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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밝혀진 17세기 미라, 세상에서 사라져…미라 연구·관리 체계 마련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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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내 연구팀이 질병 유전자 분석을 통해 17세기 조선시대 미라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의 모습.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국내 연구팀이 질병 유전자 분석을 통해 17세기 조선시대 미라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의 모습.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국내에서 발견돼 최근 유전자 분석에서 사인(死因)이 동맥경화로 규명된 17세기 여성 미라(진성이낭)는 지금 어디 있을까. 이 미라는 연구가 끝난 뒤 화장(火葬) 처리돼 세상에서 사라졌다. 미라 발굴 당시 함께 나온 옷과 유품 정도만 보존 처리돼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 미라의 사인을 분석한 신동훈 서울의대 고병리과 연구실 교수는 “연구가 끝나고 나면 미라를 발굴한 고고학팀에 돌려준다. 관행에 따라 화장을 한다. 별도로 미라를 보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라는 발굴 당시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같은 가치가 있는 미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발굴·연구·사후 관리를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나 연구소가 따로 없다. 정민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 연구원은 “미라를 유족이나 연구소에서 인수해가면 이후 행방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현재까지 몇구의 미라가 발굴·연구됐는지 통계조차 없다.

유전자 분석으로 사인 밝혀진 17세기 미라 #국내 관행 따라 화장돼 세상서 흔적 없어져 #국가 차원의 미라 관리·연구 체계 없어 #얼마나 발굴됐는지 통계조차 없어 #연구자가 소속 병원 부검실 등에 보관 #유럽은 대학·박물관, 미라 연구 중시 #1991년 발굴된 아이스맨 와치 #신기술 나올 때마다 인류사 고증 기여

이 가운데 미라를 연구한 연구자가 개인적으로 미라를 보존하는 실정이다. 김한겸 고대구로병원 병리과 교수는 병원에 미라 8구를 이 병원 부검실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02년 발굴된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를 부검해 윤씨가 아이를 낳다가 자궁 파열로 사망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파평 윤씨 모자 미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임신한 상태에서 발견된 미라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미라가 발굴되면 옷과 부장품은 중히 여기지만 정작 미라를 보존하는 곳이 없다. 3년 후에 내가 정년퇴직을 하면 우리 병원에 있는 미라 8구도 아마 다 화장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한겸 교수가 보관하고 있는 미라. [사진 김한겸 교수]

김한겸 교수가 보관하고 있는 미라. [사진 김한겸 교수]

파평윤씨 모자 3D 복원도. [사진 김한겸 교수]

파평윤씨 모자 3D 복원도. [사진 김한겸 교수]

반면 외국에선 한국보다 관리가 체계적이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는 1971년 마왕퇴 동산에서 발견된 ‘마왕퇴 미라' 보존 박물관이 있다. 김한겸 교수는 "실제 무덤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신장 위구르 지역인 우르무치 박물관도 미라를 관리해 전시하고 있다.

5200년전 미라 아이스맨 외치. [사진 Eurac]

5200년전 미라 아이스맨 외치. [사진 Eurac]

유럽 국가는 한 발 더 나가 있다. 잘 보존해 과거를 고증하는 대표적인 미라 사례는 이탈리아의 5300년 된 미라, 일명 아이스맨 '외치'(Otzi)다. 1991년 알프스 산맥 빙하에서 발견됐다. 이탈리아 볼차노에는 외치를 연구하는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가 있다. 첨단 분석 기술이 나올 때마다 외치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밝혀내 그 결과를 발표한다.

지난해 1월 연구팀은 외치의 장내 유전자를 분석해 현대인의 절반 이상이 갖고 있는 '헬리코박더 파일로리 균'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헬리코박터균의 유전정보를 통해 인류가 유럽으로 이주하는 과정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다. 헬리코박터균은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보인다. 외치는 아프리카보다는 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되는 균을 갖고 있었다. 반면 현생 유럽인의 헬리코박터균은 아프리카형과 아시아형이 섞인 형태다. 이는 외치가 살았던 5300년 전에는 아프리카의 인류가 유럽으로 활발하게 이동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외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2007년 연구에서는 외치가 ‘동맥 손상에 따른 과다 출혈’로 사망했음을 밝혀졌다. 2013년에는 외치의 뇌 조직에서 추출한 단백질과 혈액 세포를 조사해 외치가 죽기 직전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2012년에는 유전자 분석으로 외치의 혈액형이 0형이란 것과 갈색 눈, 심장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 특징, 당분해 효소 결핍증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외치의 구강 모형에 특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용해  외치의 목소리를 복원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남성이 내는 걸걸한 목소리였다. 외치를 전시 중인 볼자노시박물관은 관광 명소다.

연구소가 복원한 5200년 전 아이스맨 외치의 모습. [사진 Eurac]

연구소가 복원한 5200년 전 아이스맨 외치의 모습. [사진 Eur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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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미라 연구는 미라가 보존된 연구 시설과 박물관을 중심으로 활발하다. 미국 일리노이대 미라 프로젝트는 이집트 미라를 중심으로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 간 융합 연구를 진행한다. 이들은 고고학 유물과 유해 조사도 한다. 미라의 성별·나이·복식·영양학적 분석 등 다양한 연구를 한다.

스위스 미라 프로젝트는 취리히 대학 해부학 연구소에서 맡는다. 다양한 지역에서 확보된 미라를 대상으로 손상을 최소화하는 분석 기술로 연구를 수행한다. 이 외에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맨체스터 박물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도 보유 중인 미라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 보물전'에 소개된 고대 이집트의 미라와 관(棺). [중앙포토]

지난해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 보물전'에 소개된 고대 이집트의 미라와 관(棺). [중앙포토]

신동훈 서울의대 고병리연구실 교수는 “미라는 특히 질병 역사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과거에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현대의학으로 밝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헌에 기록된 증상만으로는 질병을 진단할 수 없는데 이런 한계를 미라 연구가 극복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김한겸 교수는 "한국에서 나오는 미라는 이집트 미라와 달리 장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생존 시기의 식습관·질병을 고증할수 있어 연구 가치가 높다. 미라 연구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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