 소년원은 10개에 불과하고 모두 1100여 명이 수용돼 있다. 이 중 180여 명의 여자가 경기도 안양과 충북 청주 두 소년원에 있다. 소년교도소는 경북 김천에 한 곳뿐이다. 소년원과 소년교도소는 이미 포화상태다. 일본에는 소년원만 50곳이나 된다. 우리 동네에 소년원을 짓겠다고 하면 당장 님비(NIMBY) 풍조로 갈등만 빚을 것이 뻔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안양소년원 아이들도 소년법을 적용받았다. 운 좋게 소년교도소를 가지 않았을 뿐 감옥의 담장을 걷는 ‘위험한 소녀들’이다. 일부는 또래로부터 범죄 수법을 배우고, 퇴원 후 범죄의 세계로 또 돌아가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A양과 B양이 평범한 소녀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김정식 안양소년원장은 “청소년은 변화할 가능성이 무한한 존재”라며 “아이들이 소년원에 와서 교화돼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이 소년원의 가장 큰 기대효과”라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자극적인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다양한 범죄 유형을 접하고 있다. ‘내 자식은 아닐 것’이라고 하지만 ‘내 자식이 범죄나 비행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 중 한 명이 언제라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어른들은 인식해야 한다. 우발적인 비행이나 범죄를 범한 아이들을 감옥으로 보내 범죄자로 낙인찍고 또 다른 범죄의 나락으로 내던지기 전에 기회를 주고 보듬는 게 우리의 사회적 책무다. 안양소년원 마당의 돌 표지석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비바람을 이기고 단단한 뿌리를 내린 나무는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고대훈 논설위원
<이 기사의 취재와 작성에는 이유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