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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당구 사상 최고의 상금을 거머쥔 자네티

중앙일보

입력

이탈리아의 마르코 자네티가 한국의 홍진표를 40대19로 물리치고 2017 LG 유플러스 컵 3쿠션 마스터스의 챔피언이 됐다.

이탈리아의 마르코 자네티가 한국의 홍진표를 40대19로 물리치고 2017 LG 유플러스 컵 3쿠션 마스터스의 챔피언이 됐다.

준결승.마르코 자네티가 키스로 득점한 후 손을 들어 쿠드롱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있다.

준결승.마르코 자네티가 키스로 득점한 후 손을 들어 쿠드롱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있다.

“조만간 세계 3쿠션 당구는 한국 선수들이 석권할 것이다”
세계 3쿠션 당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 레이몽 클루망은 현재 3쿠션 세계 랭킹 순위 5~6위 정도에 머무는 한국 당구의 수준이 조만간 세계 상위 수준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8강전.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리스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 준결승에 진출한쿠드롱.

8강전.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리스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 준결승에 진출한쿠드롱.

 레이몽 클루망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 ‘조만간’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현재 세계 당구계 정상을 회전하며 점령하고 있는 이른바 4대 천왕 때문이다. 이 4대 천왕의 전성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4대 천왕 중 한명인 스웨덴의 토 비욘 브룸달은 “할 수만 있다면 남은 선수 생활을 한국에서 하고 싶다” 고 할 만큼 한국 당구계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8강전의 홍진표(오른쪽)와 2015년 이 대회 우승자 강동궁. 홍진표가 강동궁을 꺽고 4강에 진출했다.

8강전의 홍진표(오른쪽)와 2015년 이 대회 우승자 강동궁. 홍진표가 강동궁을 꺽고 4강에 진출했다.

8강전 브룸달과 이충복 선수.예선 전적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한 이충복은 4대 천왕 브룸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8강전 브룸달과 이충복 선수.예선 전적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한 이충복은 4대 천왕 브룸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4강전에서 맞붙은 브룸달과 홍진표.충청의 희망 홍진표가 4대 천왕 브룸달을 꺽고 결승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 맞붙은 브룸달과 홍진표.충청의 희망 홍진표가 4대 천왕 브룸달을 꺽고 결승에 진출했다.

  스페인은 한국보다 한 수 위의 당구 대회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 시스템의 혜택을 듬뿍 받아 10대 시절부터 남다른 당구 재능을 보인 또 다른 4대 천왕이자 현재 세계 3쿠션 당구 랭킹 1위인 스페인의 다니엘 산체스는 그를 키운 스페인의 당구 시스템보다 오히려 한국의 당구 시스템을 부러워한다. 산체스에게 전국 어디를 가도 쉽게 찾아 즐길 수 있는 우리의 당구장 문화는 놀라움 그 자체다.

 프로는 결국 동호인이라는 뿌리와 줄기에서 피어난 꽃이다. 동호인 문화가 강력한 뿌리로 작동해 자양분을 끌어올려 줄기로 보내 줘야 화려한 꽃이 피고, 수정되고, 열매를 맺는다. 그 자신이 당구계의 화려한 꽃이기도 한 산체스는 전문가답게 꽃보다 꽃을 피우는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산체스는 폐쇄적인 클럽 중심으로 운영되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당구 시스템보다, 아직 체계가 잡혀 있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상시 개방적인 한국형 당구 문화와, 아직 체계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국 당구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 다른 4대 천왕인 벨기에의 프레데릭 쿠드롱의 한국 사랑은 유별나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 여수경씨다. ‘쿠 서방’ 쿠드롱은 현재  웬만한 한국 선수보다 더 많은 한국 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계 당구 선수들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 당구 랭킹 1위 조재호 선수는 “쿠드롱의 샷을 모방해 집중적으로 반복 훈련했다. 그의 행동까지 따라할 정도였다”고 할 만큼 절정의 기량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쿠드롱의 부인 여수경씨(앞줄 가운데).

쿠드롱의 부인 여수경씨(앞줄 가운데).

  5일 개막한 ‘2017 LG+컵 3쿠션 마스터스 대회’가 8일 종료됐다. 3일간의 조별 예선리그를 거쳐 걸러진 8명이 토너먼트를 거친 끝에 자네티가 우승컵과 함께 세계 당구 역사상 최고의 우승 상금(8000만 원)의 주인이 되는 영광도 함께 누렸다.

8강 진출자는 세계랭킹 2위인 딕 야스퍼스와 3위 자네티, 4위 쿠드롱, 6위 브룸달, 7위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리스, 2016년 이 대회 우승자 이충복, 2015년 우승자 강동궁, 충청의 강자 홍진표 등 8명이었다. 세계 랭킹 1위 산체스와 5위 김행직, 기대를 모았던 국내 랭킹 1위 조재호 등은 예선 리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최근 대회 성적을 종합한 랭킹 순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랭킹이 경기 결과와 일치 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기록인 랭킹보다는 경기 당일의 컨디션, 당구대의 적응 여부, 그리고 경기 중 아주 사소한 우연 등이 승패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기량 차이는 사실 깻잎 한 장 두께보다 작다. 그러나 이 작은 차이가 누적돼 8강이 가려지고 우승자가 결정됐다. 한두 번의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경기가 계속될수록 깻잎 한 장의 차이가 생각처럼 작은 것은 아닌 것이 결과로 입증됐다. 레이몽 클루망의 예언처럼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의 시대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조만간’ 도래할 가능성으로 남았다. 그러나 누가 져도 당연하고, 누가 이겨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대회 내내 명승부가 이어졌다. 매 경기가 결승이라 해도 될 만큼 박진감이 넘쳤다. 누가 우승자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에는 현재 2만 4000여개의 당구장이 영업중이고 당구를 즐기는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 한해 당구장을 방문하는 연인원이 1억 200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아직 스포츠 시설이라고 하는 당구장 내 금연이 실시되지 않고 있고 그 동안 축적된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야 하는 점 등 당구 저변 확대나 당구 문화 발전을 위해 해결돼야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

남들이 잘하는 분야에 뒤늦게 참여해 기존 1등을 따라잡는 것이나 남이 선점한 시장에 뛰어 들어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분야에서 우리 몫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사업성이 있는 시장을 키우는 작업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시대가 됐다.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최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판을 키우고 있는 당구가 바로 그런 시장 중 하나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인 LG U+가 3년째 이 대회를 주최하면서  당구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 만 하다. 누가 알겠는가. 당구의 'LG U+컵 3쿠션 마스터스‘가 골프의 영국 'The Open'이나 테니스의 윔블던같은 위상을 가지게 될지. 일류들이 모이면 일류 시장이 된다. 세계 1위부터 8위까지 세계 톱 랭커와 베트남 당구 1인자, 국내 톱 랭커 7명이 대거 참가한 이번 대회는 그런 상식의 상징이다.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폐막식 인사에서 “당구 발전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성원해 나갈 것”이라며 2018년에도 계속 대회를 주최할 것을 시사했다. 어떤 분야든 세계 최고의 기량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내년에도 명품 대회가 계속될 것을 기대해 본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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