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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신북방정책, 짝사랑 안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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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러시아 극동 최남단의 연해주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다. 비행기로 2시간40분이면 날아간다. 시베리아 끝에 붙은 동토의 땅이라 생각하지만 가 보면 그렇지 않다. 산에는 침엽수가 울창하고 곳곳에 끝없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 땅에 콩과 옥수수로 푸른 지평선이 펼쳐지는 농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우스리스크에 있는 현대 하롤 농장은 2009년 첫 씨앗을 뿌렸으니 내년이면 어느덧 10년째다. 지난해 그곳에서 만난 농장 관계자는 “10년 다 돼가지만 그래도 러시아를 잘 모르겠다”는 소회를 털어놓았다.

러시아 경협, 벼락치기로는 바라는 것 얻지 못해 #‘아베의 실패’와 하롤 농장 경험에서 교훈 찾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첫발을 뗀 ‘신북방정책’도 앞으로 성과를 얻으려면 이들 농장처럼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한·러 경제협력을 지렛대로 북핵을 막고 북한을 대화의 마당으로 끌어내겠다는 구상은 고무적이지만 크렘린궁의 문을 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북핵을 멈출 수 있는 지도자인 만큼 강력한 역할을 해 달라”고 설득했지만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없다”는 싸늘한 답을 들어야 했다. 푸틴은 오히려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한 자신의 ‘북핵 3단계 로드맵’을 역제안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갑갑할 것이다. 신북방정책에 담아간 경협 선물 보따리를 푸틴이 선뜻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인브리지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경협 방안은 가스·철도·전력·북극항로·조선·공단건설·농업·수산·대북협력 등 전방위에 걸친 러시아 투자 방안이다. 하지만 푸틴의 반응은 겨울 시베리아처럼 차가웠다. 러시아로선 경협을 바라지만 서두를 이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연해주 개발은 시급한 과제다. 러시아어로 프리모르스키(연안+바다)로 불리는 연해주는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9288㎞ 떨어진 머나먼 불모지였지만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 땅이 되면서 지정학적 요충지가 됐다. 이곳에 부동항을 확보하면서 동북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를 구축한 것이다. 최근엔 한·중·일과의 경협 모색을 위한 경제적 요충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고민은 한반도의 28배에 달하는 극동의 인구가 600만 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인구 1억 명이 넘는 중국 동북3성과 육로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중국으로의 경제력 예속도 근심거리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고 푸틴은 집권 이후 신동방정책에 박차를 가해 왔다.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에 유치하면서 6793억 루블(약 12조원)을 투입해 연해주의 교통과 도시 인프라를 대폭 확충했다. 한·중·일이 만들어낼 동북아 경제권에 대비해 연해주를 러시아의 경제수도로 만든다는 구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자본의 유치는 필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 점에 착안해 경협을 지렛대로 북방 영토 반환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에는 푸틴과 16차례 회동했지만 헛물만 켜고 말았다. 러시아로선 한·중·일이 앞다퉈 구애하니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다. 북핵은 반대하지만 ‘레드라인’만 넘지 않으면 현상 유지도 좋다는 느긋한 입장이다.

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은 이런 상황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나진-하산 공단 조성을 비롯한 나인브리지 프로젝트를 위해 20억 달러의 기금 동원이 추진된다는데 성급해선 안 된다. 조급하면 짝사랑만 되풀이할 수 있다. 사실 한·러 경협은 1997년 양국 경제과학기술공동회 설치 이후 20년간 추진돼 왔지만 별 진전이 없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벼락치기하듯 추진하다 진척이 없으면 금세 무관심으로 돌아서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지속성이다. 현대 농장처럼 꾸준히 투자할 때 관계를 돈독히 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문재인표 신동방정책은 당장 과실을 따려 하지 말고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처럼 백년대계 차원에서 접근하길 바라는 이유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