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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비에 언제까지 무릎 꿇어야 하나요 … ‘무릎 영상’ 엄마 “간절함 전해졌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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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난 5일 지역주민 앞에 무릎 꿇은 장민희씨. [중앙포토]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난 5일 지역주민 앞에 무릎 꿇은 장민희씨. [중앙포토]

“시간은 흐르는데 토론회는 조금도 진전이 없었어요. 간절한 마음을 사정하고 싶었어요. 저희가 뭘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뭐든 하고 싶었어요. 그때 ‘무릎이라도 꿇자’ 생각했어요.”

서울 강서 특수학교 토론회서 간청 #일부 주민 "쇼 말라" 야유했지만 #알고보니 장애 딸 이미 사회 진출 #장애인 가족 "다른 엄마 위해 호소" #15년간 서울 공립 특수학교 신설 ‘0’ #지역주민 집값 우려는 근거 약해

8일 장민희(46·여)씨는 지난 5일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확산 중인 ‘무릎 꿇는 장애인 엄마 영상’ 속 주인공이다. 영상엔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 토론회’가 담겼다. 장씨는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호소하다 지역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에 지역 주민 일부가 “쇼하지 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고 야유했다.

특수학교가 ‘우리’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이 영상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 부지에 지적장애인 140명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 설립을 2013년 이후 추진해 왔다. 주민들은 “한방병원이 들어와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주민 항의로 지난 7월 6일 1차 토론회가 무산됐다. 두 달 만에 열린 2차 토론회에서 영상 속 상황이 일어났다.

장씨는 비영리 단체인 ‘강서장애인 가족지원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장씨 딸은 지적장애 1급이다. 딸은 지난 2월 일반고를 졸업해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센터에서 교육받고 있다.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가 생겨도 장씨 딸이 다니진 않는다.

영상을 접한 장애인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졌다. 발달장애 아들을 둔 엄마 이수연(47)씨는 그중 하나다. 옛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가 생기면 이씨는 학부형이 될 수 있다. 이씨 아들은 구로구에 있는 두 시간 거리의 특수학교에 다닌다. 이씨는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 5일 토론회엔 오지 못했다.

“영상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어요.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싶어서요.”

이씨에 따르면 이날 장씨와 함께 무릎 꿇은 엄마 중 다수는 이미 자녀가 커 학교가 새로 생겨도 자녀를 보낼 처지가 아니라 한다. 이씨는 장씨 등의 행동에 대해 “학교가 생기면 아이를 보낼 엄마들 마음을 생각해 무릎까지 꿇고 주민들에게 호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릎’ 영상 이후 지난 7일부터 소셜미디어에선 강서구 특수학교 신설 지지 서명이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엄마들끼리 ‘이번에는 정말 지을 수 있는 거냐’는 기대를 갖게 됐다”고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이들의 소망대로 될지는 불투명하다. 옛 공진초 부지 외에도 서초구 옛 언남초 부지, 중랑구에 설립 예정인 ‘동진학교’ 부지도 이곳처럼 주민 반대에 직면해 있다. 이런 서울에선 지난 15년간 공립 특수 학교가 한 곳도 신설되지 못했다.

반대 주민 일부는 지역 땅값을 우려한다. 하지만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생각은 객관적 근거가 약하다. 교육부 의뢰로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가 지난해 4월 전국 167개 특수학교 주변의 부동산 가격 변화를 조사했다. 학교 주변을 인접 지역(반경 1㎞), 그보다 먼 지역(반경 1~2㎞ 거리)으로 나눠 10년간 부동산 가격 변화를 비교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2016년까지 특수학교 인접 지역 땅값은 연평균 4.34% 올랐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은 땅값 상승률이 4.29%였다. 통계적으로 매우 미미한 차이로 부동산 가격 변화에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해석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당연히 집값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변수의 영향이 많아 일반화할 수 없다”며 “지역 주민이 쓸 수 있는 공원이나 편의시설을 같이 만들면 오히려 매력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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