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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지금 미국의 초점은 군사보다 외교·경제적 옵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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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 대리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대리는 북한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미국대사관에서 워싱턴의 대북정책을 집행하고 한·미 동맹을 조율하는 중견 외교관이다. 북한의 여섯 번째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지수가 피크에 도달한 시점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인이 가장 걱정하는 ‘전쟁 가능성’부터 궁합이 잘 맞아보이지 않는 문재인-트럼프 두 정상의 ‘케미’까지 궁금한 것들을 50분간 물어봤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 만족해 #동맹의 훌륭한 관리자 입증 #트럼프와 통화, 양 대신 질 #10월 2차 한·미 정상회담 기대 #전술핵과 핵무장 모두 불필요 #한국은 미국 방위의지 믿어야 #“북한, 이산가족 상봉 응해야” #핵실험과 인도주의는 별개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대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틸러슨 신임 미 국무장관이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미국이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분명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대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틸러슨 신임 미 국무장관이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미국이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분명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순간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가정적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 다만 주한미군에는 ‘오늘 밤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표현이 있다. 이는 동맹으로서 북한의 위협을 늘 억제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방한한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은 ‘우리는 전쟁을 할 만반의 채비를 갖췄지만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전쟁을 해야 한다면 미국은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만일 북한이 싸움을 걸어 오면 미국은 동맹(한국)과 미국의 방위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쟁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지금 우리의 초점은 외교적 노력과 경제적 압박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 제재는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는 제대로 된 ‘세컨더리 보이콧’을 할 것인가.
“그렇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리비아에서도 북한과 불법 거래한 기업들을 적발했다. 앞으로도 유엔 제재를 위반한 회사를 찾아내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사드가 429일 만에 겨우 배치됐다. 한국 정부가 비협조적이었다고 보지 않는가.
“그에 대해선 여러 시각과 의견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방부, 경찰과 환경부 등 여러 부처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안이었는데 한·미 간에 공조가 잘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8일 북한의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사드 추가 배치라는 중요하고도 강력한 결단을 내렸다. 이를 평가한다.”
문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까 봐 우려한 탓 아닌가.
“나는 대통령의 심리를 모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우리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 그는 한·미 관계 강화와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특히 취임 수주 만에 가장 먼저 미국을 방문한 점을 환영한다. 그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도 동맹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맹의 훌륭한 관리자임을 입증한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나? 외교적 수사가 아닌가.
“취임 직후 가장 먼저 미국을 찾은 것부터 그렇다. 또 서울을 찾은 미국 의원단이나 던퍼드 합참의장 등을 다 만나준 것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바쁜 분 아닌가.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가 청와대에 들어갈 때마다 ‘또 뵙네요’ 하시더라. 이것만 봐도 그가 동맹에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동맹에 보여준 관심에 감사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 횟수는 트럼프와 아베 총리의 그것에 비해 너무 적다.
“횟수보다는 통화의 내용과 질이 중요하다. 정상들이 통화하면 동맹을 강화하고 대북 억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합의들이 도출된다. 양보다는 질이다.”
질도 문제가 많다. 45분간의 통화 중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는 해봤느냐’는 한마디만 했다는 소문이 도는데.
“정상들의 통화가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장관 등 실무진에선 매일 모든 레벨에서 전화나 문자로 대화한다.”
정의용 실장과 강경화 장관은 실권 없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난 아주 인상적인 이들과 일하고 있다. 이해력이 깊고 열정적인 분들이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전술핵 재배치 옵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있다는 걸 안다. 나는 한국 정치인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 그중엔 그런 주장을 한 중진 정치인들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북핵을 막는 최선의 방안은 전술핵 재배치가 아니라 미국의 확장된 억제력이라 믿는다. 게다가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다. 재배치는 그런 목표를 오도할 수 있다.”
한국도 핵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은 미국과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강력한 구성원이고 핵무기 증가가 아니라 감축에 노력하는 국가다. 핵무장은 그런 한국의 모든 입장에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 국가가 된 마당에 한국도 핵으로 무장해 동북아의 이스라엘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이 (동북아의) 이스라엘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분명한 대북 억지 의지를 보일 때다. 핵무기를 도입해 사안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한국 방위 공약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은 진심으로 한국을 지킬 의지가 있다.”
국회를 방문해 “한국은 주도적 역할(the leading role)이 아니라 하나의 역할(a leading role)을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 운전석론’을 일축한 것인가.
“좋은 질문을 해줘 고맙다. 다소 오해가 있었다. 내가 그 발언을 통해 말하고자 한 포인트는 이것이다. 즉 한·미는 이해와 책임을 공유하는 하나의 동맹인데, ‘the leading role’이란 표현은 한국이 홀로 간다는 뜻으로 들렸다. 북핵을 막는 것은 한·미가 같이해야 한다. 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며 한국도 미국도 그 속에서 각각 하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한·미는 같은 페이지에 있으며 양국 사이엔 빛이 샐 틈 하나 없다고 행동과 성명을 통해 분명히 밝혔다. 곧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뉴욕 유엔총회 기간 중 양자회담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70%가 한·미 동맹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가 최근 나왔는데 의미가 크다. 민주국가에선 국민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러니 많은 미국인이 동맹을 지지한다는 건 정말로 큰 의미를 지닌다. 지난봄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였다. 참전용사의 아들이 딸을 데리고 서울에 왔다. 그 메시지는 한·미 동맹은 대대로 이어지는 굳건한 동맹이란 것이다. 내게도 한·미 동맹은 특별하다. 아버지가 1980년대 한국에서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미 해병이었다. 또 내 아들 앨릭스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요즘은 탈북자를 위해 영어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동맹은 특정한 상황이나 개인에 의해 축소되지 않고 정파를 초월해 존속한다.”
그런데 왜 트럼프 대통령이 ‘유화책(appeasement)’이란 말까지 쓰며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트위터를 날렸나.
“대통령의 트위터를 내가 분석하지는 않겠다. 내게 진짜 의문은 왜 북한이 문 대통령의 인도적인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응답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이슈가 아니다. 내가 2000년 한국에 근무할 때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외국인인 내게도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북한의 무응답이 실망스럽다. 왜 북한은 이산가족들을 이렇게 계속 갈라놓고 있는가? 이들이 상봉할 방안을 인도적으로 찾는 것이 이슈다.”
핵실험 와중에도 이산가족 상봉을 해야 하나.
“이건 정치적 이슈가 아닌 인도주의 이슈다. 미국은 정치와 인도주의 이슈를 늘 분리해 다뤄 왔다. 이산가족들의 고령을 감안하면 상봉은 큰 의미가 있다. 북한이 왜 이런 기본적인 인도적 조치에 응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시 한번 묻는다. 동맹이 그렇게 좋은 상태라면 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트위터를 날렸나.
“그 뒤 이어진 한·미 정상 통화를 보면 양국이 한 페이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최대한 북한을 압박할 필요성에 두 정상이 동의하지 않았나.”
그 통화 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무기 구입을 승인했다”고 밝혔는데 한국 정부는 “그런 언급이 없었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이유가 뭔가.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한·미는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고 동맹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를 늘 해왔다. (무기 구입 언급은) 전작권 이양의 일환으로 논의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폐기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와 한국을 경악시켰다.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임을 지적한다. 그보다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5일 한·미 FTA에 약간의 개정을 가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주목하기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교역환경이 보다 공정하게 되는 것에 관심이 있다.” 
한국인들은 진심으로 전쟁을 걱정한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초점은 군사 옵션이 아니고 외교·경제적 옵션이다. 전쟁이 나면 그 결과가 얼마나 재앙적일지에 대해 우리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다만 북한의 어떤 위협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을 지킬 준비가 돼 있을 뿐이다.”
미국이 전쟁 대신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으로 북핵을 정리하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것으로 한국인들은 걱정한다.
“그럴 일 없다. 지금 한·미 동맹은 역대 최강 상태다. 미군 철수는 전혀 거론되거나 논의되는 바 없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조건으로 북한과 딜을 한다는 방안도 전혀 논의된 바 없다.” 

내퍼는 …

42세. 한국과 인연이 깊은 지한파 미국 외교관이다. 2015년부터 주한 미 대사관 차석공사로 재직하다가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이임하면서 8개월째 대사대리를 맡아 왔다. 프린스턴대를 나온 뒤 1993~95년, 97~2001년 서울 미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하는 등 한반도 전반의 경험이 풍부하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