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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꼬리표 ‘음란문서 제조죄’ 2000년 10월 이후 처벌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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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문서제조죄(형법 제244조). 마광수(66)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금서(禁書) 교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던 것은 1953년에 형법이 처음 시행될 때부터 있었던 이 죄목 때문이었다. 저서 『즐거운 사라』로 외설 시비에 휘말린 마 교수가 1992년 이 죄목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전통적 성 관념’과 ‘표현의 자유’가 정면 충돌한 세기의 재판이 3년간 계속됐다. 1995년 대법원이 내린 결론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였다.

'표현의 자유' 확대로 사실상 사문화 #대법원, 2008년 '음란성' 새 기준 제시 #'천국의 신화' 이현세 6년 만에 무죄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 김경빈 기자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 김경빈 기자

당시 수사와 기소는 심재륜(전 부산고검장) 서울지검 3차장의 지휘 아래 김진태(전 검찰총장) 검사가 맡았고, 마 전 교수의 변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한승헌(전 감사원장) 변호사가 맡았다.

대법원은 “음란한 문서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며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ㆍ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ㆍ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볼 때 『즐거운 사라』는 이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대법원의 결론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마광수 전 교수의 '즐거운 사라'(1991). 마 전 교수는 해당 소설이 음란문서라는 이유로 구속됐다. [중앙포토]

마광수 전 교수의 '즐거운 사라'(1991). 마 전 교수는 해당 소설이 음란문서라는 이유로 구속됐다. [중앙포토]

한 변호사는“대법원의 해당 판결은 1951년에 나온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를 그대로 베낀 것인데, 최소 40년 전 성풍속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 전 고검장은 2012년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도“(책을 읽고 든 ) 두 가지 느낌은 ‘정말 이런 것을 문학이라 해야 하는가’ ‘이런 글을 써대는 사람이 과연 국내 명문대 교수로서 남을 가르치고 지도해도 괜찮은 것인가’였다”고 회고했다.

마 전 교수를 옭아맨 ‘음란죄’의 수명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사실상 끝났다. 문화는 성적 표현의 수위를 형법으로 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개방됐고 인터넷을 통해 ‘진짜’음란 영상물이 홍수를 이루면서 ‘소설’의 내용이 음란하냐는 더 이상 논란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죄 판결을 받아 연세대에서 직위 해제된 마 전 교수에 대해 구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포토]

유죄 판결을 받아 연세대에서 직위 해제된 마 전 교수에 대해 구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포토]

어떤 소설이‘음란 문서’냐에 대한 마지막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은 소설가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였다. 30대 유부남 작가가 서울과 여러 도시에서 18세의 여고생과 성행위를 벌이는 내용을 담은 이 책 때문에 장씨는 마 전 교수와 같은 혐의로 1997년에 기소됐다. 대법원은 2000년 10월에 장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확정했다.

소설가 장정일씨가 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표지.

소설가 장정일씨가 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표지.

장씨의 변호를 맡았던 강금실 변호사(전 법무부 장관)는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학문ㆍ예술의 자유에 따라 보호받아야 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소설의 주제와 우리 사회의 보다 개방된 성 관념에 비춰보더라도 음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장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이 ‘음란성’의 기준을 바꾼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성적 행위를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렸다가 기소된 김모씨에 대한 재판에서 대법원은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음란성’의 기준을 구체화했다. 재판부는 ‘음란’을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으로서 ▶️사회통념에 비춰 전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 가치 등을 지니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사실상 예술이냐 외설이냐가 논란이 되는 정도의 표현을 더 이상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장씨와 비슷한 시기에 표현의 음란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만화가 이현세씨에게 적용됐던 건 ‘음란문서제조죄’가 아닌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혐의였다. 1998년 2월 만화 『천국의 신화』가 미성년자보호법상 금지된 ‘불량만화’라는 이유로 기소된 이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해 6년간 법정 투쟁을 벌였다.

이현세씨의 만화 '천국의 신화'. [중앙포토]

이현세씨의 만화 '천국의 신화'. [중앙포토]

결론은 헌법재판소에서 났다. 2002년 헌재는 “지금은 청소년보호법으로 통합된 옛 미성년자 보호법의 ‘불량만화’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며 위헌 결정을 했고 이에 따라 2003년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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