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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살 통통 대하·전어·꽃게 … 참, 한우도 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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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일오끼 ③ 홍성

“횡성 아니라 홍성?” 쇠고기 먹으러 충남 홍성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이렇게 반응했다. 이처럼 홍성의 맛에 대해 아는 이가 드물다. 일일오끼 세 번째 지역으로 홍성을 선택한 건 내해(內海) 천수만의 대하와 전어· 꽃게 같은 갯것 말고도 먹을 게 많아서다.

자연산 대하는 남당항 특산물 #토굴서 숙성시킨 새우젓 유명 #젓갈 아홉 가지 내는 백반도 별미

12:00 서울서 먹기 힘든 자연산 대하

은박지 입힌 프라이팬에 소금을 깔고 구워 먹는 대하 소금구이.[박종근 기자]

은박지 입힌 프라이팬에 소금을 깔고 구워 먹는 대하 소금구이.[박종근 기자]

대하축제를 사흘 앞둔 9월 4일 홍성 남당항 앞바다는 분주했다.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선원들은 아침에 잡은 대하를 그물에서 떼어 얼음에 재는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다. 알 사람은 알지만 자연산 대하는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죽는다. 시장이나 횟집 수조에서 힘차게 펄떡이는 녀석은 양식한 흰다리새우다. 남당항에서는 9월 8일부터 24일까지 대하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24일 끝나지만 11월까지 잔뜩 살을 불린 자연산 대하를 맛볼 수 있다.

서울의 수산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도 대하를 파는데 굳이 홍성까지 가야 하나? 김용태(57) 남당항 대하축제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산 대하는 남당항에서 팔기에도 물량이 빠듯해유. 서울서 파는 건 대부분 양식이쥬. 글구 여기에 어디 대하만 있나유? 꽃게·전어까지 가을 별미를 죄다 먹을 수 있지유.”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에서 한 어부가 갓 잡은 대하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맘때 자연산 대하는몸 길이가 20㎝ 정도고, 수염은 몸 길이의서너 배에 달한다.[박종근 기자]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에서 한 어부가 갓 잡은 대하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맘때 자연산 대하는몸 길이가 20㎝ 정도고, 수염은 몸 길이의서너 배에 달한다.[박종근 기자]

남당항 식당에 가면 대하 가격은 모두 ‘싯가(시가의 틀린 말)’라 쓰여 있다. 그래도 바가지 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축제위원회에서 가격을 통일했기 때문이다. 9월 4일 기준, 자연산 대하는 1㎏에 4만원(포장 기준), 양식 흰다리새우는 1㎏에 3만5000원이다. 식당에서 소금구이로 먹으면 각각 1만원이 추가된다.

남당항 식당 어촌마을(041-634-5248)에 자리를 잡았다. 소금구이용으로 자연산 대하와 흰다리새우를 1㎏씩 주문했다. 자연산이 조금 더 살이 연한 것 같았다. 그러나 눈 가리고 맛을 맞히라 한다면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고소한 맛이 잔뜩 오른 전어는 구이로 먹고, 살이 가득 찬 꽃게는 찜으로 먹었다. 입안에 가을이 찾아들었다.

17:00 육질 부드러운 거세우

충남 홍성 서부농협에서 판매하는 ‘홍성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기로 소문났다.[박종근 기자]

충남 홍성 서부농협에서 판매하는 ‘홍성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기로 소문났다.[박종근 기자]

홍성 한우는 강원도 횡성이나 전남 함평 한우에 비해 인지도가 약하다. 그러나 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시장이나 옛 지명만 봐도 홍성 한우의 깊은 내력을 알 수 있다. 백제 때 우견현(牛見縣), 통일신라 때는 목우현(目牛縣)으로 불렸다. 지금도 여전하다. 2015년 기준으로 한우 6만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이는 전국 지자체 중 다섯 번째 규모이자 군 단위로 최대다.

항구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한우 맛집이 있다. 남당항과 같은 서부면에 있는 서부농협 축산물판매장(041-633-8553)이다. 마트 2층에 식당이 있다. 홍성군이 인증한 ‘홍성한우’를 파는 업소가 홍성에도 6개 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다.

식당은 직접 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는 ‘홍보관’과 1+등급 이상 고급 한우를 내주고 상을 차려주는 ‘한우 전문식당’으로 나뉜다. 한우 전문식당에서 스페셜(150g 3만6000원)을 주문했다. 등심과 갈빗살·안창살 등이 나왔다. 표경덕 서부농협 조합장은 “홍성한우는 거세우만 쓴다”며 “암소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품질이 일정한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홍성읍에 홍성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한우 전문점도 있다. 암소 특수부위를 전문으로 파는 내당한우(041-632-0156)다. 스페셜(150g 3만5000원)을 시키면 안창살이나 토싯살을 내주고, 특수부위(3만3000원)를 시키면 치맛살·부챗살·제빗살 중 그날 들어온 걸 내준다. 서용희 사장은 “특수부위는 소 한 마리를 잡아도 10인분이 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귀하다”며 “불판에 올리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될 정도로 신선하다”고 자랑했다. 2015년 서울 논현동에 분점도 냈다.

다음 날 8:00 토굴 구경하고 젓갈 백반 먹고

홍성군 광천읍에는 토굴이 40여 개 있다. 13~15도, 습도 70~80%가 유지되는 굴속에서 숙상한 새우젓은 맛이 깊고 고소하다.[박종근 기자]

홍성군 광천읍에는 토굴이 40여 개 있다. 13~15도, 습도 70~80%가 유지되는 굴속에서 숙상한 새우젓은 맛이 깊고 고소하다.[박종근 기자]

홍성에는 오서 삼미(三味)라는 게 있다. 홍성 남쪽에 있는 오서산(790m) 인근에 맛난 음식이 많다 하여 생긴 말인데, 대하와 광천 김, 그리고 광천 토굴새우젓이 주인공이다. 삼미에 두 개나 꼽힌 광천 지역은 예로부터 김과 새우젓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지만 집산지로서 더 큰 역할을 했다. 신안 김, 강화 새우젓도 광천에서 조리·숙성 과정을 거쳐 ‘광천’ 브랜드를 달고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토굴새우젓이란 광천 옹암리 독배마을에 있는 이름도 없는 산속 굴에서 숙성한 새우젓을 일컫는다. 고(故) 윤만길씨가 한국전쟁 이후 폐광 굴 안에 새우젓 담긴 독을 방치하다시피 넣어뒀는데 한참 뒤 맛을 보니 훨씬 맛있어졌다고 한다. 이후 독배마을에는 토굴이 40여 개로 늘었다. 굴 안은 연중 섭씨 13~15도, 습도는 70%로 유지된다. 토굴을 소유한 신경진 서해수산식품 대표는 “토굴에서 두세 달 숙성한 새우젓은 저온창고에 넣어둔 것보다 맛이 깊고 고소하다”고 설명했다.

석이네식당휴게소에서 먹은 젓갈백반. 젓갈만 아홉 가지를 내주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박종근 기자]

석이네식당휴게소에서 먹은 젓갈백반. 젓갈만 아홉 가지를 내주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박종근 기자]

현재 광천읍에는 젓갈집만 120개를 헤아린다. 광천시장에 유난히 많은 집이 몰려 있는데 새우젓뿐 아니라 온갖 젓갈과 광천 김을 판다.

광천에서는 젓갈 백반을 먹어봐야 한다. 원조 격은 석이네식당휴게소(041-641-4127)다. 21번 국도변에 있는데, 김 공장과 젓갈 판매점을 겸하고 있다. 젓갈백반(1인 1만원, 2인분 이상 주문)을 주문하면 아홉 가지 젓갈과 돼지불백·된장찌개·계란찜을 함께 내준다.

10:00 모카 맛 좋은 가내수공업 프로덕션

홍성읍에 있는 카페 가내수공업프로덕션.직접 볶은 원두를 이용해 커피를 내리는데 소읍에서는 보기 드문 커피전문점이다.[박종근 기자]

홍성읍에 있는 카페 가내수공업프로덕션.직접 볶은 원두를 이용해 커피를 내리는데 소읍에서는 보기 드문 커피전문점이다.[박종근 기자]

요즘 인스타그램에 홍성군청 서쪽 1.5㎞ 거리에 있는 가내수공업 프로덕션(041-635-0625)이 많이 등장한다. 대전지방검찰정 홍성지청 바로 앞에 있는 카페는 간판도 없다.

원고지에 손으로 적은 메뉴를 보고 대표 메뉴인 크림모카(5000원)와 에스프레소(3500원)를 주문했다. 10분 뒤에 커피 두 잔을 내줬다. 크림모카·핫초코·로얄밀크티 등은 생크림을 직접 끓여 만드는 터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천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안주형 사장이 고향 홍성으로 돌아와 가내수공업 프로덕션을 연 건 정확히 1년 전. 안 사장은 “특별히 내세울 맛은 아니다”며 부끄러워했지만 한잔 한잔 정성 들여 만든 커피는 예사롭지 않았다.

12:00 하루 6시간만 파는 소머리국밥

홍성시장 안에 있는 홍흥집. 아침마다도축장에서 가져온 싱싱한 고기로소머리국밥과 돼지내장탕을 끓여서 판다.[박종근 기자]

홍성시장 안에 있는 홍흥집. 아침마다도축장에서 가져온 싱싱한 고기로소머리국밥과 돼지내장탕을 끓여서 판다.[박종근 기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운 건 상경 전 마지막으로 꼭 들를 집이 있어서였다. 홍성 전통시장 안 홍흥집(041-633-0024)을 가려고 벼르고 별렀는데 이날은 오전 11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고 했다. 시장은 한산했다. 시장 한쪽으로 줄지어 선 국밥집 중에서도 홍흥집이 유난히 북적였다.

홍흥집의 소머리수육과돼지내장. 잡내가 전혀 없고 입에서녹는 듯한 식감이 일품이다.[박종근 기자]

홍흥집의 소머리수육과돼지내장. 잡내가 전혀 없고 입에서녹는 듯한 식감이 일품이다.[박종근 기자]

전날 통화했던 윤홍미씨가 반갑게 맞아줬다. “가게를 일찍 못 열어 원성이 자자해요. 근데 어쩔 수가 없네요. 새벽에 도축장에서 좋은 고기를 떼 와 육수를 끓이면 11시는 돼야 하거든요.” 초·중·고 동창인 박종연·윤홍미(37) 부부가 식당을 맡은 건 6년 전이다. 윤씨 외할머니가 1950~60년대부터 홍성시장 한쪽에서 간판도 없이 소머리국밥을 끓여 팔았고, 윤씨 어머니가 70년대부터 홍흥집이란 이름으로 장사를 했다. 그리고 6년 전 시장 재개발로 지금 이 자리에 새로 홍흥집 문을 연 윤씨는 “그냥 외할머니·어머니가 만들던 대로 만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홍흥집 메뉴는 단출하다. 소머리국밥(6000원)과 돼지내장탕(6000원), 소머리수육(1만원)과 돼지내장(1만원). 전혀 맛이 다른 소머리국밥과 돼지내장탕 국물을 한 숟갈 뜬 뒤 반응은 똑같다. “국물은 맑은데 맛이 깊다. 고기가 부드럽다.” 맛의 비결을 물었다. 윤씨는 “아침에 떼 온 고기를 절대 얼리지 않고 쓰는 것밖에 없어요. 육수도 얼려서 쓰는 법이 없고요”라고 말했다. 홍흥집은 11시 즈음부터 손님을 받고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단다. 홍흥집은 쉬는 날이 부정기적이라 가기 전에 미리 전화로 확인해 보는 게 안전하다.

홍성=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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