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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영란법 위반 첫 형사처벌은 벌금 500만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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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호 14면

시행 1년 맞는 청탁금지법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이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공공기관 간부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 이 법 위반으로 행정적 제재인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경우는 많았으나 검찰이 기소해 형사처벌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청탁금지법은 공무원 등이 100만원 이하 금품을 받은 경우 과태료를, 100만원 초과 금품을 받은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골프 접대, 2차 문화 크게 줄어 #선물은 안 주고 안 받는 경향 생겨 #검찰 기소 위반 사례 5건에 그쳐 #판례 모자라 수사기관도 난감

16일 수원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 여주지원 형사2단독 이수웅 판사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한국도로공사 고위 간부였던 A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평상시 알고 지내던 도로포장 업체 대표로부터 현금 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다만 A씨가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사정 등을 참작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A씨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조교에게 2만원짜리 도넛 줬다 재판

지난해 9월 28일 도입된 청탁금지법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놨을까. 앞서 A씨 사례처럼 그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돼 온 공직자에 대한 부적절한 금품 제공을 근절시켰다는 긍정적 반응이 많다. 무뎌진 공직사회 청렴의식에 경각심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형사처벌에까진 이르지 않았더라도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주고받아 과태료 처분을 받은 이들은 상당수에 이른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건설사 직원이 발주처인 공사 직원에게 47만여원가량의 식사를 제공한 사례, 자신을 조사한 경찰관에게 100만원을 준 피의자 사례 등 부적절한 행위를 한 이들에게 그간 150만원에서 300만원가량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이택광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행 과정에서 지엽적인 문제점들이 다소 불거졌지만 큰 틀에선 부적절한 선물, 향응 접대가 오가는 문화를 많이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직사회를 둘러싼 접대 문화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줄이거나 안 하는 게 대세다. 중견 기업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48)씨는 “저녁 먹고 2차로 한잔 더 마시러 가는 문화는 대체로 사라졌다. 주말에 골프장 가서 접대하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친한 사이인 경우 간혹 n분의 1 골프를 치는 경우는 있지만 예전처럼 돈을 전부 내주고 밥도 사주고 집에 갈 때 과일바구니 선물까지 들려서 보내는 풀코스 접대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정모(38)씨는 “5만원 이하 선물은 해봐야 티도 안 나기 때문에 올해 추석엔 아예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긍정적 변화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들도 있다. 농산물 업체, 화훼 업계, 고급 음식점 등은 대체로 타격을 입었다. 도도플라워 직원 김나영(35)씨는 “취임식·승진 축하 난, 결혼식 화환 주문 같은 경우 청탁금지법 시행 후 80% 정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표고버섯 전문 판매 업체인 표고아빠네 직원 김모(46)씨는 “선물 자체를 아예 안 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안 주고 안 받는 문화인데 사실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입장에선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애매모호하고 경직된 규정으로 불필요한 법 위반자를 양산하고 공직과 민간 사이 정말 필요한 소통까지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과태료 결정례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사례들이 종종 나온다. 청주지법에서 지난 1월 과태료 2만8000원 처분을 받은 B씨가 그렇다. 그는 감독관청 사무관에게 필요 서류를 보내면서 9600원 상당의 과자 8종을 함께 보낸 것이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대구지법은 행정심판 업무 담당자에게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1만800원 상당의 음료수 한 박스를 제공한 C씨에게 지난 3월 과태료 2만2000원을 부과했다. 과태료 처분이 취소되긴 했지만 대학 실험실 조교에게 혼자 먹기엔 다소 많은 2만원 상당의 도넛을 선물한 실험용품 제작회사 판매사원도 지난 3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관행을 처벌하는 법이다 보니 조사받은 당사자들 대부분이 억울해한다. 정말 얼마 안 되는 음료수 하나 받은 게 법 위반이냐 죄가 되느냐 이런 걸 가리기가 상당히 어렵다. 축구부 감독에게 돈을 모아 주는 학부모들 관행, 퇴직 교수에게 제자 교수들이 선물하는 관행이 죄가 될지 안 될지 어떻게 알고 수사하겠나. 아직까지 명확하고 충분한 판례가 없다 보니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광범위한 적용 대상, 무리한 조항 손봐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형사처벌 사례는 많지 않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지난 8월 18일까지 경찰은 전국에서 총 36건의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12건이며 3건은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해당 기관에 과태료를 처분하라고 통보한 것은 5건, 내사만 하다 종결한 것은 10건이다. 검찰도 지난 8월 말까지 총 109건의 사건을 접수했지만 기소한 것은 5건에 그쳤다. 이 중 정식 재판을 통해 형사 판결이 나온 것은 1건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지킬 건 지키되 지금까지 나온 문제들을 감안해 법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준성 대구외국어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탁금지법이 강력한 반부패법으로 자리 잡으려면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한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공무원만 특정해서 확실하게 처벌하는 방향으로 가야 부작용을 줄이면서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행 초기에는 경각심을 크게 심어줬는데 그 사이 한국 정치가 요동을 치면서 초기의 동력을 잃은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국민들이 이 법이 살아 있는 법이라 느낄 수 있을 정도는 돼야 우리 사회가 깨끗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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