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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소녀, 친구 남친과 얘기 나눴다고 10개월 놀림·폭행당하다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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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5세 소녀가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59분쯤 전북 전주시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목숨 끊은 전주 여중생에 무슨 일이 #‘꼬신다’ 페북 글, 성적 모욕에 충격 #흉기로 수차례 자해하며 자살 언급 #가해자 사과 받았지만 괴롭힘 계속 #아버지 “10개월 전 이미 영혼 파괴” #경찰 “9명 조사 … 학교도 수사 대상”

A양의 부모는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남녀공학 중학교 또래 친구들의 학교폭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산 피투성이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처럼 온몸을 피범벅으로 만든 집단 구타는 아니지만 또래들의 10개월에 걸친 지속적인 폭언과 집단 따돌림·폭행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를 파국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A양은 학급 임원과 방송부장 등을 하며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던 평범한 여중생이었다. 이런 큰딸을 잃은 A양의 부모는 지난 1일 전주 완산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A양의 아버지는 “엄정한 조사를 통해 가해 학생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고 다시는 우리 딸처럼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학교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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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전 A양과 가까웠던 친구들과 A양 부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A양의 비극은 지난해 10월 학교 축제 기간에 같은 학년인 B군과 얘기를 나눈 게 발단이 됐다. 이 남학생은 A양의 같은 학교 친구 C양의 남자친구였다. 이를 오해한 C양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A양을 비난하는 이른바 ‘저격글’을 올렸다. “남자 꼬실람(꼬시려면) 딴 데 가라 그래. 진짜 너무 싫음” 등의 내용이었다. 이 글에는 D양 등 29명이 댓글을 달았다.

A양의 아버지는 “C양의 페이스북 글을 본 학생들이 딸을 공격하면서 딸은 마음의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남학생은 교실과 버스에서 친구들에게 A양을 ‘걸레’라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A양은 페이스북 글을 내리고 싶은 마음에 C양에게 사과했지만 아무도 A양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D양 등 4명은 그 뒤로도 A양에게 ‘몸 대주고 다닌다’ 등 폭언을 일삼았다. 또 A양이 지나가면 주위를 빙빙 돌면서 고함을 지르거나 째려보며 위협했다. 괴롭힘은 지난 4월까지 반복됐다. 이 때문에 A양은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급기야 지난해 12월부터 손등과 팔목·허벅지 등에 수차례 자해를 시도했다. 지난 4월에야 딸의 친구들로부터 이런 상황을 파악한 A양의 부모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대신 가해 학생들이 사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들에 대한 처벌보다 딸의 치유가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A양의 아버지는 “가해 학생들이 사과는 했지만 대부분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에 실망한 딸이 사과받은 그날 손목에 자해를 했다”고 말했다. A양의 부모는 딸이 자살을 자주 언급하자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11일까지 전주의 한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시켰다. A양의 아버지는 “딸은 1차 학교폭력이 있었던 지난해 10월 이미 영혼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A양의 악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월 20일 같은 학교 친구인 F양의 전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던 게 또 오해를 샀다. F양은 이튿날 오후 10시30분쯤 집에 있던 A양을 학원 뒤편으로 불러냈다. 거기엔 F양을 포함해 같은 학교 여학생 5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F양은 “자해한 게 자랑이냐. 걸레짓 좀 하지 마”라며 A양의 가슴을 세게 밀치고 뺨을 두 차례 때렸다. 이날 이후에도 F양 등은 A양과 마주칠 때마다 욕을 했다. 이를 본 한 학생이 학교 교사에게 알렸지만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F양 등의 보복이 두려워 A양은 신고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6일 A양은 병을 깨 손목을 그었다. A양의 아버지는 “자신을 괴롭힌 F양 등에 대한 공포감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양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는 개학 후 더 심해졌고 결국 지난달 27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A양에 대한 심리 상담을 진행한 청소년상담센터 측은 상담소견서에서 “A양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정서적 어려움과 혼란을 겪을 때 극단적으로 자해를 함으로써 힘들다는 것을 주변에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건의 충격이 작아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경우 친구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학생은 모두 9명이다. 경찰은 A양과 가까웠던 친구 5~6명에게서 A양이 어떤 일을 겪었고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등을 확인한 다음 가해 학생들을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모욕 및 협박죄, 폭행 등의 혐의를 검토하고 있다.

전주 완산경찰서 관계자는 “A양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A양이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15일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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