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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미안해요 강다니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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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월간중앙 기자

전수진월간중앙 기자

몰라봐서 미안했어요, 녤.

오타라고 지적한다면, 시류에 어두움을 인증하는 셈. 강다니엘의 수많은 애칭 중 하나가 녤이다. 그가 누구냐고 설마 물으시진 않겠지. 요즘 최강 대세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멤버다. 잘난 척 이렇게 얘기하는 나 역시 ‘위너윈의 대니얼 강이 누군데 이렇게 난리냐’고 물었던 흑역사가 있다.

개인적으론 녤 팬들이 더 매력적이다. 순도 100%의 그 팬심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모든 순간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어제 저녁 퇴근 버스에서도 그랬다. 승객들 모두 ‘건드리면 찔러 버린다’식 고슴도치 포스를 풍기는데 유독 독야청청 해맑은 표정으로 웃는 여성이 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휴대전화 액정에선 녤이 웃고 있었다.

녤 팬뿐이랴. 누군가에게, 무엇에, 어딘가에 빠져 ‘덕질’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체력과 돈을 요하는 업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에 빠진다는 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다. 인생은 어차피 시끄러운 헛소동이다. 어제의 굴욕이 오늘의 영광이 됐다가 내일의 희망 또는 절망이 된다. 어찌 되든 부질없고 덧없는 건 매한가지다. 호랑이는 죽으면 만질 수 있는 가죽이라도 남기는데 인간은 뭔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는 “태어나서 미안합니다”라고 적었지만, 다자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최근 유명을 달리한 마광수 작가도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괴로울 수가 없네”라고 읊었다.

이왕 태어난 거, 즐겁게 살아야 이긴다. 열심히 살아서 이름이라도 남기라고 강요하는 어이없는 세상에서, 덕질은 한줄기 빛이 돼 준다. 덕질 한 번 안 해 봤다고 자랑하지 말라. 그는 자기애로 똘똘 뭉쳐 있거나, 지독하게 시니컬하거나, 인생이 통 재미가 없다는 사람일 거다. 지난 8월, 12시간을 날아와 서울 지방경찰청사 앞에서 자기가 덕질하는 한국 가수의 제대 현장을 지켜본 중동 국가의 여성 팬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보다, 쓰고 있는 나보다 행복했을 터다. 『퇴사준비생의 도쿄』라는 책의 걸그룹 AKB48 사례에서 보듯 덕질은 훌륭한 비즈니스 기회까지 제공해 준다. 그러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녤 덕후들에게 손가락질하지 말자. 그 시간에 당신의 녤부터 찾을 일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