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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신(新) '20대 80의 사회', 가짜 직업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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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의 상용화, 우주왕복선 개발 추진 등으로 미래 사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일론 머스크 CEO [중앙포토]

자율주행차의 상용화, 우주왕복선 개발 추진 등으로 미래 사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일론 머스크 CEO [중앙포토]

“20대 80 사회가 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입니다. 미래 사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인물로 알려졌지요.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기도 합니다. 머스크는 올해 2월 두바이에서 열린 '월드 거버먼트 서밋(World Government Summit)'에서 “미래 사회에선 인공지능(AI)이 상용화돼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머스크 "AI 상용화돼 인간 20%만 의미 있는 직업" #옥스퍼드대 "2033년 현재 일자리 47% 사라져" #80%엔 기본소득 주며 '가짜직업' 부여할 수도 #AI와는 차별화된 인간의 본질, 고민해야

이 주장은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후엔 국내 일자리의 52%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런 '고위험' 직업군으로 운수업(81.3%), 판매업(81.1%), 금융·보험업(78.9%) 등이 꼽혔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윤석만의 인간혁명'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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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다보스포럼은 2020년까지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향후 2033년까지 현재 일자리의 47%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스즈키 다카히로는 자신의 책 『직업소멸』에서 “30년 후에는 대부분 인간이 일자리를 잃고 소일거리나 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일자리를 갖지 못할, 그 많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머스크는 “국가가 주는 기본소득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AI가 인간의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기술혁신에 따라 사회 전체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지면서 20%의 사람만 일해도 나머지 80%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이야깁니다.

 이미 몇몇 나라에선 기본소득이란 제도로 이런 실험을 하고 나섰죠. 지난해 스위스에선 정부가 매달 30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국민 다수(76.9%)가 반대해 도입이 무산됐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핀란드는 월 7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올 2월부터 시범 실시하고 있고요.

AI의 활성화로 미래의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중앙포토]

AI의 활성화로 미래의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중앙포토]

 언젠가 한국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면, 과연 즐거운 일일까요?
 물론 억지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줄면 인간은 더욱 자유로워질 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의미의 많은 부분을 ‘직업(job)'에서 찾아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장래 꿈을 물어보면 대다수가 직업을 답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죠.

 인류사에선 로마가 앞서 이런 경험을 했지요. 로마 제국이 확장되면서 식민지로부터 풍성한 재화와 끝없는 노예의 노동력이 로마로 유입됐습니다. 대부분의 로마 시민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회가 돌아갔지요. 일 대신에 향락과 사치에 몰두하는 일상이 번졌습니다. 로마는 찬란한 역사를 뒤로 한 채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로마 시대 검투사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한 장면. 드라마에 묘사된 로마는 향락과 사치에 빠진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OCN ]

로마 시대 검투사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한 장면. 드라마에 묘사된 로마는 향락과 사치에 빠진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OCN ]

 당장 내일부터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면, 그 많은 시간을 우린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할까요. 하고 싶던 취미 생활을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익힐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다수가 무기력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가짜 직업’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기본소득을 그냥 주지 않고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근로 형태의 직업을 수행하며 살아가도록 한다는 이야깁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책이 시행된 적 있죠.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정부는 ‘희망근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일정 소득을 보장해줬습니다. 미래의 ‘가짜 직업’은 이보다 더욱 다양해지긴 하겠지만 방식은 비슷합니다.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의 지구를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 [중앙포토]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의 지구를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 [중앙포토]

 어떤 가짜 직업들이 생겨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짜 직업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이 삶의 목적을 충족시켜주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럼 미래에 인간은 뭘 해야 할까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AI와 경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를 대비해 인간은 뭘 준비해야 할까요. AI와 차별화 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 삶의 행복과 목표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AI가 할 수 없는 일들, 더욱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들을 고민하게 될 겁니다. 이런 성찰의 시간이 충분치 않다면 인간 사회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20대 80의 미래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직업'(job)이 아닌 '일‘(work)'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에는 AI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것들이 담겨 있어야겠지요.
 여기서 ‘인간 고유의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인간 고유의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로 이어집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 기자는

 중앙일보 교육팀 소속인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에 관심을 갖고 관련 보도에 집중했다. 미래 사회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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