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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27) 꼴찌가 돌아왔다 : 디젤은 억울해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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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015년 9월 터진 '폭스바겐 게이트'의 여파는 순식간에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 번져 '디젤 게이트'가 됐다. 특정 브랜드의 문제로 여겨졌던 문제가 '디젤 엔진' 전반의 문제로 커졌고, 환경오염은 디젤의 '종특('종족 특성'이라는 게임 용어에서 비롯된 말)'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디혐(디젤+혐오)'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지 어느덧 2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딱지는 여전히 떼어지지 않았다. 디젤 차량 운전자들도 찜찜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분명 차를 살 때엔 환경부가 저공해 차량이라며 스티커도 발부해주고 각종 혜택들도 줬었는데 말이다.

2015년 9월, 폭스바겐 게이트로 시작된 사건은 순식간에 디젤 게이트로 확산됐다. [중앙포토]

2015년 9월, 폭스바겐 게이트로 시작된 사건은 순식간에 디젤 게이트로 확산됐다. [중앙포토]

카레이싱에 처음 입문한 것은 2015년. 디젤 차량과 함께였다. 그렇게 디젤 차량으로 서킷을 누빈지 3년째에 접어드니 서킷에서도 디젤의 억울함이 존재했다. 무엇이 그렇게 디젤을 억울하게 만들었을까.

[느린 디젤로 무슨 카레이싱이냐]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디젤 차량과 함께 서킷을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아마도 "답답한 디젤로 무슨 서킷이냐"는 핀잔일 것이다. 아무래도 동급 가솔린 엔진 대비 무게가 더 나갈 뿐더러 마력은 더 낮기 때문일 터. 일부는 "RPM도 얼마 올리지 못 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냐"고도 지적한다.

"일단 달려봐"

이러한 핀잔·지적에 내놓는 답이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달려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몇몇 사진과 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오랜기간 내구레이스 무대를 주름잡았던 아우디의 R18 경주차. [사진 아우디]

오랜기간 내구레이스 무대를 주름잡았던 아우디의 R18 경주차. [사진 아우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내구레이스를 주름잡은 아우디의 R18 레이스카다. 2011년, 3.7리터 6기통 디젤엔진을 장착한 R18은 데뷔 첫해부터 6년간 47경기에 출전해 18승을 거뒀다. R18은 532마력의 디젤 엔진으로 시작해 전기모터를 더해 출력을 점차 키워갔다. 물론 R18의 성공에 빛이 가렸을 뿐, 아우디는 앞서 2009년과 2010년에도 5.5리터 10기통 디젤엔진의 R15로 10경기 출전에 3회 우승, 1회 폴포지션, 2회 최단 랩타임 기록이라는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짧게는 3~6시간, 길게는 24시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내구레이스에서의 성공은 디젤 엔진이 퍼포먼스뿐 아니라 내구성에 있어서도 가솔린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다임러]

[사진 다임러]

이뿐만이 아니다. 디젤을 찾아보기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 같은 미국에서도 디젤 레이스카가 각종 대회에 나서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디젤 차량을 이용한 모터스포츠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디젤이 정말 느리다고?]

슈퍼챌린지의 디젤 타임트라이얼 클래스인 '챌린지 D' 경기 장면.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슈퍼챌린지의 디젤 타임트라이얼 클래스인 '챌린지 D' 경기 장면.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2리터급 디젤 차량의 경우 대체로 200마력 안팎의 출력과 40kg.m 안팎의 토크를 보인다. 국산차·수입차간 구동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출력 만큼은 과거와 달리 엇비슷하거나 국산차가 더 앞서는 상황. 충분히 빠르고, 즐거운 스포츠 드라이빙이 가능한 수준이다.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1분 58초. 지난 8월,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2017 엑스타 슈퍼챌린지 3라운드의 디젤 부문 경기에서 포디움에 오른 이들의 랩타임이다. 무더위 속에 진행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선수들은 이러한 우수한 기록을 선보였다.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이나 모든 모터스포츠인들이 베랩 달성에 매달리는 '동계 시즌'엔 이보다 더 빠른 랩타임이 기대된다. 랩타임 단축은 결국 무게, 열과의 싸움인 만큼 동계 시즌은 개인 베스트랩 달성의 최적기다. 이 시기, 2리터 디젤 승용차가 1분 55초의 랩타임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 더베스트랩 홈페이지]

[사진 더베스트랩 홈페이지]

소위 '2분 언더'로 불리는 이 기록대엔 어떤 차량들이 있을까. 서킷을 주행하고, 자신의 랩타임을 공유할 수 있는 웹사이트 '더베스트랩'의 기록을 살펴봤다. 도요타 86, 현대 제네시스 쿠페 2.0T, 아우디 TT S 등 소위 '잘 달리는 차'라고 불리는 가솔린 차량들이 즐비해있다. '1분 55초 언저리'를 살펴보면 BMW 1M, M3, M4와 메르세데스 AMG의 A45 등 고성능 차량이 즐비하다. 이래도 디젤이 정말 느리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더베스트랩 홈페이지]

[사진 더베스트랩 홈페이지]

[디젤, 어쩌면 한국형 모터스포츠에 최적화된 모델]

슈퍼챌린지의 디젤 타임트라이얼 클래스인 '챌린지 D' 경기 장면.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슈퍼챌린지의 디젤 타임트라이얼 클래스인 '챌린지 D' 경기 장면.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일반적으로 스포츠 주행을 위해 일반인들이 찾아갈 수 있는 서킷은 강원도 인제군과 전라남도 영암군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 용인시와 인천시 영종도 등 수도권에도 서킷이 있지만, 일반 스포츠주행은 불가능한 상황.

서울 기준(서울특별시청 기점), 인제 스피디움까지 오가는 길은 왕복 320km가 넘는다.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은 왕복 730km에 달한다. 충청권의 경우(대전광역시청 기점) 인제 왕복 540km, 영암 왕복 500km고, 부산 기준(부산광역시청 기점) 인제 왕복 900km, 영암 왕복 600km다. 실로 어마어마한 거리다.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서킷을 오가는 데에는 큰 노력과 애정이 필요하다. 오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만도 적지 않을 뿐더러, 장거리인 만큼 연료 소모도 많다. 엔진오일이나 브레이크 패드, 타이어 등 각종 소모품 교환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러한 부분은 조금이라도 자주 서킷을 찾으려 하는 드라이버에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러한 걸림돌 중에서 디젤이 확실히 해결해주는 것이 하나 있다.

경험에 따르면, 2리터 디젤 차량으로 인제 스피디움 경기엔 재급유 없이 참가가 가능했다. 서울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면 오전과 오후 각각 20분 안팎의 주행을 소화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고급유를 '강하게' 권장하는, 소위 '좀 달리는' 차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여행 가는 기분으로 연료를 가득 채우고 훌쩍 다녀올 수 있는 디젤 차량은 어쩌면 서킷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특성에 가장 최적화됐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모터스포츠로]

2017 엑스타 슈퍼챌린지 '챌린지 D' 클래스의 매니저 홍석하 선수. [사진 홍석하 선수 페이스북]

2017 엑스타 슈퍼챌린지 '챌린지 D' 클래스의 매니저 홍석하 선수. [사진 홍석하 선수 페이스북]

앞서 잠시 언급한대로 '2분 언더'와 '2분 언저리'가 모여있는 슈퍼챌린지의 '챌린지 D' 클래스는 디젤의 장점인 연비로 일상에서의 만족을 찾고, 스포츠 주행의 즐거움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챌린지 D 클래스 매니저인 홍석하 선수는 "많은 이들이 보유중인 디젤 데일리카로도 충분히 서킷을 즐기고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시합"이라며 경기를 소개했다. 홍 선수도 직장 생활 틈틈이 서킷을 즐기는 '직장인 드라이버'로, 그간 출전 선수로 경기에 임하다 올해 클래스 매니저를 맡게 됐다.

챌린지 D 클래스는 1.6리터부터 2.2리터에 이르기까지 4기통 디젤 승용차 전부를 아우르는 클래스다. 그는 "국산, 외제 차량 상관없이 모두가 최대한 공평하게 레이스를 즐길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했다"며 "타이어 및 기본 장비만 지참한다면 순정 상태의 차량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경기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제일 합리적인 서킷 입문자용 클래스"라는 것이 홍 선수의 설명이다.

["매연 뿜어대는 차로 무슨 서킷"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사진 슈퍼챌린지 홈페이지]

물론 "매연 뿜어대는 자동차로 무슨…" 등의 지적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상적인 디젤 차량이라면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현행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의 디젤 승용차라면, 적어도 동급의 가솔린 차량 대비 탄소 배출량은 월등히 적다. 화석연료를 덜 태우니(연비가 더 좋으니) 탄소 배출량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미세먼지 배출량은 어떨까. 최근 대중화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장착된 차량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낫다'고 결론 내리기 쉽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이러한 지적은 최소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또는 100% 전기차로 서킷을 다니는 것이 아닌 이상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소리가 될 것이다.

[사진 다임러 홈페이지]

[사진 다임러 홈페이지]

전세계를 뒤흔든 '디젤 게이트'도 디젤이라는 연료 자체나 이를 사용하는 엔진의 문제라기 보다 눈 앞의 이익에 눈 먼 제조사들의 '꼼수'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젤 종주국' 타이틀이 졸지에 '디젤 게이트 원산국'으로 변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8월 "우리가 기후 보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디젤이 필수적"이라며 배기가스 조작을 한 업체들을 향해 "화가 난다. 자동차 업체들은 할 수 없는 것을 말했다. 뒤에서 배반을 했다"고 비난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동차 업체들은 손해를 무릅쓰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보상을 해야 한다"며 업체들이 디젤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어쩌다 디젤을 놓고 이런 엇갈린 목소리들이 나오게 된걸까. 디젤 엔진은 동급의 가솔린 엔진 대비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많은 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더 적다. 다만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경우, 디젤 엔진과 마찬가지로 다량의 미세먼지를 배출하는데, 최근 이 기술이 전세계에서 대중화되면서 '누가 누가 더 나쁜가' 갑론을박이 벌어지게 됐다.

각 브랜드의 가솔린 직분사 엔진. [사진 각 제조사 홈페이지]

각 브랜드의 가솔린 직분사 엔진. [사진 각 제조사 홈페이지]

가솔린 직분사 기술은 엔진의 연소실인 실린더 안에 연료를 직접 분사하면서 더 많은 양의 공기를 흡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배기량의 기존 엔진 보다 더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각종 규제 등을 이유로 트렌드가 된 '다운 사이징' 열풍 속에서 가솔린 직분사는 터보차저와 함께 거의 필수 요소로 손꼽히게 됐다. 각 제조사마다 이를 부르는 명칭은 다르나 GDI(현대기아차), TFSI(아우디), CGI(메르세데스 벤츠) 등의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효율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이 기술로 미세먼지 배출량은 도리어 늘어나게 됐다는 연구 결과들이 앞다퉈 나오기 시작했다. 연소실 내부에 연료를 직접 분사를 하게 되면서 디젤 엔진과 마찬가지로 미세먼지 배출량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솔린 엔진의 미세먼지 관련 환경기준은 아직 제도가 자리잡지 못 한 상태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 읽기 EU, 가솔린 차량도 디젤 차량처럼 규제키로

[다시 다이어리…꼴찌는 꼴찌다]

경기 전, 차량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박상욱 기자

경기 전, 차량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박상욱 기자

'꼴찌가 돌아왔다'는 제목에 걸맞게 아직 '2분 언저리'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다. 여지껏 인제 스피디움에서 기록한 베스트랩은 2분 3초. 최근 반년 넘게 서킷을 달리지 않았던 만큼 대회에서 이 기록이 다시 나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일 것이다.

경기를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적잖게 있었다. 브레이크 패드의 잔량 등 차량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각종 데이터들을 모아둘 데이터 로거를 설치하고, 기본적으로 대회 참가에 필요한 소화기, 견인고리, 폰더(대회 공식 기록장치) 홀더 등도 설치해야 한다. 또, 경기에 사용해야 할 타이어도 확보해야 한다.

준비할 목록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다 보니, 이것들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대회 전날이 될듯 싶다. 이것저것 몰아서 준비하면 며칠만에 할 수도 있을 법한 일이지만 직장인에겐 쉽지 않은 일. 일주일에 하나씩, 목록에 적힌 것들을 해결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다. 다음주 모터스포츠 다이어리에선 어떠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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