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DJ ‘48년 정부수립’ 정리, 박근혜 정부 ‘48년 건국’ 첫 표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② 건국은 시점이 아니라 과정 

“건국과 정부 수립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정권 따라 달라지는 역사교과서 #혼용되던 건국·정부 수립 의미 #2002년 교과서부터 용어 통일 #‘대한민국 수립’ 표현 국정교과서 #문재인 정부 출범하며 폐기 처리

지난달 31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사퇴 요구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포스텍(옛 포항공대) 교수인 박 후보자는 2015년 연구보고서에서 ‘1948년 건국’이란 표현을 쓴 게 알려지며 여당으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았다. 1919년을 건국으로 보고 있는 현 정부의 역사관과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건국’과 ‘정부 수립’을 구분하는 문제는 장관 후보자를 검증하는 주요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둘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중·고교 역사교과서에서 ‘건국’과 ‘정부 수립’의 의미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국사교과서는 1954년 검정 체제로 발행되다 74년 유신 이후 국정으로 전환돼 2001년까지 유지됐다. 이때까지는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혼용했다. 교과서 발행 체제가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부터 검정 체제로 전환되면서 ‘정부 수립’이란 표현으로 정리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관련기사

교과서에 ‘1948년 건국’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교학사가 발행한 검정교과서다. 이 교과서는 기존 검정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수진영에서 개발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본문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건국의 출발을 하게 됐다”고 기술했다. 교학사를 제외한 교과서들은 교육부의 당시 집필 기준에 따라 1948년을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으로 표현했다. 교육부는 교학사에 수정을 요청했고, 교학사는 이를 받아들여 ‘건국’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당시 교학사 교과서는 전교조 등의 ‘친일 교과서’ 공세 속에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검정교과서는 대한민국 체제 수립에 대해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북한 체제 수립에 대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각각 표현했다. 이를 두고 “북한은 국가의 수립이 되고, 대한민국은 행정부의 수립으로 격하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시 갈등이 시작된 건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8·15 경축사였다. 전년도에 ‘정부수립 66주년’이라고 했던 박 전 대통령이 ‘건국 67년’이라고 해서다. 한 달 후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의 내용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개정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에서 검정교과서를 없애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키로 하면서 이 같은 논쟁은 더욱 심화됐다.

국정교과서 편찬 기준은 3·1운동을 ‘독립운동의 분수령’ 등으로 기술해 해방 이후 건국의 모태가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집필 기준에 쓰였던 ‘국가 수립’과 같은 표현은 삭제했다. 대신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했다. 광복 후 6·25까지 시기의 학습목표 자체를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공개된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제7 단원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 첫 장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됐다”(244쪽)고 기술했다. 이어진 첫 번째 소단원의 제목도 ‘대한민국의 수립과 자유민주주의 시련’이었고 본문 곳곳에서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이 반복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교과서는 폐기됐고 이전처럼 검정교과서 체제로 회귀했다. 이에 따라 새로 만들어질 검정교과서는 1948년을 다시 ‘정부 수립’으로 기술할 예정이다. 아울러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건국’의 시발점으로 보는 내용이 함께 담길 전망이다.

특별취재팀=강홍준·고정애·문병주·윤석만·안효성·최규진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