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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떨리게 비싼 경주 택시요금, 무엇이 문제인가 봤더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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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단지 가주세요."
"30분 정도 걸리고 미터기에서 계산하는 요금으로 칩니다."

서울~경주 KTX 4만9300원, 신경주역~보문단지 택시비 2만8000원 #'시외'나가면 요금 더 부과하는 복합요금할증제 적용 때문 #동부동 신한은행 네거리 반경 4㎞넘으면 '시외'로 간주 할증 55% 적용 #택시 수입손실 보전 위해서라지만 요금 너무 비싸다 지적 높아 #시 "복합할증요금제도, 다른 시에서도 다 하기에 문제없어"

10일 오후 경북 경주 건천읍 신경주역. 늦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친구와 서울서 KTX를 타고 경주에 온 회사원 박희진(30)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경주 주요 관광지가 모여 있는 보문단지로 가기 위해 택시에 탑승하자, 택시기사가 대뜸 미터기로 요금을 계산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박씨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택시기사는 "신경주역이 경주 시내에서 먼 외곽이라 할증이 붙어서 택시요금이 많이 나온다"라며 "미터기가 자동으로 할증까지 계산하는데, 2만7000원 정도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이후 기본요금 2800원이 넘어가자 돈이 순식간에 올라갔다"며 "기차역이 시외라서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기찻값에 버금가는 택시비가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김씨 일행은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330㎞를 KTX를 타고 오는데 인당 4만9300원의 요금을 지불했다. 역에서 보문단지로 22㎞를 달리는데 낸 택시비는 2만8000원이었다.

10일 오후 신경주역 전경. 경주=백경서 기자

10일 오후 신경주역 전경. 경주=백경서 기자

경주에서 8년간 택시를 운영했다는 택시기사 김은수(69)씨는 "손님들에게 미리 설명하지 않으면 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어, 택시기사들이 먼저 말을 한다"며 "대학생 손님은 가다가 요금 때문에 내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 2007경주문화엑스포 행사장. 뒤로 보문단지가 보인다. [중앙포토]

경북 경주시 2007경주문화엑스포 행사장. 뒤로 보문단지가 보인다. [중앙포토]

역사·문화의 도시이자, 매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경주에서 택시비 할증을 두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관광객은 비싼 택시요금에 놀라고, 택시기사는 시외로 지정된 관광지를 갈 경우 할증을 적용하는데 승객의 충분한 동의를 구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는 도시와 농촌(읍·면)이 공존하는 도농 복합지역에 적용하는 복합할증제도에서 비롯됐다. 택시가 시 중심지에서 한적한 농촌지역으로 승객을 데려다 준 뒤 빈 차로 돌아올 것을 고려해 택시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취지의 제도다. 경주시의 경우 96년 도입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 동부동 신한은행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4㎞넘을 경우 '시외'로 간주해 복합할증 55%가 적용된다. 139m당 100원이 올라간다.

경북 경주의 봄. 보문단지 일대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사진 경주시]

경북 경주의 봄. 보문단지 일대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사진 경주시]

하지만 신경주역뿐만 아니라 신평동에 위치한 보문단지, 진현동의 불국사 등 경주의 주요 관광단지도 대부분 시외로 규정돼 있어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높은 요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왔다는 박숙희(40)씨는 "밤에 아이 둘을 데리고 신경주역에 도착했는데 버스도 없고 주변에 차를 렌트할 곳도 마땅치 않아 택시를 이용했다. 야간할증에 복합할증까지 붙어 보문단지 근처 호텔에 가는데 5만원이 나왔다. 관광지에서 물가가 비싼 건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10일 오후 신경주역 택시 승강장 전경. 경주=백경서 기자

10일 오후 신경주역 택시 승강장 전경. 경주=백경서 기자

다른 지역의 경우는 어떨까. 복합할증제도는 대부분 시·군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세부 기준은 다르다. 보통 읍·면으로 주소지가 넘어갈 경우 적게는 20%, 많게는 100%까지 할증이 붙는다. 순식간에 요금이 불어나는 만큼 경주처럼 논란이 된 곳도 더러 있다.

세종시가 하나의 사례다. 올 1월까지 오송역~세종청사(17.9㎞) 구간을 오가는 택시요금은 2만원 안팎이었다. 복합할증 35%에 청주에 속한 오송에서 다른 자치단체인 세종으로 진입해 발생하는 시계외할증 20%까지 적용되면서다. 하지만 이 근방에서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 세종시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이에 충북도와 청주시는 택시업계와 협의해 올 2월부터 복합할증을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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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주시는 별 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서 2012년 용역을 거쳐 이미 한차례 할증율 63%에서 55%로 낮췄다"라며 "복합할증은 다른 지역에서도 다 하고 있는 제도여서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올 2월 오송역~정부세종청사(어진동) 구간 택시요금이 기존 2만원 안팎에서 1만5000원 정도로 인하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올 2월 오송역~정부세종청사(어진동) 구간 택시요금이 기존 2만원 안팎에서 1만5000원 정도로 인하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하지만 시의 방관 아래 관광지 곳곳에서는 할증요금에 더해 바가지까지 덮어씌우는 행위도 간간히 보였다. 실제 한 외국인이 신경주역에서 택시기사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보문단지 근처 호텔로 가 달라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3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외국인이 "미터기 켜면 얼마에요?"라고 되묻자, "3만5000원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신경주역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은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해 "일부 택시기사들이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 같다"라며 "기사들끼리 서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교통행정과 측은 "단속을 하긴 하지만, 불법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관계가 파악돼야 처벌을 할 수 있어 신고가 들어오면 행정처분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경주의 경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복합할증요금제도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합할증제도는 농촌처럼 사람이 드문 지역으로 향하는 택시를 위한 제도지만, 신경주역과 관광지의 경우 어느정도 손님 수요가 있어서다.

반면 택시기사들은 제도를 바꾸기 전에 시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택시기사 김씨는 "경주 지진 이후에 손님이 50%정도 줄었다"라며 "관광객의 불만은 이해하지만, 어느정도 택시비가 보전되면 기사들도 할증제도 개편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주 경주시의회(더불어민주당·비례) 의원은 "택시기사와 관광객의 입장을 아우를 정책이 필요하다. 시 차원에서 택시비를 조정하거나 전체 대중교통을 정비하는 등 복합적인 교통대책을 세워야 한다. 실질적으로 택시 기사들에게 지원이 돌아가는 보조금 정책도 필요하다. 만약 일방적으로 택시비를 조정할 경우 시내에서 먼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이 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워져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주민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주=백경서 기자.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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