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숨 고르기인가, 기만인가…북, 대북제재 결의 채택후 오히려 잠잠

중앙일보

입력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외곽조직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는 14일 “믿을 것은 오직 자기 손에 틀어쥔 자위적 핵무력뿐”이라며 “끝을 볼 때까지 간다”고 주장했다. 아태 대변인은 지난 12일(미국 현지시간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 2375호를 “썪은 그물보다 못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북 유류 지원에 제한선을 두고, 노동력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안보리 결의 채택에 대한 반발이다.

북한 통일전선부 외곽단체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이 14일 "미국과 추종세력들은 우리 천만군민의 서리발치는 멸적의 기상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비난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 통일전선부 외곽단체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이 14일 "미국과 추종세력들은 우리 천만군민의 서리발치는 멸적의 기상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비난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의 이런 반발은 가장 강력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취해진 것에 비해 예상보다 수위가 낮다는 평가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안보리 결의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미국이나 국제사회를 향한 비난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며 “막상 제재 결의가 채택된 뒤엔 예상보다 반발이 덜한 상황이어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아태 "천만군민의 서리발치는 멸적의 기상을 똑바로 봐야" #12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후 반발 이어져 #그러나 제재 결정전 막말보다 수위나 형식 낮춰 주목 #추가도발 기만일 수 있어 당국 촉각

실제 안보리가 열리기 직전인 11일 외무성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사상 최악의 ‘제재결의’를 꾸며 내려고 책동하고 있는 미국에 경고한다”면서 “우리는 그 어떤 최후수단도 불사할 준비가 다 돼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취하게 될 다음번 조치들은 미국으로 하여금 사상 유례없는 곤혼을 치르게 만들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지난 7일엔 아태 대변인이 나서 “무모하고 어리석은 객기를 부릴수록 말로가 더욱 비참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거나, 대남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은 “눈앞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푼수없이 놀아 대다가는 감당 못할 재난만을 뒤집어 쓰게 될 것”이라는 등 북한은 각종 매체들을 동원해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를 향한 막말을 이어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핵탄두를 제작하는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언론들이 지난 3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 보도를 한 직후인 3일 오전 12시 30분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핵탄두를 제작하는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언론들이 지난 3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 보도를 한 직후인 3일 오전 12시 30분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정작 국제사회가 제재를 결정한 직후 북한은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막말은 삼가는 분위기다. 13일 북한 외무성도 안보리 결의를 배격한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기존 수시로 발표하던 ‘성명’ 형식이 아닌 ‘보도’로 격을 낮췄다. 내용 역시 “(제재는)이 길(핵무기 개발)을 변함없이 더 빨리 가야 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하는 계기”, “미국과 실제적인 균형을 이루어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힘을 다져 나가는데 더 큰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지난달 6일 안보리 결의 2371호가 채택되자, 이튿날 가장 격이 높은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며 “정의의 행동에로(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반발의 수위를 대폭 낮춘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2일 섬과 전방 지역 등 오지에 근무를 자원한 교원들을 만났다. 그의 민생과 관련한 공개활동은 6월 20일 이후 84일 만이며 이 기간 핵과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행보를 이어왔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2일 섬과 전방 지역 등 오지에 근무를 자원한 교원들을 만났다. 그의 민생과 관련한 공개활동은 6월 20일 이후 84일 만이며 이 기간 핵과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행보를 이어왔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특히 지난 7월 이후 모든 공개활동을 핵과 미사일 개발 분야에 집중했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북 제재 직후 민생챙기기에 나선 것도 다소 의외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북한 언론의 보도일을 기준으로 지난 6월 20일 치과 위생용품공장 방문을 끝으로 16차례의 공개활동을 했다. 이 가운데 정전협정체결일(7월27일)을 맞아 조국해방전쟁(6ㆍ25전쟁) 참전 열사묘 방문을 제외한 15차례의 활동 모두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연구소 등 핵ㆍ미사일 관련이었다. 그러다 안보리 제재 직후인 12일 전방이나 섬, 산골학교에 근무를 자원한 교원들과 면담을 하는 등 84일 만에 민생과 관련한 활동을 재개했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북한 언론보도는 김정은의 실제 공개활동 하루 뒤에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보리 제재 직전부터 민생행보에 나선 것”이라며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 발표에 따르면 핵실험 직전 고위 간부(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여 향후 대책을 숙의한 만큼 제재를 예상하고 향후 대책도 만들어 놨을 것“이라며 “다음달 10일 당창건 기념일 준비에 몰두하거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입장을 고려한 입장을 취하면서 제재 수위가 낮아진 만큼 반발 수위를 낮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전에도 대북제재가 나온 뒤 미사일 발사 등의 추가도발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기습 발사를 위한 기만전술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