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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나는 '꿈꾸는 단역배우' 박신혜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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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 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 14명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당신은 왜 일하는가' 열네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단역배우 박신혜 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난생 처음하는 인터뷰였다. 떨린다고, 사진기자 앞에 서는 것이 처음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연극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서울 대학로 소극장 파랑씨어터에서 만난 박신혜(사진)씨는 촬영을 허락해준 극장 분들에게 연신 머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우상조 기자

난생 처음하는 인터뷰였다. 떨린다고, 사진기자 앞에 서는 것이 처음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연극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서울 대학로 소극장 파랑씨어터에서 만난 박신혜(사진)씨는 촬영을 허락해준 극장 분들에게 연신 머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우상조 기자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엔 고민했어요. 방송도 되는데, 이거 전국에 ‘나 잘 못 나가는 배우예요’하고 광고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출연 섭외가 들어왔을 때 박신혜(34) 씨는 주저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 연기자들이 나오는 곳인데 한 번 나가보자’하고 마음먹었다. 지난 5월 박 씨는 32명의 동료 단역배우와 함께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공연 무대에 섰다. 다 같이 가수 서영은의 ‘꿈을 꾸다’를 불렀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노래하는 그의 모습 뒤로 자막 한 줄이 떠올랐다. 영화 ‘아가씨’ 중 정신병원 간호사2역 박신혜. 그렇다. 그는 ‘꿈꾸는’ 단역배우다.

사진 촬영을 하는 사이 저녁 공연을 앞둔 배우들이 무대를 오가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매일 하는 공연이지만 배우들은꼬박두세시간 무대를 오가며 몸을 풀고, 발성 연습을 하고, 분위기를 몸에 각인시킨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신혜(사진) 씨는 그런 그들과 그들이 서는 이 무대가 너무 그립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사진 촬영을 하는 사이 저녁 공연을 앞둔 배우들이 무대를 오가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매일 하는 공연이지만 배우들은꼬박두세시간 무대를 오가며 몸을 풀고, 발성 연습을 하고, 분위기를 몸에 각인시킨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신혜(사진) 씨는 그런 그들과 그들이 서는 이 무대가 너무 그립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나는 꿈을 꾼다

지난달 19일 대학로 파랑씨어터에서 박신혜 씨를 만났다. 그는 “난생 처음 해보는 인터뷰”라고 멋쩍게 웃었다. 백상예술대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이 참석하는 시상식. 출연에 앞서 하얀색 천막 대기실에서 분장을 하는데 한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유명 배우들을 보였단다. 그는 “기왕 시작한 것 나도 저기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신혜 씨는 전남 순천에서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다. “나도 TV에 나오는 사람이 될 거야.” 아역 배우가 TV에 나오면 질투가 날 정도로 배우가 되고팠다. 고등학생이 되며 여수에 있는 청소년극단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꿈을 키웠다. 순천에서 여수까지는 버스로 한시간 거리였지만 ‘열혈 배우지망생’은 마다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과 함께 상경했다. ‘어머님 전상서’라는 악극 출연자를 뽑는다는 서울 친구 전화가 계기가 됐다. 무작정 짐을 싸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님 전상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화대를 받는 직업여성. 뜻도 모르는 대사를 받아 외웠다. 꼬박 두 달을 연습하고 이틀 공연을 했다. 출연료는 10만원. 하지만 프로무대에 데뷔했다고 생각하니 뛸 듯이 기뻤다. 이후 친구집을 전전하며 계속 연극무대에 섰다.

“하루에 한끼 먹기도 힘들 때였는데, 모든 일에 꿋꿋했던 것 같아요. 한달에 30만원 하는 월세만 내면, 연기하고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긍정적이었던 거죠. 일이 있으니까.”

극장의 분장실은 언제나 비좁다. 극장 특유의 냄새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좁은 공간에서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고 각자 맡은 역의 얼굴로 자신을 바꾼다. 우상조 기자

극장의 분장실은 언제나 비좁다. 극장 특유의 냄새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좁은 공간에서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고 각자 맡은 역의 얼굴로 자신을 바꾼다. 우상조 기자

사라지는 친구들, 그리고 ‘배우 맛’

꿈은 달콤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가난이 하나씩 꿈을 앗아갔다. 배우를 꿈꾸던 친구들은 하나씩 밥벌이를 위해 꿈을 내려놨다. 먹고 사는 문제는 우정도 갈라놨다. 친구와 함께 살던 원룸에 도둑이 들었다. 하필 같이 살던 친구가 새로 산 노트PC가 사라졌다. 친구는 그를 의심했다. 짐을 꾸렸다. 눈물이 났다.

이후로도 연기하던 친구들은 하나 둘 직장을 갖기 시작했다. 결혼도 했다. 그는 '절친'이 결혼을 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저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요.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요. 걱정해주는 거죠. 밥벌이가 안 되니까요. 작품하고 한 달에 30만원만 벌기도 쉽지 않으니 걱정할 만하죠.”

많은 배우들은 그래서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도 그렇다. 안 해본 일이 없다. 수입이 한달에 700만원이나 되는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하지만 그 돈을 벌자면 연기할 시간을 내려놓아야 해 그만뒀다. “저는 제가 게을러서 연기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안정을 찾으려고 열심히 살다보면 배우를 못 해요. 저는 최소한 생활할 수 있는 만큼만 벌고 배우하고 싶거든요. ‘배우맛’을 봐서 그런가봐요.”

무대에서 대사를 할 때 ‘훅’ 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 무대에 서야만 볼 수 있는 관객의 표정과 눈빛. 무대에 서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 그런게 ‘배우 맛’이다. 무대에 서야만 맡을 수 있는 냄새, 찌든 땀냄새 가득한 분장실. 그걸 계속 느끼고 싶어 배우를 한다. 배우는 그러니까 일종의 ‘마약’같은 직업이다.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꿔왔다. 학창시절 극단에 들어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섰다. 그렇게 십 수년을 보내는 사이 같이 연기하던 친구들이 생활고 탓에 하나둘씩무대를 떠났다. 박신혜(사진) 씨 뒤로 보이는 좁은 길을 나서면 관객과 마주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 우상조 기자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꿔왔다. 학창시절 극단에 들어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섰다. 그렇게 십 수년을 보내는 사이 같이 연기하던 친구들이 생활고 탓에 하나둘씩무대를 떠났다. 박신혜(사진) 씨 뒤로 보이는 좁은 길을 나서면 관객과 마주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 우상조 기자


옥희와 엄마
2014년의 일이다. 한참 추운 12월. 코믹극 ‘가정부 옥희님’ 공연을 할 때였다. 그가 주인공 옥희를 맡았다.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뇌출혈로 쓰러져 6개월 째 입원 중이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거였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한테 가봐야 하는데, 연극을 해야 한다. 배우라면 관객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동료에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코믹극을 재미있게 못할 것 같아 극이 끝나도록 입 밖에내질 않았다.

박신혜 씨는 자신의 출연일정을 다 마치고서야 순천으로 향했다. 다행히 장례식 마지막 날은 지킬 수 있었다. 발인하는 날 내려온 딸을, 아버지와 오빠는 타박하지 않았다. 장례식을 마치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거 해서 행복하냐. 그럼 됐다.”  꼭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을까라는 질문에 박신혜 씨는 이렇게 답했다. “연극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무대에 서면서 관객과의 약속이 먼저라고 배워서 그랬다”고.

“엄마는 선생님이셨어요. 어릴 때부터 배우하겠다는 제게 단 한 번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으셨어요. ‘너는 특별한 아이다. 재능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해주셨어요. 엄마에게 공연하는 것을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해서 속상해요.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간호사2로 출연한 박신혜씨. 대사 한 줄 없는 단역이었지만 '혹시' 대사를 하게 될까 일본어를 공부했다. [사진 박신혜 씨]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간호사2로 출연한 박신혜씨. 대사 한 줄 없는 단역이었지만 '혹시' 대사를 하게 될까 일본어를 공부했다. [사진 박신혜 씨]


아가씨,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꿈

“TV에 언제 나와?”
고향 친구들은 종종 물었다. 그럴 때마다 답했다. “나 그런데 나가려고 연극하는 거 아닌데? 연극배우 하려고 하는 건데?” 자존심이었다. 배우로서의 ‘나’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자존심. 하지만 배우로 생업을 유지하는 게,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3~4년 전부터는 영화·드라마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이른바 ‘매체연기’에 도전한 것이다.

영화 ‘아가씨’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박찬욱 감독 작품’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목욕탕 장면, 마녀 역 대사를 받고 연습을 했다. 같이 연습하는 동료가 물었다. “너 벗을 수 있어?” 목욕탕인데, 어떻게 하나. 고민 끝에 ‘벗으라면 벗어야지’ 생각하고 일부러 단추달린 옷을 입고 갔다. 오디션 장에는 인물조감독과 카메라감독 뿐이었는데 괜히 일부러 ‘오버’를 했다. 그만큼 절실했다는 이야기다.

2015년 4월, 20분만에 오디션을 마치고 그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촬영을 했다. “근데 제가 약간 코미디같은 인생을 사나봐요. 오디션 때 옷을 벗니 마니 고민했는데, 정작 촬영 땐 발목까지 다 내려오는, 꼭꼭 싸맨 간호사복을 입었다니까요. 저 정말 웃기죠!”

정식 대사는 한 마디도 없는데 일본어 공부도 했다. 일제시대가 배경인 영화니 혹 몰라서. 실제 병원에 불이 난 장면을 찍으며 ‘나니고레(何これ, 이게 뭐야?’란 외마디 대사를 했다. 비록 자막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그 장면을 찍을 때 일본어 발음이 안 좋게 들릴까봐 일부러 기침을 많이 하고 대사를 했다. 영화는 개봉 후 고향에 내려가 혼자 몰래 봤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개발 전기환·원나연 hykim@joongang.co.kr

나이 서른셋에 고교 일진 '핑키'역을 연기했다. 2015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에서였다. 박신혜 씨는 "언젠가 꼭 기회가 된다면 강 감독을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사진 박신혜 씨]

나이 서른셋에 고교 일진 '핑키'역을 연기했다. 2015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에서였다. 박신혜 씨는 "언젠가 꼭 기회가 된다면 강 감독을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사진 박신혜 씨]

나는 왜 일하는가

박신혜씨는 올해로 95세인 할머니께 자주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박신혜씨는 올해로 95세인 할머니께 자주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백상예술대상 이후로 오디션을 세 번 봤다. 모두 미끄러졌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수 김윤아의 ‘꿈’이라는 노래를 무한 재생시켜놓고 들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 기대어 울 곳 /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이 일을 포기하는 것이 더 힘드니까. 요즘은 재봉틀을 배울까 생각도 한다.

“배우가 30대 후반이 넘어가면 부업을 하기 시작해요. 그래야 배우로 버틸 수 있으니까요. 배우의 일, 이 단역은 제게 힘이 되고, 저를 또 초라하게 만들기도 해요. 괴롭기도 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단역이라도 저에게 기쁨이 되고 희열을 주고, 살아가는 의미가 되거든요.”

박신혜씨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한다. 연극무대 15년차의 연기공부는 일견 비장하기도 하다.

저는 꿈이 있어요.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거에요. 특별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우리 곁에 있는 이모같고 고모같은 그런 친숙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께 의지를 많이 해요. 올해 우리 할머니 연세가 95세시거든요. TV에 나오면 할머니가 이렇게 말해요. ‘야아, 저거 우리 신혜 아니당가? 우리 신혜가 저러고 뚱뚱허냐. 아니다. 우리 신혜 아니다’라고요. 그래서 할머니가 저 좀 알아보고, 기뻐하시도록 TV에서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꿈을 쫓아 사는 것은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잊고 살고, 더러는 가슴에 꼭 부여잡고 사는 꿈 말이다. 박신혜(사진) 씨는 오늘도 꿈을 꾼다. 우리 사는 모습을 편안히 보여주는 배우가 되는 꿈이다. 우상조 기자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꿈을 쫓아 사는 것은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잊고 살고, 더러는 가슴에 꼭 부여잡고 사는 꿈 말이다. 박신혜(사진) 씨는 오늘도 꿈을 꾼다. 우리 사는 모습을 편안히 보여주는 배우가 되는 꿈이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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