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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청소년들 끔찍한 폭력 저지르고 죄의식 못 느끼는 게 제일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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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상구의 여중생이 또래 학생을 폭행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중앙포토]

부산 사상구의 여중생이 또래 학생을 폭행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중앙포토]

부산 여중생 등 청소년들의 폭행 사건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해 청소년 전문가들은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피해자, 심리학자, 교사 얘기 들어보니 #"남 때리고 자기 화 푸는 외향성 분노 깊어져" #"가해자 부모가 감싸면 반성할 기회 잃어" #피해자들 "폭력은 잘못이라고 분명히 알려줘야" #"청소년 흉악범죄와 학교폭력 구별해야" 지적도 #교사들 "경찰이 사건 초기에 개입해달라" 주문

중앙일보는 갈수록 잔혹성을 더해가는 학교 폭력에 대해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 전문 변호사, 심리학과 교수, 교사 등 8명의 진단과 분석을 7일 들어봤다.  2011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권군 어머니 임지영씨, 이광재 호서대 심리학과 교수, 차민희 푸른나무청예단 상담지원팀장, 조정실 학교 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회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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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학교폭력이 이전보다 교묘해지고 잔혹해졌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이광재 호서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범죄가 잔혹해지는 이유로 '죄의식 부재(不在)'를 들었다. 그는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에서의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청소년들에게서 '외향형 분노 성향'이 강해졌다. 남을 때려 자신의 화를 풀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자기 분노를 합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에선 가해 학생이 죄의식을 느끼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회장은 “가해 학생 부모들은 자식의 대학 진학 등 미래에 문제가 생길까 봐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면 가해 학생은 전혀 반성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조 회장은 “폭력은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진정한 교화와 선도가 이뤄질 수 있다. 잘못했다면 그에 걸맞은 처벌을 받고 그 행동이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학생이 반성할 기회를 뺏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에 아들을 잃은 임지영씨는 부산 여중생 사건과 관련해 "가해 학생들이 “어차피 감옥에 들어갈 거 더 때리자”는 얘기를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 기가 찼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이라고 해서 처벌하지 않으면 잘못이라는 죄의식을 더더욱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교폭력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교묘해지는 점도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를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차민희 푸른나무청예단 상담지원팀장은 “신체·언어폭력 외에도 사이버 폭력, 성폭력 등 보이지 않는 교묘한 폭력이 늘었다. 심리적 괴롭힘이나 성폭력은 교사나 부모는 쉽게 발견할 수 없고 증거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편 최근의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보는 게 맞느냐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일반적인 학교폭력에 비교화면 최근 보도된 사건들은 강력 청소년 범죄인 만큼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수민 전 서울시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는 “부산이나 강릉에서 일어난 사건은 일반 학교에서 자주 발생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번 같은 특수한 사례에 대한 경각심에서 청소년 범죄에 대해 엄벌주의 움직임이 나오지만 이를 학교폭력에 그대로 적용하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학폭위라는 제도의 목적은 교육과 선도”라고 말하며 “당장 경찰이 개입해 사법처리 하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사들 중 일부는 학교폭력 사건의 조사·처리에 학교보다 경찰이 먼저 나설 것을 주문한다. 김포 대곶중 양성배 생활안전지원 부장 교사은 “경찰이 사건 초기에 개입하는 게 낫다. 교사나 비전문가가 사건을 조사하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양측 모두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권군 어머니 임씨 역시 학교 내 기구인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교장 권한 아래 있고, 교장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는 경우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씨는 “현재 사소한 사건은 담임 교사가 종결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 재량권으로 큰 사건도 덮으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학교와 중립적인 기구를 두거나 미국처럼 경찰이 개입해 일반 법 적용을 받게 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중학교에 생활안전부장 김모 교사는 “학부모들이 학폭위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피해 학생 측과 처벌이 과하다는 가해 학생 사이에서 교사들은 '낀' 신세가 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재심이나 법적 분쟁까지 이어지면 교사는 수업은 다 포기하는 지경까지 간다”며 "학교보다는 교육청 단위에서 폭력자치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전문적이고 공적인 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차민희 푸른나무청예단 상담지원팀장은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상담 확대를 기대했다. 김포 대곶중 양 교사도 “상담 인력을 늘리고 학교가 교육청이나 외부에서도 상담교사를 적극 지원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윤·전민희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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