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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이념따라 춤추는 ‘건국 시계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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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8·15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년”이라고 규정했다. 건국은 1919년이고, 1948년은 정부 수립이라는 얘기다.

보수 1948년, 진보 1919년 주장 #진영논리 앞세워 이전투구 반복 #건국은 하나의 시점 아닌 과정 #이승만·김구, 특정시점 강조 안해 #학계 “소모적 건국논쟁 자제해야”

이보다 3년 전인 2014년 8·15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69주년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66주년을 맞이해 온 국민과 함께 이 뜻깊은 날을 경축한다. 조국의 광복과 건국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꿈이었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애쓴 앞선 세대들의 꿈이다.” 1948년이 건국이란 취지였다. 다시 시계추를 6년 앞으로 돌리면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1948년 건국을 못 막았다. 그는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다”고 했다.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98년, 1948년 정부 수립으로부터 69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건국 시점이 언제냐”를 따져 물으며 편을 갈라 낙인을 찍고 있다. 보수·진보 진영이 각각 존중하는 건국 주역인 이승만초대 대통령과 김구 임시정부 주석은 정작 건국 시점을 명료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사진은 1945년 12월 1일 한국으로 돌아온 임시정부를 환영하는 행사인 봉영식에 참석, 나란히 앉은 이승만과 김구. [중앙포토]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98년, 1948년 정부 수립으로부터 69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건국 시점이 언제냐”를 따져 물으며 편을 갈라 낙인을 찍고 있다. 보수·진보 진영이 각각 존중하는 건국 주역인 이승만초대 대통령과 김구 임시정부 주석은 정작 건국 시점을 명료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사진은 1945년 12월 1일 한국으로 돌아온 임시정부를 환영하는 행사인 봉영식에 참석, 나란히 앉은 이승만과 김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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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보수·진보냐에 따라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1919년을, 박·이 전 대통령은 1948년을 지지했다. 이는 진영을 가르며 상대방을 배제하는 잣대가 됐다. 최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948년 건국을 옹호하는 역사관을 지니고 있어 촛불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막상 보수·진보 진영이 각각 우러르는 이승만 임시정부(임정)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김구 임정 주석의 건국관은 그리 명료하지 않았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은 산업화 세력을 긍정 평가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은 항일운동을 강조하며 김구 선생을 상징적 인물로 여기며 이전투구하고 있다”며 “이들은 전자가 보수라면 후자가 진보 쪽인 것처럼 부각시켜 진영 논리에 갇혀 있는 꼴”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중앙일보 취재팀이 독립운동 사료와 역대 대통령 연설문, 국회 속기록을 조사한 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19년 건국을 주장하곤 했지만 그 역시 48년 건국됐다는 말도 했다. 김구 주석은 임정을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는 과도적 계단’으로 여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건국과 정부 수립을 혼용하곤 했다.

건국 논란은 2000년대의 산물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나라당이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했고, 뉴라이트(신보수)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학계를 중심으론 “국민에게 실익 없는 논란을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개입하기보다는 연구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해 가자는 취지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건국은 하나의 시점이 아닌 과정”이라며 “어느 한쪽으로 줄 서게 만드는 건 소모적이면서도 분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1919년 건국’ 주장으로 역사교과서 개정 작업이 시작됐다. 다시 ‘과거’를 둔 현재의 싸움이 재연됐다.

◆ 특별취재팀=강홍준·고정애·문병주·윤석만·안효성·최규진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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